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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과 꿈 Aug 23. 2024

경기병 서곡(6)


 한 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에 들어가는 날, 항상 그랬듯이 그날은 별도의 수업 없이 대청소를 한 후 일과를 마칠 참이었다.

한 반 아이의 절반은 교실을 청소하고 나머지 절반은 운동장에 널린 휴지 등 이물질을 줍는 비교적 수월한 일이 맡겨졌다.

화장실 청소와 같은 어려운 일은 고학년이 맡아하게 될 것이다.

나는 반 아이들을 이끌고 운동장 중에서 우리 반에 할당된 구역을 청소하게 되었다.

그 아이도 나와 같이 교실이 아니라 운동장을 청소하게 되었다.

우리 모두는 선생님의 통제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에 들떠 청소를 한다기보다는 함께 놀러 나온 기분이었다.

잠시 후에는 여름방학이 시작된다는 가벼운 흥분과 기대감까지 더했기 때문일 것이다.

방학책과 함께 받게 될 성적표에 대한 걱정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더군다나 우리에게 할당된 청소 구역이 아름드리나무가 뙤약볕을 가리는 운동장의 가장자리라는 사실이 더할 나위가 없이 좋았다.

바람에 살랑거리며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내는 햇살의 감촉이 그렇게 부드럽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초여름 대기의 끈적거림도 나무가 만드는 그늘에서  견딜 만하다고 생각할 즈음 우리 속에서 들려오는, 자지러지는 괴성이 오전이라는 시간이 선물하는 여유로움을 순식간에 허물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괴성을 좇아 머문 곳에 얼굴이 파랗게 질려 사색이 된 그 아이와 한 손에 큼지막한 송충이를 잡아 그 아이의 얼굴에 디밀고 있는 종철이 마주 서 있었다.

종철의 입장에서는 흔히 하는 장난을 반 친구에게 쳤을 뿐이었다.

짓궂은 아이들이 송충이를 여자 아이의 어깨에 몰래 올려놓고선 놀라게 하는 것쯤은 자주 보게 되는 작은 소동이었다.

물론 여자 아이를 울린 대가를 단단히 치러야 했지만 그래도 좋은지 어떤 아이는 여자 아이를 상대로 한 짓궂은 장난을 그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았다면  아이에 대한 종철의 장난이 친밀함의 표현이라는 사실을 알 수도 있었다.

어느 정도 친밀한 감정이 생겨야만 스스럼없이 장난도 걸게 될 일이었다.

오히려 종철은 예상치 못한 그 아이의 과도한 반응에 크게 당황했을 것이었다.

심지어 그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곧장 종철에게 달려들 태세였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그 아이의 큰 덩치에 가뜩이나 또래에 비해 작은 종철은 큰 곤욕을 치르게 될 판이었다.

내가 반 아이들의 인솔자였기에 벌어진 사단을 방치한다면 그 또한 문제가 될 일,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인 두 아이 사이를 가로막고 섰다.

그 순간 그 아이가 휘두르는 팔이 눈앞으로 지나는가 싶었는데 코 속에서 뜨끈한 액체가 타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훌쩍 액체를 들이켜 삼킬 때 쇠 맛이 느껴졌다.

간혹 코피를 흘릴 때 느끼곤 했던 친숙한 맛이다.

손등으로 코에서 흐르는 피를 훔치자 주변에서 술렁거림이 일었고 정작 그 아이는 당황한 듯 뚱한 표정으로 기세등등했던 좀 전과는 달리 제자리에서 얼어붙은 듯이 서 있었다.

그 아이의 모습이 뚱한 표정과 거북목이 묘하게 어우러져서 아주 천연득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태평한 그 아이의 모습에 왈칵 짜증이 났다.

그러나 그 아이라고 완력을 쓸 생각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유독 체구가 작은 종철을 만만하게 생각하고 덤벼들었을 것이다.

하필이면 그때, 내가 끼어들었던 것이고 종철을 붙들기 위해 치켜든 그 아이의 손이 내 얼굴을 스쳤던 것이리라.

자신을 대신해 피해를 입은 나한테 미안했던지 오히려 종철이 난리였다.


 "절마 저기, 미친나. 어디서 주먹질이고. 빨리 슨생님한테 말해야 될 끼다."


 자신도 먼저 장난을 건 잘못이 있으면서도 종철은 괜히 선생님까지 언급하며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상황을 더 크게 키우고 싶지 않았다.


 "고마 해라. 쪽 팔리게."


 사실 이 상황에 내가 잘못한 것은 없었다.

코피가 터진 것도 실수라고 할 것도 없는, 우연한 일로 내가 부끄러워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이 불편한 상황에서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된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러웠다.

그들 모두가 이 상황에 대한 여차저차한 내막을 속속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말이다.

내가 이 사건을 나의 완패라고 기억하는 까닭이다.

괜히 그 자리에 없었던 반 아이까지 이 일을 알게 되어 부끄러움을 더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 자체가 인솔 책임을 맡았던 나에게 전혀 책임이 없다고도 말하지 못할 일인지라 그냥 이즈음에서 상황을 종결짓는 편이 바람직했다.


 한 학기라는 짧은 기간 동안이지만 여러 모로 불편한 관계를 이어왔던 그 아이는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그날의 어수선한 사건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거북목이 어색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여름방학이 다 지나가고 개학을 했지만 이후로도 그 아이의 빈자리에 대하여 선생님으로부터 아무 설명을 듣지 못했다.

아이들도 그 점을 크게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사실 나는 그 아이의 부재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궁금했지만 선생님에게 질문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 아이는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에 없는, 잊힌 아이가 되었다.

그 아이를 잊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린아이의 속성이 그렇다.

현재 같이 어울리지 않는 데다가 오래 사귀지도 않은 친구를 오래 기억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어른들은 아이들보다는 살아가는 방식이 복잡해서인지 그 아이와 가족이 사라진 이후 한동안 그 가족은 어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곤 했다.

그것도 시들해질 즈음 그 아이와 가족들은 자녀가 다니는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하는 마을 공동체의 관심에서 영영 멀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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