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은 인생을 감싸고 흐른다(16)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 중에서 제18 변주
양희은의 노래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지금 하는 사랑을 지속할 어떤 여력을 찾지 못할 때 우리는 끝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그 사랑을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예감하게 됩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그런 사랑이 있기는 하겠지요.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서로의 마음이 온전히 닿지 않아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을 마치 불가항력이 작용한 것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고 자의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는지.
이렇게 서툰 사랑이 끝나도 그리움은 오래 마음에 남는 법입니다.
끝난 사랑에 대한 그리움도 있겠지만, 그리움으로 자라는 사랑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모두를 불면의 밤으로 이끌었던 시간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매불망, 그리워하는 시간들의 축적이 사랑을 키우는 사실에 마음이 행복에 겨워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그리움이야말로 사랑을 아름답게 하는 자양분 같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움은 사랑의 아름다운 배경일 수 있습니다.
그리움이 있어 지나간 사랑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게 됩니다.
그리움이 없다면 지난 사랑은 마음속에서 황량한 풍경으로 남아 있게 될 것입니다.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로 그리움이 필요합니다.
부부 사이의 애틋한 정이라는 것도 부부가 살아가면서 서로를 바라보는 그리움을 매개로 해서 생성되는 것입니다.
제목조차 기억이 없지만 청소년기에 TV에서 보았던 영화가 한편 있습니다.
시간의 왜곡으로 전생의 아내를 만나게 된다는 황당한 내용의 SF영화였습니다.
이 영화가 희미하게나마 기억에 남게 된 것은 영화의 배경으로 흐르는 라흐마니노프의 낭만적인 음악이 인상 깊었던 까닭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시대를 뛰어넘어 간직해 온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영화의 황당함을 덮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인연이 아니라서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도 그리움 속에서 머물 수 있다면 끝난 사랑이 아닙니다.
사실 모든 만남이 그리움의 감정을 유발하고 유지할 수 있다면, 그 자체 만으로도 아름다운 만남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그리운 대상이 가득하다면 우리는 사랑으로 충만한,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