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는 항상 푸르고

by 밤과 꿈

하루가 멀다 하고 기온이 내려가고 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오래지 않아 우리가 겨울의 문턱을 성큼 넘어갈 때가 온다. 나뭇잎은 한순간 찬란한 색으로 치장하고 생명의 마지막 순간을 구가하다가 이내 땅에 떨어져 퇴색하고 메말라 갈 것이다. 이렇게 겨울이 오면 숲은 공허하고 겨울의 찬바람 만이 앙상해진 숲의 빈자리를 가득 채우게 된다. 그래도 사시사철 시들어 떨어지지 않는 침엽수가 있어 헐벗은 겨울을 견딜 것이다.

침엽수라면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 갈참나무와 같이 숲 속 동물에게 식량을 제공하는 수종이 대표적이겠지만 어린 시절 가장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침엽수는 단연 소나무였다. 소나무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종이지만 옹이가 많고 해충이 많이 기생, 쓰임새가 한정적인 수종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은 소나무가 우리의 산야에서 많이 사라져 해변에서 바닷바람을 막을 목적으로 심긴 해송 이외에는 별로 본 기억이 없다.

어릴 때에는 눈에 보이는 것이 소나무였고, 소나무에 기생해 살아가는 송충이는 큰 골칫거리였다. 학교 운동장 가에 심긴 소나무 그늘에서 더위를 피하다 보면 어느 틈에 소나무에서 떨어진 송충이가 어깨를 붙들고 앉아 기겁을 했던 기억이 있다. 또한 해마다 한 번은 수업 대신에 나무젓가락과 깡통을 들고 가까운 야산에서 송충이를 잡는 것이 연례행사였다. 1960~70년대를 살아보지 않은 세대에게는 송충이가 생소한 벌레이겠지만, 송충이는 솔나방의 유충으로 많이 자라면 몸피도 굵은 데다가 털이 많아 느낌이 과히 좋지 않은, 징그러운 벌레다. 지금도 소나무를 생각하면 송충이에 대한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어린 시절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산자락 길을 걷다 보면 어렵지 않게 잘 가꾼 소나무 숲을 만나게 된다. 가까이에 조선시대로부터 이 지역에 터 잡고 살았던 한 종중(宗中)의 묘지를 공원처럼 가꾸어 관리하고 있는 곳이 있다. 종중의 사유지인지라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담벼락을 통해 바라보는 소나무 숲의 규모가 만만치가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담벼락 너머로 사시사철 변함없이 푸른 소나무 숲에 자주 시선이 가면서도 크게 관심을 둔 것 같지는 않다. 평소에도 자주 지나가는 길이지만 오늘따라 소나무가 눈에 들어오는 까닭은 활엽수 일색의 숲 속 나무들이 점차 광합성을 멈추고 긴 겨울의 칩거를 준비할 때, 저 홀로 늘 푸른 소나무의 가치를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위의 모두가 생명 활동을 잠시 멈추고 스러질 때 푸름을 잃지 않는 상록수의 존재가 더욱 도드라지는 것으로, 모든 것이 부재한 빈 공간 속에서 오롯이 홀로 푸를 수 있는 상록수의 존재감이 크게 다가오는 것이리라.

아마도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와 여린 신록을 마주할 때까지는 이 소나무들에게 눈길이 자주 머물게 될 것이다. 산자락 길에서 만나는 소나무가 있어 겨울의 빈산이 주는 황량함을 견딜 수 있으리라. 그렇게 겨울을 견디다 보면 어느 틈에 봄은 온화한 모습으로 곁에 다가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저들 소나무의 푸름과 같이 내 마음의 젊음 또한 퇴색하지 않고 생명이 다할 때까지 영원할 수 있기를 소나무를 바라보며 기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