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막한 현실에서 감성을 벼리다

by 밤과 꿈

코로나로 인해 일어난 변화. 하나하나씩 찾아보면 적지 않은 변화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가장 큰 변화라면 그동안 외면해왔던 SNS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사회적 여건이 가져다준 변화일 것이다. 그렇게 SNS를 시작하면서 주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생각나는 대로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일 시 한 편을 읽고 이를 SNS에 공유하기로 했다. SNS 친구가 그다지 많지 않은 데다가 시를 좋아할 친구도 많지 않을 것 같았지만 무엇보다도 하루에 시 한 편은 읽으면서 살자 하는 나와의 약속이 더 컸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슬슬 부담스러워지고 있다. SNS에 올린 시들을 따로 표시해 두지 않았기에 때때로 헷갈릴 때가 있다. 아직은 내 기억력을 믿지만 언젠가는 기억력에도 과부하가 걸릴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진 밑천이 바닥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자 애쓰고 있다. 사실 예전에도 하루에 시 한 편 읽기를 시도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처럼 SNS에 노출되는 일도 아니라서 중도에 흐지부지되어 가족으로부터 작심삼일이라는 핀잔만 듣게 되었던 전례가 있었기에 내심 간단히 벼르고 시작한 일인 것이다.


오늘은 문태준 시인의 '시월에'라는 시를 읽었다.


오이는 아주 늙고 토란잎은 매우 시들었다


산 밑에는 노란 감국화가 한 무더기 헤죽, 헤죽 웃는다 웃음이 가시는 입가에 잔주름이 자글자글하다

꽃빛이 사그라들고 있다


들길을 걸어가며 한 팔이 뺨을 어루만지는 사이에도 다른 팔이 계속 위아래로 흔들리며 따라왔다는 것을 문득 알았다


집에 와 물에 찬밥을 둘둘 말아 오물오물거리는데

눈구멍에서 눈물이 돌고 돌다


시월은 헐린 제비집 자리 같다

아, 오늘은 시월처럼 집에 아무도 없다

(문태준 시집 '가재미' 중 '시월에', 문학과 지성사)


문태준 시인은 내가 좋아하는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시인의 시가 지닌 토속적인 서정성이 좋다. 지금은 그곳으로부터 떠나 바라보는 낭만적인 서정이 좋은 것이다.

이 시에서는 저물어가는 가을의 이미지에 쇠락한 농촌의 풍경이 겹쳐 시를 읽는 마음이 저리다.

특히 "시월은 헐린 제비집 자리 같다/아, 오늘은 시월처럼 집에 아무도 없다"는 인식에 이르러서는 마음도 무너져 콧등이 찡해 온다.

더불어 시심에 공감하는 마음으로 하루의 보람과 의미를 찾는다.


그래도 오늘은 햇살이 좋았다. 시월도 지나 11월에 만나는 환한 햇살이 반갑다. 저물어가는 풍경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햇살이 있어 오늘의 일상도 환하다. 비록 코로나로 인해 우울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이지만 오늘처럼 햇살 좋은 날에 움츠렸던 일상의 그늘을 걷어내고 마음만큼은 맑은 공기와 밝은 햇살을 호흡했으면 한다.

설혹 우리의 일상이 환함에 속해 있지 않더라도 자신의 내면에서 일상에 환함을 더할 내용을 찾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것이 나처럼 시를 읽는 것이 되었든,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옮겨 표현하는 것이 되었든, 음악이나 미술과 같은 예술에 빠져 보는 것이 되었든지 간에 삭막한 현실 속에서 우리의 감성을 활성화시키고 예민하게 벼릴 수 있는 것이라면 어려운 이 시대를 이겨 살아가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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