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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과 꿈 Sep 20. 2024

경기병 서곡(10)


 

5


 두 주가 지나고 신림역을 찾았다.

그러나 그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다음 날, 그다음 날도 거북목의 샌드위치맨은 보이지 않았다.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인지 궁금했다.

며칠을 그렇게 보내고 그 아이가 일했던 황제숯불갈비를 찾아가 그 아이의 안부를 물어보기로 했다.


"아, 배 씨 말씀하시는군요. 그런데, 배 씨와는 어떤 사이신지? 뭐, 다른 뜻은 없습니다. 워낙 아무 연고가 없는 사람이라."


 "예, 우연히 지나가다가 보게 된 모습에서 초등학교 동창의 모습이 보여서요."


 "배 씨가 한눈에 들어오는 모습이긴 하지요. 그런데, 한발 늦으셨네. 지난주 목요일에 일을 관뒀어요. 돌보던 모친이 돌아가셔서 더 이상은 이곳에서 일할 이유가 없어졌거든요."


 "예......"


 사장인 듯 보이는 남자의 말로는  년 전에 그 아이가 일자리를 찾아왔다고 한다.

저녁 시간에 한 시간 일할 자리를 찾는다는데 처음에는 황당했더란다.


 "그렇잖아요, 알바라도 하루에 한 시간 일하는 자리가 어디 있겠어요? 여기서 남자가 할 일이라는 게 숯불 피우는 일이고, 그게 보기보다는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 아이의 딱한(답답하다는 표현이 더 적합한) 사정이 그 아이를 매몰차게 외면하기도 힘들었단다.

그 아이는 뇌출혈로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인근의 요양 병원에 모시고 홀로 간병하고 있다고 했다.


 "사람참 답답한 것이 요양보호사가 간병하는 병동에 모친을 모시고 자기 일을 하면 될 텐데... 효성이 지극한 건 알겠지만,  자신의 삶을 그렇게 희생한다는 것이 안쓰러워서."


 사장의 말로는 자신도 치매 환자인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셨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자신은 어머니에게 잘한다고 했지만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난 뒤 장사 핑계로 생전에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단다.

그래서 자신을 찾아온 그 아이를 박절하게 외면할 수는 없었다고.


 "사실 우리 집은 십여 년을 한자리에서 장사를 해 오면서 나름 자리를 잡아 달리 홍보를 할 필요가 없거든요."

 

 "그런데 샌드위치 홍보판은 어떻게...?"


 일순 사장의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아마도 사장은 자신의 어릴 적 친구를 사람들의 우스갯거리로 삼았다는 사실에 내가 분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배 씨를 고용한 것도 적은 돈이나마 모친을 위해 과일 같은 간식을 떨어지게 하지 말라는 뜻이었어요. 배 씨도 같은 생각이었을 게요. 그렇게 모친과 떨어질 수 없는 사람이 다른 간병인에게 모친을 맡기고 푼돈이라도 벌 생각을 한 것을 보면 사정이 여의치 않았겠지요. 병원비야 국가에서 지원하는 부분도 있어 저축한 돈으로 감당하는 모양이었지만."


 사장은 불필요한 변명을 내게 하고 있었다.

내가 그 아이를 친구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친구로 지내기에는 함께 했던 시간이 짧았다는 생각도 자기 합리화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샌드위치맨이 되어 나타난 그 아이의 모습을 보고 내가 느낀 감정은 사장의 생각처럼 분노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단순한 호기심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그 호기심에 이끌려 오늘은 그 아이가 일했던 곳으로 찾아왔고.

내가 그 아이에 대하여 가진 호기심이 선의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나는 그 아이의 불행을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끝까지 그 아이의 불행을 확인함으로써 은퇴를 앞둔 자신의 불안한 미래에 대한 위안으로 삼고자 했을지도.

그 아이에 대한 어린 날의 기억도 자기중심적으로 편집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 아이를 잊고 있었던 시간 가운데에서도 어릴 때의 열등감과 경쟁심만큼은 본능처럼 잠재되어 있었던 것 같다.


 "배 씨를 돕는다고 일부러 전단지를 제작할 수도 없고 가게 초창기에 사용하던  샌드위치 패널이 생각나더라고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더 이상 필요치 않는 물건이라면 그 패널 저에게 주시면 안 될까요?"


 뜻밖의 말에 사장은 잠시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쓸모가 없긴 한데, 그걸 어디다 쓰실라고..."


 왜 그런 말을 불쑥 사장에게 하게 되었는지 나도 모른다.

샌드위치 패널을 그 아이의 불행을 확인한 전리품으로 여겼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지금의 그 아이에게서 나에게는 없는 삶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발견했기 때문에, 비록 떠나간 그 아이를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 아이가 가진 의지만큼은 붙들고 싶은 마음이 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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