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퇴근의 이유가 그 아이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내에게는 말할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동창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겨우 한 학기를 함께 한 알량한 인연으로 여러 날을 의미도 없이 시간을 투자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리가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어린 날의 그 아이가 맞는지 확인하고는 언제 밥이나 먹자고 인사치레나 하고 말 일을 말 한마디 못 붙이고 거리를 배회했다는 사실을 안다면 아내는 아마 내가 제정신이 아니거나 조금 모자란 사람 취급을 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그 아이의 주위를 배회한 이유를 적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아내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할 말도 없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어릴 때 그 아이에게 가졌을 경쟁심 같은 것이 여태 남아있을 리도 만무했다.
그렇다고 부잣집 도련님 같았던 그 아이의 몰락을 안주삼아 여러 날 확인하는 비열한 심사가 동했던 것도 아니었다.
내가 좀 더 젊어서 바쁘게 살면서 사회적 야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면 그깟 깊지 않은 옛 인연쯤이야 되새김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이제 바빴던 시간에서 한 발짝 물러날 즈음에 우연히 조우한 그 아이에게 품었던 하나의 의문, 즉 그 아이의 가족이 지방의 작은 도시에 갑자기 나타나서는 소리 소문도 없이 그 도시에서 사라져야 했던 속사정이 궁금했던 것이리라.
마땅한 이유를 듣지 못한 채 이 학기 개학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영영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잠시 어리둥절했던 우리와는 달리 어른들 사이에서는 한동안 그 아이의 가족에 대한 무성한 소문이 나돌았다.
그 아이의 아버지가 이 도시에서 벌렸던 사업이 실패, 집을 팔고 온 가족이 도시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그럴듯한 이야기가 떠도는가 하면, 부도를 낸 그 아이의 아버지가 감옥을 들어가고 재산을 모두 잃은 나머지 가족(가족이래야 그 아이와 어머니가 전부이지만)이 남세스러운 처지를 피해 야반도주를 했다는 등 그 아이의 부모가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살아왔다는 가정 아래 생겨난 소문이 주를 이루었다.
그런가 하면 아무도 그 아이의 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서 파생된, 많이 나간 소문이긴 하지만 그 아이의 아버지가 사실은 북에서 교육을 받고 남파된 간첩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성실한 가장인 양 신분을 위장, 오래 외국을 오가며 암약하다 모처럼 집에 온 날에 잡혔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여러 날 그 아이의 집 주변에 잡상인들이 모습을 보이다가 그 아이의 아버지가 잡혀가면서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는 그럴듯한 정황까지 제시할 정도로 억척에 가까운 소문은 집요했다.
한 달 가까이 무성하게 떠돌던 소문도 점점 시들해졌지만 어른들의 입방아가 만들어낸 소문을 우리는 소문이 아닌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른들의 무책임한 입방아 때문에 당시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도망자나 빨갱이 가족이 되어 버린 셈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점에 대한 아무 죄책감도 없이 그 아이를 친구의 영역에서 삭제했던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