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사고로 돌아가신 후 시골집에 혼자 사시는 여든이 넘으신 엄마가 늘 걱정이긴 하지만, 마음만큼 자주 찾아가 보지는 못하는 딸이랍니다. 그래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언니랑 함께 엄마집에 방문하고는 합니다.
엄마집에 도착하면 늘 순서가 있습니다.
언니는 우선 집안 냉장고를 점검합니다. 워낙에 연세가 있으시다 보니 뭐든지 다 아까우신가 봅니다. 유통기한이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버리지 못하고 자꾸만 드시려고 하니 말입니다. 언젠가는 버리려고 다 꺼내놓은 것을 도로 냉장고에 넣으시려고 하셔서 한참을 실랑이를 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회복 불가능 상태로 만들어버리기!!
한데 모아서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기입니다.
물론 엄마가 보지 않을 때말입니다. 41년 생이시니, 역사시간에 글로만 배웠던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신 세대... 게다가 가난한 집 장녀로 태어나 뭐든 부족하였고, 동생들을 위해 양보를 해야 했던 고달픈 삶이 어렴풋이나마 그려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건강과 아까운 마음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저는 엄마집에 가려면 고속도로가 막히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2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거리에 살고 있고, 언니는 40분 내외 거리에 살고 있습니다. 조그마한 텃밭에서 수확물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언니에게 가져다 먹으라고 그렇게 전화를 하신다고 합니다.
언니는 사실,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랑 차량유지비를 제하면 그냥 사 먹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으나, 항상 엄마집에 들러 가져온다고 합니다. 뭐든 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모른 척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참 이쁜 마음을 가진 딸이지요?
저는 반대입니다.
뭘 준다고 하면 안 가져간다고, 필요 없다고, 그냥 사 먹는 게 더 낫다고 못된소리를 일삼는 막내딸이랍니다.
항상 딜레마입니다.
가져와서 버리면 아까운데 안 가져오는 것이 맞는 건지, 아니면 버리더라도 딸에게 뭔가를 챙겨줬다는 기분 좋은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받아오는 것이 맞는지 말입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있었던 '가지'이야기입니다.
엄마집 마당에 가지, 상추, 부추, 들깨, 파 등등 여러 가지가 심어져 있습니다. 그중에 문제의 가지... 이야기입니다.
가지요리 많이 있지요?
제가 요리를 못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만,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하면서 잘 안 하게 되었답니다. 주변 선생님들도 하는 말, 역시 음식은 남이 해주는 것이 맛있다... 하시니 역시 진리가 맞겠지요?
유난히 텃밭에 가지가 많이 달렸습니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
미리 따놓았다는 호박이랑 가지를 챙기기 시작하셨습니다.
"엄마, 난 가지 안 가져갈 거야. 언니나 줘"
"언니 꺼는 여기 있으니 가져가."
"아니, 난 가져가도 안 먹는다고...."
"안 먹긴 왜 안 먹어? 반찬 해 먹으면 되지?"
"그러니까, 난 그 반찬을 안 해 먹는다니까~~~~"
엄마는 제 말이 이해가 안 되었나 봅니다. 반찬을 안 해 먹는다는 말도 그렇고 말입니다.
그때 가져가라 안 가져간다... 하며 가지를 두고 실랑이하는 우리들을 향해 언니가 한마디를 했습니다.
"엄마, 재는 그거 가져가봐야 쓸모가 없대."라고 말입니다.
순간 저는 웃음이 터져 나왔고, 엄마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가지의 쓸모>라니 표현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혹시라도엄마가 서운해할까 봐, 저는 가지대신에 쪽파를 조금 뽑아서 가겠다고 했습니다. 애초 계획은 파만 몇 뿌리 뽑아갈 예정이었으나 거기에 호박 한 덩이가 더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