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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과 꿈 Aug 16. 2024

경기병 서곡(5)


 그 아이의 집에 초대받은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내가 그 아이와 처음 충돌하게 된 자그마한 사건이 있었다.

그 아이가 로봇 비슷한 장난감을 학교에 가져온 게 화근이었다.

그 장난감이 로봇인지 우주 비행사였는지는 기억이 명확하지 않다.

지금 기억하기로는 삼십 센티미터 가까운 크기로 큼지막한 상자에 담겨 있는 것이 꽤 정교하게 만들어져 흔히 보는 조잡한 장난감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내가 일곱 살이었던 1969년에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 인류가 최초로 달의 지표면에 발을 디디는 대사건이 있었다.

늦은 밤시간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암스트롱과 올드린, 두 우주인이 달의 표면을 폴짝폴짝 걸어 다니는 신기한 모습을 보았었다.

어린 나이에 인류의 위대한 첫걸음에 대한 흥분 같은 것이 있지는 않았다.

그냥 매일 밤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달에 사람이 가서는 재미있게 걸어 다닌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아마도 그 아이가 학교에 가지고 온 장난감은 로봇이라기보다는 인류의 달 착륙이라는 사건에 편승해서 미국에서 제작, 판매하는 제품이었을 것이다.

 딴에는 한 번의 초대로 자신이 반 아이들과 많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당연 반 아이들은 장난감을 구경하기 위해 그 아이  주변으로 우르르 몰려들었고, 그 아이는 그 상황을 즐기는 듯했다.

그런 그 아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불편한 까닭도 있었겠지만, 학급의 반장으로서 학급에 소란을 야기하는 그 아이의 처신을 묵과할 수는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담임 선생님이 교실에 없을 경우 학급 간부가 선생님을 대신하여 반 아이들을 통제하는 일이 당연하게 이루어졌다.

예를 들면 떠드는 아이 이름을 흑판에 적는 것과 같은 치사한 행동 말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아니라 그 불편부당한 일을 아이에게 시킨 어른들이 치사한 것이다.

그런 일들이 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교내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었다.

동등해야 할 한 반 아이 사이의 불편한 현실을 아무도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고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에 문제가 있었다.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 볼 때 과거의 모든 일들이 아름답게만 생각된다지만 어린 날의 교육 현실로는 야만의 시대를 살았다고 말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너, 학교에 이런 거 와 가지고 오노?"

 "......"


 반장으로서 소란을 부르는 그 아이의 행동에 대해 제재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녀석은 별 대꾸도 없이 말하는 내가 못내 아니꼽다는 듯 두 눈을 멀뚱 거리며 마주 바라만

보고 있었다.

더군다나 앞으로 길게 내 민 자라목은 선생님도 아니면서 네 까짓게 뭘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비아냥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담임 선생님이 내게 부여한 반장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다.

며칠 전에는 녀석의 어머니가 나를 부끄럽게 만들더니만 이제는 녀석까지 기고만장해서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일마가, 재수 없는 서울래기 하나가 반 분위기를 확 조지고 있노."


 격하게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나는 한달음에 녀석에게로 달려가서는 녀의 멱살을 잡았다,라고 생각했지만 녀석의 큰 키에 내 두 손은 멱살에는 미치지 못하고 녀석의 가슴 부근에 머물렀다.

그리고 하필이면 내 손이 녀석의 명찰을 부여잡고, 이를 뜯어내면서 핀을 고정했던 셔츠를 약간 찢어버렸다.

그 아이나 나, 모두가 맞닥뜨린 뜻하지 않은 상황에 당황하기는 마찬가지로 어색한 침묵이 잠시 둘 사이를 중재하고 있었다.

마침 교실에 들어온 담임 선생님으로 해서 난감한 상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로봇인지 우주인인지를 학교에 가져와 자랑삼아 꺼내 놓은 그 아이의 잘못이 컸기에 선생님은 내 잘못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 아이와의 충돌은 내 완승으로 끝난 듯 보였지만 방학 당일에 또 한 번의 충돌이 있었고, 그 아이의 큰 키라는 마찬가지 이유로 두 번째 충돌은 나의 완패로 끝나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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