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by 그리움 나무

고요한 적막, 어둠을 밝히는 호롱불 하나 구석을 지키고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다. 숨죽인 풀 벌레들 찢어진 창호지 문 틈 사이로 외로움과 빼꼼이 고개를 들이밀면, 나의 존재란 그저 목숨이 부지하고 있음을 알려 주기라도 하듯 낮은 숨소리만 허공에 퍼진다. 침묵은 묵묵히 수도를 하고 사막 위 홀로 버려진 아이처럼 끝도 없는 모래 벌판을 발이 벌겋게 부르트도록 걷고 또 걷다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붙어있는 목숨에게 어찌해야 좋으냐고 넋두리를 해본다.


아직 어리고 세상을 모르는데 숨 쉬고 있음이 왜 이리 버거운 것일까? 혹시 어려서 힘든 건 아닐까? 혹은 남들보다 숨을 더 많이 쉬니 신이 어깨 위에 더 많은 공기를 짊어지고 살라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에 얼마 동안 나의 숨소리와 다른 사람의 숨소리 횟수를 비교하기까지 한다. 누구에게 그걸 물어볼 사람도, 대답해 줄 어른도 없다. 의지하고 따르는 사람들은 이내 내게 이별을 고한다. 그들은 죽음 아님 불가피한 다른 사정들로 저 멀리 떠밀려가고 다시 나는 혼자가 된다. 주변은 온통 인내하고 이해해야만 할 어른들의 세계로 도배가 되버리고 어느 날은 내 온몸에 석고를 잔뜩 퍼부어놓고는 속절없이 가버린다.


눈뜬 세상은 어김없이 따가운 눈초리와 매서운 칼바람으로 사정없이 휘둘러대며 온기를 느낄 여지도 하나 주지 않는다. 마치 이런 세상에 너는 무슨 볼 일이 있어 태어난 거냐는 식으로 냉담하다. 그래서 똑같이 응수하기로 한다. 나도 이런 세상에 태어나기 싫었다고...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안에서의 일이지 바깥세상에서는 이런 게 통할 리 만무. 나의 반응은 어느 곳에서도 접수거부다. 왜? 각자 어른으로 살기 바빠서 혹은 자기감정 돌보느라 나라는 아이 따윈 눈에 들어오지도 않으니깐?


아들들 틈바구니에서 꿋꿋하게 생존하기 위해서는 '서바이벌 게임' 하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했다. 남아선호 사상이 투철하셨던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던 나로서는 오직 각고의 인내와 투지만이 살 길이었다. 그래서 유년기는 늘 무겁고 우울하기만 했다. 어른들이 싫었다. 어떠한 설명도 없이 무조건 어른들 의사에만 따라야 하는 복종이라는 불문율의 울타리에 갇혀 지낸다는 것이 얼마나 가혹한 삶인지를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교육의 혜택이나 발언권은 물론 이유를 불문하고 입에 자물쇠를 채운 채 살아야만 했던 암울했던 그 시절 모든 단발머리 소녀들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위로해주고 싶다. 살아 내느라 견뎌내느라 애 많이 썼다고... 지친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다... 그리고 지금부터가 진정한 나를 위한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아직 우리에겐 도전할 시간과 용기가 있음을 잊지 말자고 작은 불씨 하나 홀~ 홀~ 불어 두 손 모아 건네주고 싶다.

ㅡ 어느 햇살 가득한 겨울 오후에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