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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과 꿈 Jul 19. 2024

경기병 서곡(1)


 영락없는 그 아이였다.


 오십 년 가까이 세월에 흐른 뒤 눈앞에 서 있는 장년의 남자에게서 초등학교, 아마도 삼 학년 때 사 개월 남짓 같은 반에서 지냈던 그 아이의 모습을 떠올린다는 것이 터무니가 없는 생각일 수도 있었다.

워낙 어렸을 때, 그것도 짧은 기간을 같이 지내 이름조차 떠올려 말하지 못하는 내 기억이 가진 한계신뢰할 만한 구석이라고는 있어 보이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무언가에 홀린 듯 스쳐 지나치는 남자에게 마음이 붙들린 것은 오랫동안 마음에서 잊혔던 풍경 하나가 기억의 표면으로 투사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를 피사체로 하는, 빛바랜 풍경을 되살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라면, 이미 지나간 과거이기에 뻔한 결과를 불패의 카드로 쥐고 있어서이다.

추억이라고 하는 것, 반드시 아름다울 수만은 없는 기억의 부유물이다. 혹은 지나간 시간의 잔상인 추억이 대부분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은 시간을 따라 지워지는 삶의 흔적이 주는 공허를 극복하는 유용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비록 좋은 기억이 아니라도 -그렇다고 나쁜 기억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썩 유쾌하지 못한 기억이라고 해야겠다- 떠올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저녁 퇴근으로 분주한 신림역 4번 출구 앞에서 바쁘게 갈 길을 가는 행인들과는 대조적으로 다소 무심한 표정으로 서 있는 샌드위치맨을 어릴 때 그 아이라고 생각한 이유가 얼핏 보기에도 심한 거북목 만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삼 학년치고는 유난히 키가 컸던  아이는 거북목 때문에 더욱 그렇게 보였던 것이겠지만 앞으로 쓰러질 듯 몸이 기울면서 겅중겅중 걷는 독특한 걸음걸이를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두 가지 신체적 특징이 일치한다면 그 아이와 샌드위치맨이 동일인일 확률이 높아질 밖에. 

유달리 키가 컸던 그 아이에 비해 오히려 시간을 거슬러 쪼그라든 듯 나보다 몸피가 작은 샌드위치맨이지만 겅중거리는 걸음의 독특한 리듬만큼은 영락없는 그 아이였다.

평소에, 신림역 인근의 대형 쇼핑몰에 입주한 서점에 들를 일이 아니라면 내 동선에 포함되지 않을 이 거리를 여러 날 찾게 된 것도 사실 샌드위치맨이 그 아이리라는, 가능성을 넘어 확신으로 기울어가는,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은 내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 개월, 그러니까 고작 한 학기를 같은 반에서 지낸 사이지만 그 아이와는 특별한 감정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일종의 질투심 같은 감정으로 지금 그 아이일지도 모를 샌드위치맨을 조우하는 내 마음이  반가움과는 거리가 먼 것일 수밖에 없었다.

반가움은커녕 아주 찜찜한 기분 속에서 여러 날을 보내야 하는 고역에 발을 담그는 일이다.

스스로가 그 고역을 자청하는 것은 지난 시간을 따라 지워진 삶의 흔적을 복원해서 지금의 공허를 떨치고 싶어서 일 것이다.

어쩌면 어릴 때에 비해 많이 초라해진 행색을 한 샌드위치맨을 반드시 그 아이와 일치시켜야 속이 시원할 만큼 어린 날의 질투심에서 비롯된 뒤틀린 심사가 여러 날 샌드위치맨의 주변을 맴돌게 된 사정으로 작용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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