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바닐라 라떼
주말마다 카페에 간다.
카페에 가서 내 할 일도 하고, 책도 보고, 사람도 구경하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열을 식히다 오는 게 요즘 내 주말 루틴.
카페 중에서도 제일 만만한(?) 스타벅스에 자주 간다. 이렇게 스타벅스를 자주 올 거면 스벅에 올 때마다 일기라도 써볼까 했는데 이미 같은 주제로 책을 내신 분이 있었다. (스타벅스 일기/ 권남희/ 한겨레출판사)
역시 좋아 보이는 건 이미 누가 했지. 역시 고민보다 실천이 중요한 걸 깨달으며 오늘도 스벅행.
카페를 자주 오지만 커피 맛은 잘 모른다.
커피 맛을 모르니 새로 나오는 메뉴가 있으면 자주 시켜 먹는 편.
그날도 평소처럼 신메뉴를 훑어보다 ‘프렌치 바닐라 라떼’를 주문해 봤다.
’프렌치 바닐라 라떼‘의 설명에는 ’미국에서 출시되었던 프렌치 바닐라 라떼를 재해석한 블론드 라떼!‘ 라는 설명이 쓰여 있었다.
오호라. 미국맛. 기대된다.
몇 분 뒤 주문한 음료가 나왔다.
바닥에 깔린 커피와 노오란 음료의 색 조합이 귀여웠다.
휘휘 섞어 한입 쭈욱 들이키니…
이 맛은!!!!
나는 당장 휴대폰을 꺼내 절친 주주에게 카톡을 보냈다.
“스타벅스에서 바나나맛 커피를 6,500원에 팔고 있다! 속았어! 미국에서 유행하는 맛이래서 미국맛일 줄 알았는데 한국맛이야!”
내 카톡을 기다리고 있던 것 마냥 주주가 바로 답변을 보냈다.
“뭐?! 미친?! 6,500원? 국밥값이네? 바나나 국밥이야 뭐야? 뚱바 사서 커피 넣어마시면 되는데 미국에는 바나나우유가 없나? 참나.”
마치 자신이 당한(?) 것처럼 내 한마디에 와다다다 통쾌하게 쏘아붙여주는 주주.
이 맛에 주주한테 연락을 한다.
주주와 이야기하다 보니 ‘아니 이 평범한 맛을 이렇게 비싼 돈을 주고 먹고 있다니! 스타벅스 네 이놈들!’ 하고 흥분했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생각해 보면 최근에 뚱바(뚱뚱한 바나나맛 우유. 빙그레에서 나온 단지형 우유를 뚱바라고 하나보다)에 에스프레소를 넣어서 마시는 게 유행이었다는데,
스타벅스 메뉴가 아니고서는 이런 맛이 있는 줄도, 유행이었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미국에서 유행했다는 맛이라는데, 이것도 K 한류 붐이었을지도 모른다. 세계로 뻗어가는 K 한식. 이제 세계가 뚱바맛을 알았구나.
뒤늦게나마 유행하는 맛을 알게 되었으니 되었다.
뚱바니, 바나나 국밥이니 욕을 했지만 어쨌든 이 커피는 달달하고 바나나향도 강해서 맛이 없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달콤하니 아주 맛있었다. 라떼라 포만감도 있고. 너무 아는 뚱바맛이라 그런 것이지…
나름 자기 전에 릴스와 숏츠를 1시간씩 보면서 최근 유행하는 트렌드는 대충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뚱바커피까지는 내 알고리즘에 타지 못했나 보다.
이렇게라도 유행하는 맛 먹어봤으니 어디 가서 한마디 보태도 되겠지. (요즘 유행하는 뚱바커피 아세요?)
게다가 커피 덕분에 주말에 주주랑 연락도 하고 오랜만에 원격으로 수다를 떨었다.
별 일도 아닌데 ‘바나나 국밥’ 한마디에 꺄르르 현실 웃음이 터지고 시원시원하게 내뱉는 주주의 말에 (정확히는 문자지만 텍스트에서도 그녀만의 말투가 느껴진다) 세상만사 웃긴 에피소드가 된다.
에잇 돈 버렸네 싶은 사건도 친구랑 나누면 즐거운 일이 되는구나.
가성비 별로라고 생각했던 프렌치 바닐라 라떼, 이렇게 웃음을 줬으니 단종되기 전에 한번 더 먹어볼까.
아니, 집에 가는 길에 뚱바를 사서 에스프레소를 타서 비교를 해봐야겠다.
프렌치 바닐라 라떼,
바닐라 라떼 한 잔으로 치면 조금 비싼 가격이었지만,
웃음 가격으로는 나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