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택의 시 '젖은 옷은 마르고'
하루종일 너를 생각하지 않고도 해가 졌다.
- 김용택의 시 ‘젖은 옷은 마르고’ 중에서
이유도 없이 부끄러운 날이 있다. 햇살 좋은 날, 얼굴에 쏟아지는 햇살의 세례가 부끄럽고, 비 오는 날 차양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부끄럽다. 심지어 만사가 분주한 한낮의 소음이 부끄럽다.
거의 매일 미디어를 장식하는, 생때같은 목숨을 앗아가는 사건 때문에 부끄럽다. 정치하는 사람들의 수준이 부끄럽고, 문화계마저 파벌을 형성하는 현실이 또한 부끄럽다.
흘러간 시간들이 부끄럽고, 지금 적어가는 삶의 목록이 때때로 부끄럽다. 그래서 우리는 부끄럽지 않을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꿈꾸는 미래도 별 수 없이 부끄러움은 여전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김용택 시인의 시 ‘젖은 옷은 마르고’를 거듭 읽으면서 오롯이 떠오르는 부끄러움의 흔적을 더듬는다.
“너를 까맣게 잊고도 꽃은 피고
이렇게 날이 저물었구나.”
시적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이겠다. 지금은 잊힌, 아니 잊었다고 생각했던 사람일 수도 있겠고, 지금 한순간도 마음에서 놓지를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시인의 마음을 내가 짐작할 수는 없지만 내 가 생각하기에 이 시는 옛사랑에 대한 시다. 지금 한창 뜨거운 사랑이라면 잠들기 전 한 시라도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라고 해서 그 존재가 잊히고 그 시간이 흔적도 없이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잊고 싶어 한 세월이 오래되어 잊었다고 생각할 따름이다. 그리고 잊기 위해 애쓴 기억마저 흐릿하게 사라진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떠오른 옛사랑이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한 때 잊지 못해 죽을 것 같았던 감정도 모질게 기억에서 뜯어낼 수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그래서 “꽃이 피는데, 하루가 저무는 일이 생각보다 쉽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인의 인식은
“젖은 옷은 마르고 꽃은 피는데
아무 감동 없이 남이 된 강물을 내려다본다.”
는 데 이르고, 나아가 다음과 같은 자책을 낳는다.
“살 떨리는 이별의 순간이
희미하구나. 내가 밉다”라고. 또한
“젖은 옷은 마르고, 이별이 이리 의미 없이 묵을 줄 몰랐다”는 뒤늦은 깨달음에 도달한다.
산다는 일이 곧 사랑하는 일이라면 부끄러움은 일상에 상존하는 현실이다. 생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에 더불어 부끄러움도 있는 것이다. 스스로 만족하는 삶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망각이라는 편리한 기능이 있어서 부끄러움을 잊고 살 수가 있다. 지극한 아픔도, 슬픔도 잊을 수 있다. 다만 망각의 담 너머로 되살아나는 부정의 감정들을 굳이 회피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감정들에 의해 우리의 삶은 깊이를 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 마음에 부끄러움이 있다면, 그만큼 우리는 충실한 삶을 살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시인의 시 ‘젖은 옷은 마르고’는 다음과 같은 울림이 큰 문장으로 시작한다.
“하루종일 너를 생각하지 않고도 해가 졌다.”
담백한 문장에 담긴 부끄러운 감정이 크낙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