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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골목길 저 멀리에

by 밤과 꿈


가로등 불빛까지 희미한 밤 골목길

막다른 듯 휘어 돌아가는 어귀에는

어린 날의 호기심과 상상들이 한가득

장롱에 빼곡한 이불처럼 머물고 있었다

옥상에 올라 비로소 눈에 담는 그 길을

밤중에 걸어갈 일이 전혀 없었고

낮에도 상상하는 공포가 길을 막았는데


여드름과 함께 찾아온 사춘기에는

어두운 골목길 저 멀리로

종종걸음으로 걸어 돌아가는

여학생의 흰 종아리가 마음을 이끌어

다음날 마음을 좇아 찾아간 그 길에는

어린 날 호기심과는 다른 설렘이 있었지만

남모를 부끄러움에 서둘러 발길을 돌렸는데


어른이 되어 다시 찾았던 골목길에는

어린 날 마음에 품었던 호기심과 상상도

사춘기가 선물한 설렘도 모두 사라지고

흘러간 시간만큼 기억들이 더께가 되어

예전에 생생했던 빛을 잃고 있었다


빛이 바래어 누추해진 지난날의 상실감으로

마음이 무거웠던 그날 이후로

골목길을 다시는 찾지 않았고

저 멀리에서 어두워도 추억들이 생생한

골목길을 마음에 영원히 간직하기로 했다

그래야 살아온 날들이 누추하지 않기에.





NOTE


도시의 구도심이 재개발되면서 골목길도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다.

어린 기억으로는 굽이진 골목길은 미스터리 한 상상력의 원천이었던 골목길이.

세월이 더께가 되어 내려앉은 삶의 흔적들은 사라지지만 상상의 세계를 선물해 주었던 그 시절의 골목길은 마음에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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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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