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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과 꿈 Jul 26. 2024

경기병 서곡(2)



2


 삼 학년이 되어 새로 학급이 편성된 지 오래지 않아,  - 생각하기로는 일주일이 조금 지났을까 - 새로 만난 급우 사이에 서먹함이 여전했을 때 그 아이가 우리에게로 왔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은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그 아이가 담임 선생님에 이끌려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행색이 모두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절 마 저거 뭐꼬?"

 "새끼가, 딴따라도 아이고."


 교실에 가벼운 술렁거림을 불러일으킨 그 아이의 옷차림은 내가 자랐던 지방의 중소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체크무늬 재킷 안으로 흰색 와이셔츠와 빨간 나비넥타이를 갖춰 입은 모습이 남달랐고, 잘못 조립한 프라모델처럼 몸통과 결합된 그 아이의 거북목은 시선을 끌지도 못했다.


 "야, 가다마이 한 번 이네."


 소년중앙이나 어깨동무와 같은 어린이 잡지의 표지 모델에게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을 지방의 작은 도시, 하고도 초등학교의 교실에서 보게 되었으니 놀라움이나 부러움에 앞서 어색한 감정이 나를 포함한 촌놈들의 마음에 흐르는 주된 기류였다.

그것은 하나로 뒤섞이지 못하는 이물감으로 그 아이가 여름방학을 지나 새 학기에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을 때까지 그 아이와의 사이에 조성된, 좁혀지지 않을 거리였다.


 원래 지역 공동체라는 것이 그 크기가 작을수록 외부에 대하여 배타적인 법이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라면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로 구성, 배타적인 자기 영역에 대한 인식이 덜하겠지만.

시골로 귀농하는 도시 사람을 지역민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것이다.

농사가 장난인 줄 아느냐, 평생을 농사를 지어 왔지만 여전히 어려운 게 농사일이다, 손에 흙 한 번 묻혀 본 적도 없는 인간이 뒤늦게 농부가 되겠다니 날아가는 새가 웃을 일이다, 농사를 취미로 하냐는 등 갖은 비아냥을 당사자 몰래 쏟아낸다.

그리고 시골 사람의 외지인에 대한 배타적인 감정의 저변에는 굽어가는 허리만큼이나 평생 펴지지 않는 형편에 대한 자조와 농부로서의 자부심이 공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른들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집단적인 자기 영역, 즉 텃세가 작동하고 있었다.

먼저, 전학 온 아이가 우리와 같이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지 않는다는 이유 만으로도 놀림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그 아이만큼은 우리에게 놀림을 받았다는 기억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

그 이유를 굳이 찾는다면 우선 그 아이가 학기의 중간이 아니라 거의 학기의 시작과 함께 전학을 왔기에 낯설기로는 서로가 비슷한 처지라는 사실이 있었고, 또 한 가지 사실은 그 아이를 놀림의 대상으로 삼기에는 그 아이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신체의 발육 상태가 좋았다는 것이었다.

과장된 기억일 수 있겠지만 그때 그 아이는 또래의 발육 상태를 뛰어넘어 적어도 오 학년 형들과 견줄 만한 신체 조건을 갖추고 있었으니 그 아이를 놀려 먹기에는 부담이 클 수밖에.

무엇보다도 나를 제외한 반 아이들 모두가 경상도 사투리도 쓸 줄 모르는 그 아이를 우리의 일원으로 쉽게 받아들인 데에는 그 아이 어머니의 노력이 컸다.

말하자면 지금의 치맛바람과 비슷한 것일 터, 낯선 곳에서 아들이 잘 적응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나는 그 아이를 더더욱 재수 없는 아이로 치부하고 언젠가 기를 꺾어 놓으리라 마음을 먹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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