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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듣는 마음이 편치 않다

- 모차르트의 레퀴엠 중 '눈물의 날(Lacrimosa)'

by 밤과 꿈

사람의 DNA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는 정보가 입력되어 있지 않을까? 다소 뜬금없지만, 우리 인간의 행동 양태를 생각할 때 충분히 가능한 추측이지 싶다. 생명이 다해 한 줌 흙으로 돌아가면 그뿐일 일을 무덤에 비석을 세워 굳이 고인의 일대기를 기록한다. 후손들에게 선대를 긍정적으로 기억케 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고인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미 이 세상 사람도 아닌데 이 세상에서의 업적이나 평가가 의미가 있을 까닭이 없다. 열녀문이라는 것도 그렇다. 여자의 몸으로 정절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시댁에 주어지는 명예가 자신의 목숨보다 귀중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할 것인가. 집안의 명예가 사람의 목숨보다 귀하지 않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유념할 사실로는 그렇게 이 세상을 떠나가는 사람까지도 남은 사람들과 동일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오랫동안 형성되고 내면화된 공동체 의식에서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인간이라는 종은 어떤 포유류보다 유약한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다. 호랑이와 같은 맹수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지도 못했고, 하다 못해 토끼처럼 빠른 발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선사시대부터 무리 생활을 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우리는 이후에 국가나 혈연으로 연결된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다.

따라서 죽음은 곧 공동체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생과 사를 연결하는 장례문화가 발달하게 된 것은 아닐까. 또한 우리에게는 죽어서도 잊히지 않고 오래 기억되고픈 의식이 마음 깊숙이에 내재된 것이 아닐까. 물론 학술적 근거로 하는 생각이 아니라 혼자서 해 보는 생각이다.


엄청난 주제로 논지를 비약할 생각은 없다. 이십 대에 있었던 별 것 아닌 자신의 행동 하나를 설명하기 위해 생각이 앞서 나갔다. 무언가 하면, 듣는 사람은 많이 지겨울 수도 있지만 또 첫사랑 이야기다. 사랑을 하다 보면 그 사랑을 더 이상 지속하지 못할 순간을 직감으로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그 사랑을 유지할 만한 여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모닥불이 화력이 다해 불기운이 사그라들듯 추력을 잃어버린 사랑이 아쉽고 안타까워도 어쩔 도리가 없다. 무슨 영화 제목처럼 헤어질 결심을 할밖에. 신파극 느낌이 들지만 마음으로 여자의 행복을 빌며 내 존재 자체를 잊기를 바란다. 자신이 여자에게는 잊힌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도 그랬다. 마음을 그렇게 다지면서 첫사랑의 그녀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을 준비했었다. 예전의 유행을 따라 좋아하는 음악을 테이프에 녹음을 했던 것인데 다른 음악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두 곡은 기억이 난다. 그중 하나가 브람스의 클라리넷 오중주의 2악장, 아다지오고 또 한 곡이 사랑스러운 모차르트의 레퀴엠 중 눈물의 날(Lacrimosa)이었다. 아마도 내 마음을 대변하는 음악으로 편지를 대신해서 테이프에 옮겼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마음과 행동이 모순이었다. 마음으로는 그녀가 나를 잊기를 바라면서 시답잖은 선물이라니, 아무리 편지 대신이라도 불필요한 행동이었다. 어차피 헤어질 결심이라면 작별 인사조차 의미가 없다. 게다가 레퀴엠이라니.

레퀴엠은 진혼곡, 정확히는 진혼 미사 혹은 위령 미사를 일컫는다. 그러니까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래는 가톨릭 전례를 뜻하면서 동시에 전례에 사용되는 음악을 뜻하기도 한다. 그 음악이 레퀴엠이라는 라틴어로 시작되기 때문에 간편하게 레퀴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첫사랑에게 작별을 고하면서 레퀴엠이라니, 그것도 눈물의 날이라고.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그 음악을 골라 녹음을 했는지, 그만큼 내 마음이 사망과 같이 끔찍하고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 마음 한구석에는 내가 그녀에게서 잊힌 존재가 되고 싶지 않은 본심이 자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모차르트의 레퀴엠 중 일곱 번째 곡인 눈물의 날은 모차르트가 실제로 작곡한 마지막 곡(비록 일부분이기는 하지만)으로 눈물의 날 부분과 나머지 다섯 곡은 모차르트의 제자 쥐스마이어가 스승인 모차르트의 구술에 따라 완성하게 되었다.

그런 까닭으로 음반으로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들을 때 자주 눈물의 날까지만 듣게 된다. 게다가 이십 대의 어설프고도 마음 아픈 추억까지 있으니 도무지 눈물의 날을 넘어가지 못한다. 음악을 듣는 내 마음이 편하지 않다.





https://youtu.be/43xIMg6KkQY?si=Mdd6fu3daJISeghn

모차르트의 레퀴엠 중 눈물의 날(Lacrimo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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