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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미국은 없다

- 데니스 호퍼 감독의 영화 '이지 라이더'

by 밤과 꿈

1960년대, 그러니까 국민학교에 다닐 때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외국인을 직접 보기란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김서방 찾기와 마찬가지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하천을 사이로 학교와 이웃한 집에 두 명의 백인이 하숙을 하고 있어서 방과 후에 옥상에 올라간 그들과 대면을 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평화봉사단원이었거나 몰몬교도였을 그들의 존재 자체가 작은 도시에 사는 우리에게는 신기함 그 자체였다. 하교를 멈추고 옹기종기 모여 자신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모습이 그들도 신기했는지 마주 보고서 싱글벙글 웃는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외국인이 흔하지 않던 그 시절에는 외국인이라면 국적을 불문하고 모두 마국 사람으로 치부되었다. 그리고 미국이 한국전쟁에서 우리를 도운 우방이라는 인식이 있어서이겠지만 미국인이라고 무조건 믿는 외국인이라면 한결같이 호의를 가졌던 것이 사실이었다.

좀 더 나이를 들어가면서도 주말에 방송되는 반드시 선이 이기고 영웅이 등장하는 할리우드 스타일의 영화나 가족의 사랑을 주제로 한 초원의 집, 월튼네 사람들과 같은 TV 드라마를 접하면서 미국이라는 나라는 선망의 대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로, 기회의 땅 미국을 선망하면서 낯선 나라로 이민을 감행(삶의 기반을 버리고 낯선 곳에서 새 출발을 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할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미국에 대한 호의적인 인식과 상반되는 영화가 있다. 1960년대 말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영화 '졸업'과 함께 아메리칸 뉴 웨이브 시네마의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영화 '이지 라이더'가 그것이다. 1950~60년대의 이른바 미국의 황금시대를 지나면서 번지는 시대에 대한 환멸과 자유의 갈망을 말하는 이 영화는 와이어트를 연기한 피터 혼다가 제작을 맡고 빌리 역의 데니스 호퍼가 직접 감독을 했다. 저예산 독립영화로 제작된 이 영화는 1960년대의 미국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얼핏 보기에는 두 젊은이가 마약을 팔아 서부에서 동부로 횡단여행을 떠나는 전형적인 로드무비라고 할 수 있다. 마약과 섹스, 그리고 영화에 적절하게 어울리는 록앤롤 음악이 자유를 대변하고 있다. 캐나다의 록밴드 스테픈울프의 노래와 함께 시작되는 이들의 여행은 중간에서 합류한 변호사 조지(잭 니콜슨 분)의 죽음과 뒤를 잇는 자신들의 죽음이라는 허무하고도 충격적인 결말로 마감한다. 희망이라는 활력과 허무가 공존하는 이 영화는 1960년대에 등장한 반문화운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영화로 명작의 반열에 올랐다. 개인적으로도 가장 좋아하는 영화의 하나로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매번 영화가 활기차게 전달하는 반항과 자유의 메시지에 매료되곤 한다.


이제는 할리우드 영화와 초원의 집에서 만나게 되는 모습이 미국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미국이 언제나 선한 쪽이 아니라는 사실도 안다. 언제나 정의로운 편이 이기는 존 웨인의 서부영화와 달리 실상 미국은 그다지 정의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미국이 전후 세계를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둘 수 있는 패권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먼저 유럽과는 달리 본토가 세계대전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다. 크게 훼손되지 않은 환경에서 1950~60년대의 황금시대를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원조와 차관의 방식으로 다른 나라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서방 세계에서의 지배력을 확대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다국적기업의 신제국주의 경제체제를 주도하면서 미국은 제3세계국가에게는 악으로 비치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발달된 자본주의 국가 미국은 지금 쇠퇴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유토피아를 약속하기는커녕 빈부의 격차는 벌어지고 해소되지 않는 인종간 갈등이 다민족국가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긴 설명이 필요 없이 트럼프 정권이 지금 하고 있는 억지스럽고 모순된 정책에서 패권국가 미국의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중국의 약진에 조바심을 내면서 세계 경찰의 지위를 스스로 포기하는 형국이다. 이런 미국의 행보를 보면서 영화 '이지 라이더'의 포스터에 기재된 문장이 실감 나게 떠오른다.

"A man went looking for America. And couldn't find it anywhere..."

이 문장처럼 우리가 알고 있던 기회의 땅, 미국은 더 이상 없다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영화 '이지 라이더'의 포스터





https://youtu.be/S33abzXQfkc?si=D5BhVf-2YY9F-3CJ

영화 '이지 라이더'의 오프닝 신


https://youtu.be/QLAYw0vM-bw?si=GnkPh_WZDAmT8nHn

영화 '이지 라이더'의 충격적인 파이널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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