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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넛 Jul 16. 2023

특이한 분

파파야

파파야를 아는 사람이 말한다.

"특이한 분이시죠."


파파야를 모르는 사람들이 묻는다.

"어떻게 특이한데요?"


파파야를 아는 사람이 대답한다.

"그분은...."


대답하는 사람이 뜸을 들이자 그에게 이목이 집중된다.

괜스레 긴장이 된다.

"그분은... 무려..."

"무려...?"

"점심시간에 책을 읽어요."


파파야를 모르는 사람들이 "아~"또는 "오~" 하고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그것 말고도 여러모로 특이한 사람이기는 했다.

나는 점심시간에 운동을 하거나, 강의를 듣거나 잠을 자는 사람들은 본 적이 있지만 책을 읽는 사람을 본 적은 없었다.

운동을 배우거나, 영어를 배우거나, 실무에 도움이 되는 학습을 하는 사람들은 많이 봤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 하고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를 학습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사색을 하는 사람이었다.

채용 인터뷰에서 "요즘 어떤 책을 읽으세요?"하고 묻는 사람,

사무실 책상에 노트북만 덜렁 있는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텅 빈 책상 위를 출근하자마자 열심히 닦는 사람,

책상뿐만이 아니라 인생도 미니멀하게 만들려고 무던히 노력하는 사람,

혼자 영화를 보러 가는 사람,

필사를 하는 사람,

좋은 문구가 있으면 종이에 적어 나누어 주는 사람,

기록하는 사람,

제발 한 번만 노션을 써보라고 결제를 해주겠다던 사람,

회사에서 화를 내던 나에게 '그건 너무 쉬운 길'이라며, '어려운 길을 가자'라고 말해주는 사람이었다.


여하튼 특이한 사람이다.

회사에서 만난 사람 중 특이한 사람을 꼽는다면 No.1 자리를 차지할지도 모를 사람이다.


"어이쿠, 파파야! 잘 지내셨어요?" 그의 모습이 보이자 내가 말했다.

그는 잘 지내냐는 내 질문에는 씨익 웃곤, "주문할까요?" 하고 말했다.

회사원이 잘 지낼 리가 있을 리 없지 라는 의미였을까.


햄버거를 주문하고 자리로 돌아오자 그가 말했다.

"아니, 요즘 왜 글이 잘 안 올라와요."

나는 머쓱해하며 요즘 바빴다며, 지난 글을 쭉 되돌아보니 답이 없는 푸념만 늘어놓은 것 같아서 반성하고 있다고,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더 써보려고 한다고 변명을 했다.

"그래, 좋은 생각이다. 조금씩이라도 써야 돼."

 기록과 회고는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중 하나였다.


잠시 뒤에 햄버거가 나왔다.

햄버거는 컬러풀하고 짭짤하고 촉촉했다.


햄버거를 먹으며 우리는 현직장 이야기를 나눴는데,  ‘어? 너도?', '야, 나두.' 하면서 불행 배틀을 벌였다. 결과는 무승부. 누구나 자신의 삶이 가장 가혹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최근에 갔던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혼자 배낭 하나를 짊어지고 유럽 여행을 다녀왔는데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작은 사람이었는지, 자신은 그저 동양에서 온 아저씨일 뿐이었음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회사를 벗어나면 남는 것은 사람뿐이라고. 돈보다도 직급 보다도, 업무성과 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주변의 인연들을 소중히 하라는 얘기도 해주었다.

나는 '좋은 얘기로군.' 하고 생각하곤, "근데 파파야는 돈도 있고 직급도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에요? 강남에 사는 대기업 다니는 아저씨가 얘기하니까 신빙성이 떨어진다." 하고 파파야를 놀렸다. 그가 잠깐 당황해했다.

역시 진지한 이야기에는 놀림 한 스푼을 얹어줘야 제맛이다.


그는 힘든 회사생활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여기서 뭐 하나라도 바꿔가면 의미가 있는 거라고, 그게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 거라고, 나에게 하는 말인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말들도 했다.

'여전히 어려운 가시밭길을 걷고 있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포기하지 않았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끝나고 우리는 각자의 삶으로 돌아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그가 왜 특이한 사람인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는 그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가자고 말해주는 어른이기 때문에 특이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회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타협하라'고, '포기하라'고 '너도 one of them이 되라'고, '적당히 하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되는데, 그런 얕은 말들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어려운 길을 가자'고 '바꿀 수 있다'고 진지한 자세로 말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지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기 때문이라고.


특이함의 본질을 정리하니 나도 회사에서 조금 더 버텨 봐야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짧은 점심시간의 만남이었지만 어쩐지 그의 특이함 한 조각이 나에게 묻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의 이 용기를 가지고, 당분간은 힘차게 출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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