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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May 31. 2023

김포 아라마린 페스티벌 -VIP석 이벤트당첨과 공연후기

불효자랑-1

 [ 김포 아라마린페스티벌 VIP 이벤트 당첨 초청장  ]


세가지 글을 실을 예정입니다.

응모해서 당첨된 두 편의 불효 관련 이야기와 마지막은 빗속에서 관람한 공연후기입니다.


쓰면서도 마음이 아파서 시작부터 눈물을 흘려가며 두 편의 불효 관련 이야기를 완성했습니다. 한 편만 제출하라는 말이 없었기에 애초 아빠와 엄마의 이야기를 각각 제출하려고 했었고, 두 개의 사연이 모두 당첨이 되는 행운을 얻었네요. 물론 한 자리는 다른 분을 위해 양보했습니다. 저도 사실 둘 다 될 줄은 생각을 못했거든요.

먼저 당첨된 아빠이야기부터 시작해 볼까 합니다. 제출당시에는 a4 한 장 분량이상 글자 입력이 안되어 많이 줄였었습니다. 살짝만 수정하고 제출했던 내용 그대로 올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빗속에서 관람한 공연후기를 올려볼까 합니다.




벌써 8 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허무하게 아빠와 이별했습니다.

그날, 아침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농사지은 고구마를 택배로 보내주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괜찮다고, 그냥 사 먹는 게 낫다고 약간 퉁명스레 말을 했었습니다. 많이 먹지도 않을뿐더러 택배비랑 읍내까지 나가서 보내야 하는 수고로움을 생각하면, 그냥 조금씩 사 먹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매번 집에 갈 때마다 뭘 그렇게 바리바리 싸주시려고 하시는지. 그때마다 저는 안 먹는다고, 가져가면 다 버리게 된다는 못된 말을 하고는 했었습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랐음에도 부모님께서는 막내딸이라고 농사일 같은 것은 시키지 않으셨지만, 여기저기 논밭에 따라다니며 재미 삼아 도와드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뜨거운 햇볕을 마주하고, 때로는 등지고 농사일하기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를 아는 사람들은 함부로 음식물을 버릴 생각을 못 할 것입니다.

엄마랑 통화하는데 뒤에서 아빠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다른 언니들한테도 보낼 거니까 같이 받으라고, 주소는 택배 부치는 곳에 가면 있으니 안 알려줘도 된다는 말씀까지 덧붙이셨습니다. 저는 그제야 알았다고 하며, 대신 조금만 보내라고, 먹을 사람 없다는,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했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었는데, 그때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아빠의 생전 마지막 목소리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점심때 형부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놀라지 말고 들으라고 하시는데,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습니다.

“아버님이 점심때 사고가 나셨어.”

라고 하시는데 뭔가 크게 다치셨나 보다 하고 두근거리는 맘을 가다듬고 되물었습니다.

“어디 많이 다치셨어요?”

한참 뜸을 들이시더니

“아버님이 돌아가셨어.”

라고 하시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당최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무슨 소리냐고, 아침에 통화할 때 만해도 멀쩡하셨는데.


무슨 정신으로 장례식장까지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도착해 보니 엄마랑 언니가 울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해외여행을 간 오빠의 하우스에 물을 주는 일을 대신해주고, 또 박스 포장할 끈을 가지러 경운기를 끌고 가셨다고 합니다. 금방 올 줄 알았는데 한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아서 엄마가 하우스가 있는 밭으로 찾아갔는데, 그곳에서 사고가 난 현장을 발견하셨다고 합니다. 휴대폰도 없었고 주택가랑 떨어진 밭이었기 때문에 주변에는 도움을 줄 만한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채 50킬로도 되지 않는 왜소한 엄마의 힘으로 경운기 밑에 깔려계신 아빠를 어찌할 수가 없어서, 뛰어 내려와 집집이 돌며 사람을 찾았다고 합니다. 주변 이웃의 도움으로 119구급차가 왔지만, 이미 돌아가셨다고 하시며 구급차는 그대로 떠났고, 대신 장례식장 차가 와서 모시고 갔다고 합니다. 상주인 오빠가 해외여행 중이라 그렇게 우리는 상복도 입지 못하고 하루를 보냈습니다.

마지막 입관 전 가족들과 인사를 하라고, 이게 정말 마지막이라고 하더라고요. 엄마는 저에게 들어가지 말라고 했지만, 차마 그냥 보내드릴 수가 없어서, 진짜 마지막인데 한 번은 보고 싶었습니다. 편안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사망 당시 엎드려계셨기 때문에 얼굴이 검붉었습니다. 시신은 만지면 안 된다고 했지만, 엄마는 다시 아빠를 붙들고 통곡하셨고, 저는 안녕히 가시라고, 마음으로 인사를 하며 아빠의 발을 한번 쓰다듬어 드렸습니다.


그냥 안 먹는다고 보내지 말라고 할걸…. 아니 말이라도 이쁘게 할 걸 후회되는 것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평소 주시는 것들을 기쁜 마음으로 가져와서 원하는 이웃에 나눠주든, 정 못 먹겠으면 버릴지라도,

"맛있겠다."

"잘 먹었다."

해줄걸…. 그런 게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릴 거란 걸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그냥 버리게 되니 아깝다는 생각에 필요 없다고 하며 짜증을 냈던 것이 너무나 후회스럽습니다. 물론 저희 부모님들께서도 돈이 많았다면 돈을 주셨겠지요. 그게 부모의 마음이니까요. 그런데 많은 것을 해주고 싶지만, 자식에게 줄 게 그런 농사지은 것들뿐인데, 뭐라도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이번 어버이날에 엄마를 모시고 여행을 갔었습니다. 엄마는 연세가 많으셔서 부쩍 잠이 줄으셨습니다. 새벽에 일찍 깨서 무료하시기에, 생전에 아빠가 좋아했던 노래를 들려드렸습니다. 음원사이트에서 검색한 춘길/민수현 님이 부른 [봉선화 연정]을  엄마는 좋아하셨지만, 저는 순간 울컥한 마음에 살짝 고개를 돌려 엄마가 보지 못하도록 눈물을 훔쳐냈습니다.


아빠 잘 지내시지요? 꿈에 한 번만 와주세요. 너무 죄송하고 사랑합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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