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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과 꿈 Sep 13. 2024

경기병 서곡(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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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림역에 가지 않은 지 일주일이 지났다.

아내의 참견에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퇴직을 앞두고 해야 할 일도 많았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직장에서는 떠날 날을 받아둔 시한부 인생으로 업무에 대한 의욕도 희망도 발견할 수 없어 시간만 겨우 때우고 있는 형편에 퇴직 후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다.

미래를 계획하기에는 현실을 애면글면하며 쫓기듯이 살아왔다.

고향 친구의 연대보증으로 수년간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로 해서 월급이 차압당했을 때 아내의 재취업이 없었다면 생활의 어려움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월급의 압류는 비록 연대보증일지라도 내 채무 사항을 직장에서 알게 되어 그다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는 직장 생활의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매사에 있어 아내는 나를 못 미더워했다.

저질러 놓은 잘못이 있으니 나를 대하는 아내의 태도에도 대꾸할 말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래도 남자로서 자존심이 있으니 여차하면 버럭 화를 내면서 곤란한 상황을 모면하기 일쑤였다.

방귀 뀐 놈이 먼저 화를 내는 식의 내 반응을 모른 척 그냥 지나갈 아내가 아니라서 꼭 말 한마디를 보태 내 속을 뒤집어 놓곤 했다.


 "왜 화를 내? 내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니잖아. 당신이 그때 몰래 일을 저지르지만 않았어 봐. 내가 이러나."


 그러니까 찍소리 하지 말라는 아내의 일침이다.

아내가 힘들었던 지난 시간에 대한 보상을 남편을 갈구는 것으로 받아낼 작정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내의 힐난은 집요하고도 끈질겼다.

아내의 그런 대응이 부부관계에 부정적으로 작용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미 채무를 변제하기 위해 애면글면하던 때부터 부부 사이에 틈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경제적인 압박에 짓눌린 일상은 다른 생활을 그만 시들하게 만든다.

삶의 한순간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탓일까.

모든 기대와 희망이라는 것이 헛되게 생각될 만큼 뜻하지 않은 불행은 삶의 전부를 뒤틀어 버린다.

이때 미래라는 이름으로 삶을 비추던 빛은 생기를 잃고 삶의 누추를 돋보이게 할 따름이다.


 "그래도 제수씨가 있어 네가 이만큼이라도 제기할 수 있었던 거야. 힘든 상황에서도 가정을 지킬 수 있었다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고 고마워해야지."

 

 부정할 수 없는 친구 병철의 말처럼 그 사실에 기대어 여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한 번의 실수는 내 삶에 불편한 족쇄가 되어 운신의 폭을 좁혀온 것이다. 



 누구나 오랜 배움의 과정을 거쳐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에는 자신의 분야에서 청운의 꿈을 품기 마련이다.

그러나 넘치는 의욕을 능가하는 자신감으로 무장한 나이에 불의의 일격을 받아 치명상을 입게 되면 다시 전투력을 회복하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라는 전투 현장에서 영영 전투력을 회복하지 못한 채 패잔병이 되어 인생이라는 전쟁에서 낙오, 약물 중독과 같이 피해의식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평생을 낭비하게 된다.

 내가 그랬다.

비록 작은 도시지만 고향에서 수재 소리는 못 들었어도 꽤 영민한 학생으로 자라 수도 서울의 대학교에 들어갔으니 내 인생은 생각건대 잘 닦인 포장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개천에서 용이 난 정도는 아니지만 중소도시에서 서울로 입성했으니 나름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만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에 최업, 사내에서 만난 아내와 결혼할 때까지는 항상 포장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는 여유까지 덤으로.

그러다 잘 못 접어든 비포장도로에서는 주변을 바라보기는커녕 안전 운전을 자신하지 못할 정도로  긴장을 풀지 못했다.

그와 같은 긴장 상태가 내 인생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시 포장도로에 접어들었다는 안도감은 잠시, 어느덧 현실로 닥친 은퇴가 먼저 실감으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직장이라는 안전장치가 현실 감각을 무디게 한 측면이 있었다.

내 삶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 직장이라는 안전장치를 과감하게 떨쳐버렸다면 어땠을까.

가정이기는 하지만 보다 일찍 비포장도로를 벗어났을지도 모른다.

좀 더 악에 받쳐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돌이켜볼 때 직장이 주는 알량한 교환 가치를 버리지 못한 사실에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내가 처한 것과 비슷한 상황에서 그런 비현실적인 결단을 감행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쩔 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지만 지금까지도 자신을 옥죄고 있는 시간이라는 덫에 사로잡힌 자신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이런 까닭에 미래에 대한 별무대책이 없는 만큼 마음은 오히려 번다한 것이 지금의 내 모습이다.

그리고 퇴직을 앞둔 마음이 하루가 멀다 하고 복잡해질수록 다시 그 아이가 보고 싶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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