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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는 바

기대치의 다름

by sy

기대치 :

이루어지리라 기대하였던 목표의 정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며칠 전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3월에 학기가 시작된 후 한 달여 시간이 지났습니다. 천편일률적으로 치러진 과거의 시험과는 다르게 요즘에는 각 담임선생님들 재량으로 다양한 형태의 평가가 치러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평가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저에게는 조금은 특별한 아이가 있습니다.

처음에 그 아이를 받았을 때, 안내사항에 이런 메모가 있었습니다.


[ 장애가 조금 있어 학습이 느리다. ]


그 아이와 첫 대면을 하기 전부터 나름 각오를 다졌습니다. 한번 만나보지도 않았던 아이를 혼자 머릿속으로 상상해 가며 말입니다.


'조금 느리고 답답할 수도 있으니, 최대한 천천히 알아듣게 이야기하리라.'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그 당시 5학년이었던 남자아이가 어쩜 그렇게 말을 잘하던지, 혹시 어머니께서 말씀을 잘못하신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였습니다. 더구나 그 아이가 하는 말들이 학습과 관련이 없는 것이 아니었기에 한 번 더 놀라지 않을 수없었습니다.

나중에 어머니에게 물어보니, 그 아이는 평소 사회 과학 관련 책을 아주 많이 읽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사회 과학 분야는 초등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부분까지도 설명을 잘했고, 초등 역사에서는 굳이 외우지 않아도 되는, 사건이 일어난 연도까지 술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의 문제는 수학과 영어학습이었습니다. 수학은 지금 6학년인데 초3정도의 학습을 하고 있습니다. 영어는 그보다 더 많이 어려워했습니다.


그 아이를 보며 그 옛날,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에 갈 수 있게 하겠다던 분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그런 시대는 오지 않았고 앞으로 올 것 같다는 기대도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것을 골고루 잘 해내야 하는 지금의 현실에서 그 아이는 사회 과학을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수학 영어가 부족한 아이일 뿐이겠구나 싶어 안타까운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렇게 그 아이와 일 년여 시간이 지났습니다.

함께 한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조금씩 드러나는 모습은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장애가 있다는 말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입니다. 오히려 한 가지에 꽂히면 집요할 정도로 집착한다고 합니다. 일례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어서 어머니가 학교로 수차례 데리러 가셨다고 합니다.


그런 그 아이가 최근 학교에서 과학시험을 봤다고 합니다.

고학년이 될수록 점점 어려워지는 학습임에도 평소에 너무나 잘해주었기에 나름 기대도 되었습니다. 지난 시험의 점수는 아이가 이야기하기 전까지는 세세하게 물어보지 말자는 것이 나름 제 원칙이기는 했습니다만, 잘 봤다는 그 아이의 말에 점수가 급 궁금해졌습니다.

당연하다 기대했던 고득점이 아니었습니다.


"60점"이라는 말에 순간 당황을 해서 뒷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당황함을 눈치챘는지 그 아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희 선생님이 조금만 더 하면 100 점 맞을 수 있을 거라고 하셨어요."라고 말입니다.

그건 제 생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많은 책을 읽어서 관련 배경지식은 풍부하나,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는 조금 더 세세한 학습이 필요할 테니 말입니다.




이쯤에서 기대치_라는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려봅니다.


"이루어지리라 기대하였던 목표의 정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기대하는 마음은 가끔 그 사람이나 상황에 대한 선입견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순간순간, 기대치가 만든 선입견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나의 예상과 다름에 실망을 하거나 감탄을 하곤 합니다.


장애가 있다는 선입견을 갖고 아이를 대했을 때, 나의 예상, 그리고 기대와는 다른 뛰어난 말솜씨와 풍부한 배경지식에 감탄을 했습니다. 이는 제가 그 아이에 대한 기대치가 낮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이미 높아져버린 나의 기대치에 시험점수가 미치지 못하자 실망의 마음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80점이라는 점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하나요?


어떤 아이는 80점이라는 점수를 받고 아주 만족을 하고, 다른 아이는 자신의 실수에 자책을 하기도 합니다. 이는 아이들뿐만이 아닙니다. 저도 수학 70점대 점수를 받아온 아이에게 잘했다고 이야기해 주기도 하고, 90점을 받았다는 말에 선뜻 칭찬의 말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으니 말입니다.

이유는 아이들에 대한 각각의 기대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각각 다른 기준으로 아이들을 대했던 것입니다. 평등하게 같은 기준이 아니라, 각각의 상황에 맞는 공평한 기준말입니다.

모든 것이 같을 수없기에 모두에게 같은 기준을 두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아이는 억울하다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자기보다 못한 아이는 칭찬을 받고, 단지 기대치가 높다는 이유로 고득점을 했음에도 칭찬대신 조금 더 노력을 요하는 상황이 말입니다.


그런데 이 나이쯤 되고 보니 조금 달리 보이기도 합니다. 기대, 그리고 기대치라는 말이 말입니다.


별일 아닌 것에 잘했다 칭찬을 받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인가요? 그만큼 나에 대한 기대하는 바가 적다는 것이니 오히려 슬픈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반대로 나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면 조금 더 잘해주길 바랄 것이고, 그에 미치지 못할 때 아쉬운 마음이 들 겁니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조건이 다르니 모두에게 똑같은 기준으로 대하기도, 그렇다고 역차별이라 느낄 수도 있는 서로 다른 잣대를 들이미는 것도 말입니다


오늘도 역차별이 아닌 공평과 배려의 평등, 그 중간쯤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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