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그런 것인지, 코로나 재확산의 영향인지는 모르지만 오랜만에 평일 낮시간에 들른 청계천이 한산하기만 했습니다. 가능하다면 청계 9가까지 걸으면서 여유를 찾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 이전에는 토요일에 성북천을 걸어 연결된 청계천을 이용, 광화문까지 걷곤 했었습니다.
서울을 병풍처럼 둘러싼 산과 한강도 그렇지만 서울의 각 지역에 산재해 있는 잘 가꾸어진 지천을 볼 때마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지닌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근대화가 급속하게 이루어진 것과 비례해서 서울의 모습도 큰 변화를 겪게 되었고, 이에 도시의 구석구석에 스며든 삶의 흔적도 더불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청계천만 하더라도 청계천에 기대어 살던 가난한 사람들의 애환은 1930년대에 소설가 박태환이 쓴 장편소설 '천변풍경'에 남아 짐작할 뿐 잊힌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특히 늘어나는 교통량을 해소하기 위해 1958년에 복개되어 실체마저 사라졌던 청계천이기에 2003년에 청계천의 복원을 시작하면서 서울시는 "청계천을 다시 시민에게 되돌려 주겠다"라고 그 의의를 밝혔지만 2005년 청계천의 복원이 끝났을 때 되돌아온 것은 온전한 청계천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청계천이 본래 가지고 있었던 생활 현장의 모습이 아닌 잘 가꾸어진 공원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말하자면 청계천이 함께 한 시간이 만든 스토리텔링, 즉 내면이 빠진 외양만 멋지게 되돌아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파리의 센 강이 한강처럼 강폭이 넓은 것도 아니고, 청계천과 같은 서울의 지천들처럼 잘 다듬어진 것은 아니지만 파리지엥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파리의 역사를 관통하여 쌓아 온 삶의 이야기, 특히 풍요롭고 아름다운 '벨 에포크(좋은 시절)'를 정점으로 한 문학과 예술의 중심이었던 파리의 발자취가 센 강의 구석구석에 스며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 센 강이 흐르는 파리의 낭만을 전하는 아름다운 시가 있습니다. 20세기 초현실주의 문학의 선구자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가 쓴 시 '미라보 다리(Le Pont Mirabeau)'가 그것으로 기욤 아폴리네르의 연인이었던 화가 마리 로랑 생(Marie Laurencin)과 헤어진 후 실연의 아픔을 표현한 시입니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흐르는데
나는 기억해야만 하는가
기쁨은 언제나 괴로움을 따른다는 것을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서로 손을 잡고 얼굴을 마주하며
우리들의 팔이 만든
다리 아래로
영원한 눈길에 지친 물결들
저리 흘러가는데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사랑은 간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떠나간다
삶과 같이 느릿하게
희망과 같이 난폭하게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하루하루가, 그리고 한 주가 지나고
지나간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는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르고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그리고 이 시에 곡을 붙여 매혹적인 저음 가수 이베트 지로(Yvette Giraud)가 시를 낭송하듯 노래한 것이 유명한 샹송 '미라보 다리'입니다.
이 노래를 들으면 한 시대의 낭만과 그 시대를 살아간 삶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