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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과 꿈 Sep 27. 2024

경기병 서곡(11)- 최종회



6


 "당신도 이제 담배 좀 끊지? 몸에 좋지도 않은 걸 못 끊어서 매일 야밤에 담배를 피우러 나가. 그걸 안 피우면 잠이 안 오나."


 "냅둬, 이대로 살다 죽게. 끽연은 내 인생의 유일한 낙이라네."


 현관을 열고 나가는 등 뒤로 아내의 차가운 시선을 느낀다.

모질어도 한참 모진 말인데도 아내는 내 말에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인간이 왜 저렇게 못 되었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는다는데 말을 저따위로 하니 되는 일이 없지, 매사에 깜냥도 없는 인간이 죽기는 쉬울까라는 등 악담으로 대거리를 했을 아내였다.

그만큼 좋은 면이든 나쁜 면이든 서로에 대하여 익숙해진 까닭일까.

 부부라는 것이 그렇다.

서로 친밀도가 더해지는 만큼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입히는 상처도 또한 쌓이게 마련이다.

그리고 해묵은 상처는 상대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리고 만.

기대가 없는 남녀 사이는 그 자체 만으로도 상처가 아닐까.

부부란 너무나 익숙해져서 서로가 주고받는 상처에 대하여 무감각해진 사이를 일컫는지도 모른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당신도 이제 담배 좀 끊지,라는 아내의 말속에는 이제 직장도 관둘 텐데 필요 없는 지출은 줄이자는 압박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설혹 아내의 속내에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하더라도 내 입장에서는 자격지심을 느낄 만한 말이다.

그래도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기 위해 서로가 상대방의 마음을 살피면서 감정을 조절할 줄도 알게 된다.

그러면서 마음에 입은 상처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다.

부부가 서로에게 익숙해진다는 것은 때때로 명하게, 나아가서 영악하게 두 사람 사이에 형성되는 긴장을 완화시킬 줄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내가 늦은 밤에 집을 나서는 것에는 담배를 피우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있었다.

아파트에서 같은 동 입주 가구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창고에 들르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 아이가 사용하던 샌드위치 패널을 아내 몰래 그곳에 보관하고 있었다.

샌드위치 패널을 가져온 뒤 습관처럼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이 물건을 확인하고 비로소 잠자리에 든다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물건을 확인하지 않고서는 잠을 이룰 수 없게 되었다.

확인이라고 눈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페인트가 바래고 지워진, 보잘것없는 폐기물을 무슨 애장품처럼 쓰다듬기까지 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다 낡은 패널을 걸치고 그 아이와 같이 샌드위치맨이 되어 보기도 한다.

샌드위치 패널에 손길이 닿거나 패널이 몸을 감쌀 때 이유를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낀다.

마치 그 아이가 지금 내 곁에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힐 정도로 비현실적인 상황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 아이는 15세기의 경기병이 되어 형형색색으로 화려한 전투복을 갖춰 입고 막 전투에 임할 참이다.

턱을 앞으로 내민 그 아이의 거북목은 적과의 일전을 앞두고 필승의 의지에 불타는 경기병의 모습이다.

불행이라는 적과의 오랜 전쟁에서 부모님을 모두 잃었지만 그 아이의 모습에서는 강력한 적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오직 불굴의 투지로 똘똘 뭉쳐 야음을 틈타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는 용사의 모습이다.

박차로 타고 있는 말을 다그쳐 앞으로 앞으로 전진을 하고 있다.

나도 들고 있던 전투복을 입고 그 아이를 따라 내 앞을 가로막아 진을 치고 있는 적을 향해 마주 선다.

전투를 앞두고 흥분된 마음에 경기병 서곡의 활발한 선율이 전장을 향하는 말발굽에 맞추어 울리면서 일전을 독려한다.

그 참에 뒷호주머니에서 진동과 함께 울리는 벨소리를 듣지 못하고.

벌써, 그 아이가 적진을 헤집고 있는 모습이 달빛 아래 뚜렷하다.

나는 그 모습에 홀린 듯 거추장스럽게 울리는 핸드폰의 전원을 끄고 그 아이를 따라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하늘에는 휘영청 달이 밝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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