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의 어머니 또한 지방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보기에 남달랐다.
우선 외모가 극장의 대형 간판에 그려진 여배우나 순회공연 포스터 속 여가수의 얼굴처럼 희고 잘 생겼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 어머니들이 못생겼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아이의 어머니가 다른 어머니들과 단박에 비교가 될 만큼 도회적으로 세련되었다고나 할까.
우선 사용하는 언어부터가 달랐던 것이 그동안 우리가 어머니로부터 지겹도록 들어왔던 억센 경상도 사투리와는 판이했다.
"복 나가게 깨작깨작 처묵지 말고 밥 팍팍 떠라 안카나."
어머니들이 잠이 덜 깬 아이들에게 밥상머리에서 흔히 하던 말이다.
그런가 하면 온종일 집구석에 붙어있지 않고 바깥으로만 나돌면서 간혹 문제를 일으키는 사고뭉치에게는 "저기 커서 뭐가 될 끼고, 빌어 무글라 카나?"라는 아이에게는 상처가 될 법한, 무지막지한 말을 서슴지 않았던 그 시절의 우리 부모들이었다.
물론 모든 부모들이 한결같이 이처럼 입이 걸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주변에서 흔하게 들리던 수준의 말이었다고 해도 크게 틀린 사실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아무리 부모와 자식 간의 격의 없는 대화라고는 하지만 타지방 사람들이 듣기에는 가족 사이에 적지 않은 갈등이 존재하는 것으로 느낄 만도 했다.
반면, 그 아이의 어머니가 구사하는 나긋한 서울말(그 아이가 서울에서 살다가 전학 왔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그냥 표준말이라는 억양과 나긋한 말투를 무조건 서울말로 치부하고 그런 말을 쓰는 사람을 서울내기라고 얕잡아 불렀다)이 듣기에 좋았다.
속된 말로 있어 보인다고나 할까, 그래도 그 아이의 어머니에게서는 우리와는 다른 이질감을 덜 느꼈던 것 같다.
서로 간의 차이를 좁히는 호감이 있어서였다.
듣기에 남자가 쓰는 간지러운 표준말은 닭살이 돋을 정도였지만 여자의 표준말은 애교가 있고 부드러워 말뿐만 아니라 사람까지도 말과 같을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하게 했다.
그 아이의 엄마도 그랬다.
게다가 지방에서는 흔치 않은 짧은 스커트와 굽이 높은 구두, 과하지 않아 기분을 좋게 하는 분 냄새 등 우리 어머니들과는 다른 차이가 어우러져 그 아이의 어머니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봄소풍과 같은 행사마다 우리 학급에 찬조하는 간식거리는 그 아이의 어머니에게 호감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에 대한 호감을 따라서 그 아이에 대한 같은 반 아이들의 반감도 자연스럽게 희석될 수밖에 없었다.
나만 하더라도 그 아이에 대한 감정과는 별개로 그 아이의 어머니에게는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호감이 유치하게도 간식과 같은 물질적인 수혜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할 때, 아마도 그 아이의 어머니에게서 아우라가 되어 느껴지는 아름다움에 대한 이끌림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그 이끌림을 이성 감정이라고는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감정을 가질 나이도, 그럴 대상도 아니지 않은가.
다만 여태 경험하지 못한 교양미 비슷한 것을 그 아이의 어머니에게서 느꼈던 것 같다.
굳이 근본적인 이유를 찾는다면 어리지만 마음에 내재된 성에 대한 본능이 작동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땅한 이유도 없이 재수 없다고 그 아이를 미워했던 것도 그 아이가 이 여자의 아들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던 것이 아닐까.
나에게는 그 사실 자체가 마뜩잖았을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