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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희 Feb 27. 2016

까만 숲

이제 오지 마.

너를 좋아하면서
나는 외로움이 뭔지 알게 되었다.


손을 잡고 딸려와 눈치 보는 아이처럼, 외로움은 어느 순간부터 거기 있었다. 신경쓰지 않으려고 해도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으로, 종종 마주보고 웃어주지 않으면 마음이 점점 무거워졌다.

언젠가부터 나는 여기저기 구멍난 사람처럼 자꾸 바람 새는 소리를 냈다.

네가 하루동안 먼 곳을 걸어 길어온 우물물을 몸에 부어주면 나는 함뿍 웃으며 꽃처럼 피었지만, 온 몸에서 네가 준 사랑이 줄줄 흘러나왔다.
원체 구멍이 많은 사람이었다, 나는.

기껏 부어 놓으면 다시 텅 비어버리기를 반복하는 연애였다. 배가 고파서 죽어버릴 것 같았다. 휴지로 막아놓은 것처럼 나는 쏟아져 다시 축축히 젖어버리고 온통 철벅거리는 사랑 틈에서 혼자 빈 채로 몸을 구겨 앉았다.




어느 날 너는 내게 물을 채우다 말고 멈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방글방글 웃는 나를 한참이나 쳐다보다,

숨결이 닿을만큼 가까이에서 내 눈을 들여다보다,

그러다 나를 안아올렸다.

한참을 걸었다.

아무 말도 없었다.


이윽고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우리는 강 앞에 다다랐다. 바다처럼 넓지만 호수처럼 잔잔한, 그런 강이었다. 산들바람만 조용히 불어오는 까만 강 앞에서 너는 나를 내려놓았다.

-이제 가.

물음이 가득한 눈으로 너를 바라보는 나를 한참이나 말 없이 내려다 보고서 너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가. 이제 다시는 텅 빈 채로 살지 마.

그리곤 뒤돌아서 까만 숲으로 사라졌다.

나는 거기에 덩그러니 남아서...

한참을 기다려도 까만 밤인 그 숲에서...

눈을 깜빡이다...

강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아직도 까만 숲에는 종종 그 아이가 찾아온다.

텅 빈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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