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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과 꿈 Apr 09. 2024

아름다운 날들을 기억하라

- 음악으로 쓰는 에세이(14)

 만개한 벚꽃을 눈에 담았던 것이 잠시였는데 벌써 벚나무에 새싹이 돋아 꽃을 밀어내고 있다. 유독 금년에는 꽃의 시간이 짧았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때늦은 꽃샘추위로 개화 시기가 늦었다. 그렇다고 신록이 자신의 시간을 늦추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다. 생명 현상이야 자연의 순리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래도 숨이 막히도록 아름다운 시절이 오래 곁에 머물지 못하고 떠나간다는 사실이 아쉬울 수밖에. 우리의 인생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적지 않게 속이 상한다.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고정희 시인이 쓴 시에 ‘혼자서 건너는 융융한 삼십 대‘라는 시구가 나온다. ‘융융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화평한 기온이 있다”라는 것이다. 그 시인의 삶을 알고 있었기에 그 의미를 짐작 못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내가 시인의 시를 처음 접했을 때가 이십 대였기에 시인의 마음을 오롯이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십 대라면 사춘기를 지났어도 여전히 질풍노도의 시기에 머물고 있을 때, 뜨거운 피가 들끓어 불의를 외면하지 못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고통 때문에 번민의 시간으로 점철된 시기다. 그러나 이 광풍과 거센 파도가 모두 지나도 여전히 세상에는 불의가 가득하고 죽을 것처럼 했던 사랑이 종 쳤지만 죽지도 못하는 것이 우리의 누추한 청춘이다. 또한 젊은 날의 누추한 얼룩은 마음에 깊은 상흔을 남기기 마련이다. 생의 뜨거웠던, 그러나 누추했던 시간이 마음에 새긴 상흔을 가진 사람과는 대화를 나누다 보면 모종의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그 뜨거웠던 시간이 지나가고 찾아오는 여전한, 느끼기에 허무한 일상은 오지 않은 새로운 세상, 붙들지 못한 사랑에 대한 회한을 동반하고 이에 대한 약간의 부끄러움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 되는 것이다. 시인이 노래한 ‘혼자서 건너는 융융한 삼십 대’의 모습이 이런 것이리라. 뜨거운 이십 대를 여성운동과 시를 붙들고 견뎌온 시인이 나이 서른을 맞이하면서 느낀 감회가.


 떠나가는 꽃의 시간을 붙들 수 없듯이 우리 인생의 뜨거운 한 때도 흘러간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누추했던 그 시절의 상흔도 뜨거움이 있어 기억에서 자유롭지가 않다. 그러나 우리 생의 한 순간이 뜨거웠기에 아름다울 수 있음을 기억은 증거 한다. 사라지지 않아 아픈 상흔이 떠오를지라도 아름다운 그 시절을 잊지 말자. 그만큼 뜨거울 수 있을 때가 또 있을까.

 슈만의 가곡집 ‘미르테의 꽃’에는 ‘그대는 한 송이 꽃과 같이’라는 노래가 있다. 독일의 서정시인 하이네의 시를 가사로 한 이 노래는 사랑을 주제로 한 것으로 이 노래의 대상을 자신에게 두고 뜨거웠던 시절을 가까스로 넘어온 스스로에 대한 위로로 생각하면 어떻까. 짧지만 강렬한 이 노래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언제나 인생을 사랑하라고, 아름다운 날들을 기억하라고.

 

슈만의 가곡집 ‘미르테의 꽃’ 중에서 ‘그대는 꽃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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