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오전 산책을 하던 중 아파트 화단에서 수줍게 한 두 송이 피어있는 봉숭아꽃을 발견했습니다. 예전에 살던 시골집 마당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봉숭아꽃이 어느 순간엔가는 눈을 크게 뜨고 찾아야 할 정도로 귀해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시골집에 들러서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올라 봉숭아꽃을 따왔습니다. 추억을 되새기며 손톱에 꽃물을 들여보고 싶었거든요.
그런 이야기는 다들 아시지요?
지금 이 나이에 첫사랑의 추억도 가물가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오르는 그것!!
"첫눈이 올 때까지 손톱에 꽃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
다들 기억나실 겁니다. 그리고 한 번쯤은 첫눈이 오기 전까지 애지중지하며 손톱을 길러본 경험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그런 꼬마아이였습니다. 첫사랑은 고사하고 사랑이 뭔지도 모르면서 조금 남아있는 봉숭아꽃물을 애지중지 지키며 첫눈이 오기를 고대했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지금 첫사랑을 기다리는 걸까요?
그런 말을 믿기에는 너무 커버리긴 했지만, 다시 한번 곱게 봉숭아꽃물을 들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는 화단 근처 돌 위에 꽃잎을 올려놓고 백반을 넣어서 정성껏 꽃잎을 빻았었는데, 아쉬운 대로 주방에서 주방칼의 손잡이 부분의 마늘 빻는 곳을 이용하였고, 백반대신 굵은소금을 넣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소금에 꽃잎이 절여진 때문인지. 유난히도 즙이 많이 생겨서 아주 난감해진 것 같습니다.
손으로 살짝만 만져도 손끝에 꽃물이 드는 것 같았습니다.
아쉬운 대로 비닐장갑과 나무젓가락을 사용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엄마랑 언니가 실로 묶어줬는데, 혼자서 어찌할 수가 없어서 머리 묶는 고무줄을 사용했니다.
그런데, 고무줄이 너무 팽팽했는지, 새벽이 되자 손가락에 감각이 없어지는 것처럼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고무줄을 조금 느슨하게 다시 감고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손가락 상태를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너무 놀라서사진을 찍어 두었습니다.
[이것은 손톱에 물을 들인 것인가? 아니면 손가락에 물을 들인 것인가?]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 단톡방에 사진을 보냈습니다.
다들 무슨 일이냐고 기겁을 하셨습니다. 칼에 손을 베인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저도 사진을 보고 놀랐던 터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무슨 일이냐고 호들갑 떠는 선생님들 때문에 속으로 '속았구나.' 생각하며 뭔가 묘한 쾌감이 느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