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힘든 순간이라고는 한 번도 겪지 않았을 것 같은 사람이 간혹 있다. 예를 들면 세상의 모진 풍파를 비켜간 듯 평안하고 고운 얼굴을 한 어르신들 말이다.
그러나 살다 보면 누구나 최소한 한 번은 고난의 때를맞이하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 세상이 주는 풍상과는 거리가 멀게 보이는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에게서 자신에게 닥친 고난을 극복한 사람 만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의 평안과 여유를 발견하게 된다. 고난의 시간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 시간에 짓눌린 사람의 그늘진 얼굴에서는 볼 수 없는 평화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물론 큰 굴곡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간단없는고난과 조우해야 하는 인생길에서 이런 삶을 산다는 것은 분명 복된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축복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토착화된 불교를 포함한 무속 신앙에서는 이를 조상이 쌓은 공덕의 결과라고 규정한다. 이를 기독교 식으로 표현한다면 선대의 신앙, 특히 가족과 자손을 위한 신실하고 지속적인 기도의 결과라고 하겠다. 기도의 능력을 생각할 때 한편으로는 충분히 수긍할수 있는, 합당한 도출(導出)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기독교의 시선으로 볼 때 이러한 굴곡 없는 삶이 그리스도인에게는 최선의 삶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보혈에 의한 죄사함과 구원의 신앙으로 성립하는 종교이다. 예수의 고난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가 있다.
이제 우리에게 고난은 다른 차원의 의미로 다가오게 된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베드로 전서 4: 13)라고 성서에 기록된 말씀과 같이 고난은 하나님에게로 가까이 나아가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고난의 시간 속에 머물고 있다면 지금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는 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고자 우리에게 주신 것이니 그것이 힘겹더라도 담대하게 맞이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삶의 고난에 직면했을 때 흔히 우리는 고난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 기도일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며 주신 고난을 받지 않겠다고 억지로 떼를 쓰는 격이다. 일종의 불순종이다. 우리는 교회의 일을 두고 순종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순종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세의 기도는 "저에게 주신 고난의 시간을 인내하게 하소서"가 되어야 한다.
시간 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에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우리에게 닥친 고난의 시간 또한 끝날 때가 있다. 언젠가는 고난이 끝나고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는 순간이 온다. 우리의 생명이 다함도또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