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만 생각하다 벌어진 일
내가 처음 맡게 된 기획 업무는 ‘고객센터의 비효율을 찾아 개선하는’ 일이었다.
프로세스에서 낭비가 있는 부분을 찾아 개선하거나, 상담사분들이 사용하는 어드민 시스템에서 불편 사항이 있으면 더 편리하게 바꾸는 일, 원천적으로 고객문의가 발생하는 원인을 찾아 문의량을 줄이는 등의 일을 하면서 느낀 것은, 이 일이 꽤 재밌다는 것이었다.
여러 복잡한 상황에서 문제를 찾아내고 더 좋게 만든다니! 멋진 일 같았다.
그러나 이런 멋진 일도 시작이 참 힘들었다.
언제나 ’ 리소스‘가 문제였다.
한정된 비용과 시간으로 어떤 문제에 선택하고 집중할 것인가.
1순위를 정하는 회의는 언제나 치열했다.
관련자들이 모두 모여서 서로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얘기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모두를 설득해서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여러 방법 중에서 가장 효과가 좋았던 설득 방식은 ‘숫자로 말하기’였다.
상담사분들의 업무를 단계나 투입 시간을 줄이는 것을 비용으로 환산해서 예상되는 효과를 ‘돈’의 가치로 말해주면 언제나 효과가 좋았고, 일이 시작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이 부분을 개선하면 1년에 X억의 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와 같은 식이다.
언제나 잘 먹혔기 때문에 이직한 회사에서도 종종 써먹곤 했는데…
어느 날 함께 일하는 개발자가 말했다.
“그런데 이거 개선하면 이 일을 하시는 상담사분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는 거 아니에요?”
나는 “단순 반복적인 일은 기술이 해결해 주고, 사람은 더 중요하고 복잡한 일을 해야죠.”라고 답했다.
태연한 척했지만 사실 속에서는 심장이 엄청나게 쿵쾅거렸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였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의 일자리를 앗아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니?!
내가 비용으로 환산하던 것들이 누군가에게 지급되는 월급이었다는 것을 왜 지금까지는 한 번 떠올리지 못했을까.
문제를 찾아 개선하고, 효율적으로 일하면 언제나 칭찬만 들었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에 미치는 여파를 고려해 본 적은 없었다.
IT 업계에 종사하면서 나 또한 ‘기술은 세상을 더 좋게 만든다’라는 생각이 깔려있었다.
여기서 ‘더 좋아지는 삶‘을 누리는 것은 사용자이자 고객들이었다.
해당 업계 종사자들까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동료 개발자와 이야기 후에 기술의 변화로 인해 사라지는 직업들을 떠올렸다.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노동자의 이야기 말이다.
과거 책에서만 보던 공장 노동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이패스 사용의 증가로 사라지고 있는 고속도로 요금 징수원이라던가,
서빙로봇이나 셀프 계산대, 무인점포의 등장으로 서빙 직원이나 계산원의 수가 줄어드는 것은 이미 현실이다.
앞으로는 자율주행과 도심 항공 모빌리티의 기술의 발달로 택시나 버스 운전기사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고,
챗 GPT 기술만 보더라도 앞으로 채팅 상담사뿐만 아니라 글자 뒤에서 일하는 자들의 일자리에 변화가 있을 것은 자명해 보인다.
일자리의 감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했다니 왠지 자책이 들고 악의 편에 선 것 같은 기분을 떨칠 수 없어,
주변 친구들과도 관련된 이야기를 하곤 했다.
한 친구는 말했다.
“그래도 사람이 하는 일은 없어지지 않아. 대면하는 직업 같은 거 말이야. 유발 하라리도 그랬다고 하던데. 사람을 대하는 일은 없어지지 않을 거라고 말이야. 인간이 가진 지혜로 더 나은 답을 찾아낼 거야. 기술 발전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너의 두 손으로 막을 수는 없지. 그렇다고 네가 일을 그만두면 너의 생계는 어쩌고?”
다른 친구가 말했다.
“회사 입장에서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는 건 당연해. 단순 반복적인 일을 줄이면 그 시간에 상담사부들이 고객이 겪는 진짜 중요한 일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감정에 공감해 주고 스몰톡을 한다던지 그런 거 말이야. 그게 진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리고 더 큰 측면에서 회사는 계속 성장해야 하니 다른 일자리는 만들어지고 있단다. 새로운 기술이 생기면 새로운 직업도 생기기 마련이야. 걱정하지 마.”
두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은 안심이 되었지만,
지금까지 일을 하면서 ‘숫자’만 생각한 것에 대해서는 반성키로 했다.
‘숫자’ 뒤에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나는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일의 뒤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잊지 말자.
내가 하는 일이 불러올 나비효과를 생각하고 의식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사용자, 유저, 고객만 바라봤다면,
함께 일하는 동료, 노동자, 일꾼들도 바라봐야겠다고 다짐했다.
두 눈 크게 뜨고, 멀리, 좌우 양 옆도 살피면서 함께 가야겠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