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아무런 계획이 없으면 자칫 흐지부지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 시간은 가족들과 함께 보낼 수도 있고,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시골에 계시는 엄마를 만나러 갔습니다.
연세도 많으시고 혼자 계시다 보니 아무래도 식사를 제때 하지 않으시는 듯 날이 갈수록 몸이 말라가고, 보는 사람들이 안쓰러워서 한 마디씩 거들정도입니다. 그런데도 늘 소화가 안된다고 하시는지 모를 일입니다. 보통은 뭘 많이, 과하게 드셔야 소화가 안된다고 하실 텐데 말입니다. 음식솜씨는 한계가 있는 것이고, 그래서 엄마집에 가면 평소에 잘 못 드시던 것들을 사드리고는 합니다.
[ 송어회 ]
어제는 특별히 엄마가 좋아하신다는 송어회를 먹으러 가기로 했습니다.
엄마에게 도착 전에 미리 간다고 전화를 하고 밥을 먹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너무 일찍 전화를 하면 문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린다는 언니의 말이 있긴 했는데 말입니다. 역시나 문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막연히 기다릴 뿐, 외출준비가 안되어있어서 옷을 갈아입고 준비하고 나오시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생각보다 준비는 빠르셨습니다.
엄마는 일 년 내내 계절에 맞는 모자를 쓰고 다니십니다. 어제는 외출준비를 마치고 나오시면서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서 머리를 보여주시더라고요. 염색할 때가 지났고 웨이브도 다 풀려서 머리를 다시 해야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때 엄마가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다 머리를 하러 갔는데 본인만 못 가셨다고 말입니다.
아니, 시골에서 어르신들이 왕따를 시키신 건가?라는 생각을 아주 잠시 해보긴 했는데, 사실은 사정이 있었다고 합니다. 엄마가 문을 잠그고 낮잠을 주무셨고, 밖에서 불러도, 문을 두드려도, 전화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쩔 수없이 엄마를 두고 동네 분들만 미용실에 가셨다는 겁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사실은 엄마가 청력이 안 좋으셔서 잘 못 듣기도 하시거든요.
뭐 다음에 가면 되는 거지... 하고 생각했는데 엄마의 생각은 달랐나 봅니다.
점심을 먹으러 송어횟집으로 갔습니다.
주문을 받으러 오신 어르신분께, 갑자기 모자를 벗어서 머리를 보여주시며 미용실에 가지 못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하시는 거였습니다. 주문받으러 오신 어르신도 당황하셨을 듯합니다.
속으로는
'아, 제발 그만...'
'그냥 미용실 가자고 하지...'라고 외쳤답니다.
다행히 언니가 밥 먹고 미용실 가서 파마하고 염색하자고 해서 엄마의 머리 이슈는 잠잠해졌습니다.
마치 유치원 초등학생 아이들이 원하는 무언가를 얻기위해 하는 것처럼...일종의 시위이셨을까요?
그냥 가자고 하면 될 일이었는데, 같이 머리를 하러 가지 못했던 일이 그리도 엄청게 안타까운 일인양 보는 사람들마다 붙잡고 이야기를 하시니 말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성격상 원하는 것이 있어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분들 많이 있으실 겁니다. 하다못해 저만 해도 그렇습니다. 소통이 없는 인스타 팔로워를 정리할 때가 되었는데도 누군가가 오해를 할까 봐 망설이는 제 모습을 보고 이해를 못 하는 분들이 있으십니다. 내 개인 계정인데 왜 남들의 눈치를 보는지 말입니다. 간혹 너무 고맙게도 알아서 언팔을 해주시는 분들이 있기도 하지만 이는 극히 드문 일입니다.
전에 인연으로 알게 된 베이시스트분이 하신 말씀입니다. 인스타그램은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이니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고 말입니다. 그때만 해도 젊은 분이라 역시 생각하는 것이 다르구나 했었는데, 이것은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서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지금에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닌 이상은 표현해 보기,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하기도 한 일입니다.
에둘러 표현하며 미용실 가자는 표현을 하는 엄마나, 소통 없는 이들을 정리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저나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