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은 우리의 고유 절기인 한로였다. 차가운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는 때를 한로라고 한단다. 기온이 더 내려가면 찬 이슬은 서리가 될 터, 농부에게는 한 해 농사를 망치지 않기 위해서는 추수를 서둘러야 할 시기이기도 하다.
마침 한로인 8일부터 기온이 급하게 내려갔다. 게다가 오늘부터는 가을에 깊이를 더할 비마저 내려 산중(山中)에서 나뭇잎은 푸름을 잃어가면서 시든 듯 추색(秋色)을 덧입고 있는 중이다. 어떤 나무는 어떤 연유에서인지 성급하게 저 홀로 잎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사람에게도 성질이 급한 사람이 있듯 나무도 수종에 따라 환경에 대한 반응에 차이가 있는가 보다.
또한 추분에 균형을 맞추었던 낮과 밤의 길이가 한로를 기점으로 해서 기울어 점차 밤의 길이가 길어진다. 지구의 운행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에는 밤이 길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밤이 깊어만 간다. 앞으로 만날 겨울의 빈산에서는 밤에도 분주한 풀벌레의 울음소리와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마저 그친 적막한 공간에 바람소리 만이 산등성이를 훑고 내려온다. 사람의 마을도 고요하기는 마찬가지. 차량의 통행이 드문 이면도로나 인적은 끊기고 가로등만 차갑게 불을 밝힌 동네 골목길마다 쥐 죽은 듯이 고요한데,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간간이 들리는 개 짖는 소리나 찹쌀떡 장수의 찹쌀떡 파는 소리가 아직 사람의 마을이 잠들지 않고 깨어있음을 일깨운다. 또한 겨울의 깊고 적막한 밤은 쉽게 잠을 청하지 못할 모종의 설렘 같은 것이 있다. 깨어 있는 정신에 내면의 소리가 자리를 잡는다. 이처럼 늦가을에서 겨울에 이르는 계절에는 적막한 가운데 어둠이 깊어가고 우리의 내면도 영글어 간다.
앞으로 기온은 더욱 내려가고 가을은 깊이를 더하면서 겨울을 향해 갈 것이다. 마침 오늘은 설악산에 첫눈이 내렸다고 한다. 서울에서야 11월 중순은 지나야 첫눈이 내리고 이를 신호로 해서 서서히 겨울로 접어들겠지만, 첫눈이라는 말의 어감 만으로도 벌써 겨울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길을 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단단히 무장을 갖췄다. 어제는 슈퍼마켓이 집에서 멀지 않다고 반팔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내려간 기온 때문에 큰 불편을 느꼈다. 서둘러 두꺼운 옷을 점검해야겠다. 이렇게 계절의 변화는 우리를 분주하게 만든다. 행동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까지 분주하게 만드는 것이다. 멀지 않은 연말에 괜히 쫓기듯 마음이 바쁘다. 특히 교회에서 성가대원으로 봉사하는 내 경우는 해마다 10월부터 시작되는 성탄 칸타타의 준비로 일찍 연말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바쁘게 성탄 준비를 하다 보면 한 해가 다 가고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면서 새해를 맞이한다.
그러나 이렇게 바쁘게 한 해를 마무리하다 보면 가을을 지나 겨울로 넘어가는 이 계절의 깊이를 제대로 느끼지를 못한다.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유난히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놓치고 마는 삶의 보석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소멸을 향해 가면서 자신을 비울 때 우리의 내면을 채워가는 것, 그것이 가을이 깊이를 더하는 이때에 우리가 생각할 것이다. 찬바람에 떨리는 문풍지의 소리에서 외로움을 느낄 수 있는 서정이 깊은 겨울밤에는 있었다. 겨울을 향해 바쁜 걸음을 옮기는 지금은 깊이를 더해가는 밤의 서정에 빠져들 때이다. 내리는 비와 함께 깊어가는 가을밤에 젖어드는 상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