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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과 꿈 Aug 30. 2024

경기병 서곡(7)



3


 "당신 요즘 뭐 하느라고 매일 조금씩 늦어? 바쁜 일도 없으면서."


 내년이면 직장을 떠나야 할 내가 직장에서 뒷방 늙은이 신세로 크게 하는 일도 없이 눈칫밥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아내다.

아내와는 같은 직장에서 사내 연애로 만난 사이인지라 내 행동반경이나 업무에 따른 부대 수입에 대해서 너무나 빠삭했다.

그래서 평생을 곁눈조차 돌려볼 여유 없이 앞만 바라보고 살아왔던 것이다.

이런 내 모습이 가족에게는 성실한 남편이요 좋은 아빠로 여겨졌겠지만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는 운신의 폭을 좁힐 수도 있는 면도 없지 않았다.

어쩌면  나라는 사람이 직장에서는 조금은 늘품 없는 친구로 인식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업무를 기획하고 처리하는 데 있어 남보다 특출할 것이 없을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남보다 능력이 떨어질 것도 없었다.

이른바 학벌에서도 꿀릴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몇 차례 승진에서 고배를 마시다 급기야 후배에게 추월당하고 임원이 아닌 직원으로 평생 수고를 마감해야 할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세상사가 능력 만으로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사회생활하면서 깨달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에 성공할 때까지는 능력 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사회라는 것이 다면적이라서 별도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사회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배우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사회생활에 필요한 다른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도 더불어 깨닫게 되었다.

어릴 때는 곧잘 리더십을 발휘하곤 했던 내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주변머리라고는 없는 인간으로 변하게 되었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보, 내 친구 예진이 알지? 걔 남편이 무슨 집 짓는 공사에 다니다가 은퇴했거든. 지금은 신도시 건설 현장에 감린지 뭐로 재취업했다더라."


 내가 듣고 있는지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잣말처럼 주절거리는 아내의 어투에는 부러운 심사가 여실히 묻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 개월 후면 백수가 될 남편이라는 작자가 은퇴 후의 호구지책을 마련하고 있지 않으니 복장이 터질 일이었다.

말이야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인생 제이막을 구상한다지만 뾰족한 강구가 있을 리도 없어 은퇴 시기가 가까워질수록 아내는 하루가 다르게 예민해지고 있었다.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유산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다.

부모님 모두 지병으로 고생하시다 연 이어 세상을 뜨시면서 재산을 남김없이 소진시켰기 때문이다.

두 분의 치료와 간병에 자식들의 경제적인 부담이 거의 없었으니 불만이나 자식 간의 갈등이 있을 까닭도 없었다.

그렇기에 생활의 부담이 될 만한 빚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 맞이할 환경에 대한 준비가 안된 상황을 아내는 마뜩잖게 여기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답답하기로는 나도 아내에 못지않았다.

직장이라는 믿을 만한 보호 장치에서 풀려나 조직이 아닌 혼자의 능력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데 걱정이 없다면 말이 안 된다.

직장 생활하던 사람이 갑자기 일이 없으면 노화가 빨리 찾아오고 없던 병이 생긴다든지 퇴직금을 잘못 투자, 하루아침에 쪽박을 차고 불행한 말년을 맞이하는 예를 수도 없이 듣지 않았던가.

그렇게 보면 직장이란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케 하는 요긴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직장은 생계를 위한 이해와 자기 욕망을 추구하는 집단이기에 그만큼 비정한 면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한 달 전 모친상을 당한 대학 친구 민수를 위해 장례식장을 다녀왔었다.

민수가 다니던 직장을 퇴직한 지 겨우 한 주가 지났지만 장례식장이 영 썰렁했다.


 "너무하네, 떠난 사람이라고 문상도 안 오나보네."


 같이 문상을 간 오형이 씁쓸하게 말했다.


 "퇴사한 지 일주일이지만 옛 직장이라고 민수가 안 알렸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속 편한 일이었다.

내가 아는 민수의 심성으로는 다니던 회사에서 미운털이 박혔을 리도 없었다.

그냥 사람이 좋은 민수인지라, 순한 심성 때문에 오히려 이해관계로 얽힌 직장에서 오히려 손해를 보거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속에서 작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사람만 좋았지 이해타산에는 어두웠을 민수였기에 속된 말로 직장에서 일찍 승진하지 못했고, 하다못해 떠난 사람의 모친상 정도는 패스할 정도로 민수는 직장에서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동병상련이랄까, 나 또한 결코 성공적인 직장 생활을 보냈다고 할 수는 없었기에 그날 모처럼 술을 많이 마셨다.

매번 승진에서 누락되다 등이 떠밀리다시피 직장을 떠나야 할 나로서는 곧장 이전투구의 장으로 뛰어들기보다는 일 년은 쉬면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만큼 나는 사회생활이라는 치열한 전투에서 뒤처진 패잔병과 같이 많이 지쳐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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