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인 Mar 27. 2024

7화  너를 처음 본 순간

개를 키우면서 읽게 된 책(개는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는가, 클라이브 D.L. 윈 지음, 진행선 옮김, 현암사, 2020)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들어갔을 때 같은 방에 있는 다른 개들과 달리 제포스는 짖는다기보다 낑낑거렸고, 케널에서 꺼내놓자 우리를 존중한다는 사실을 전달하려고 배를 보이며 벌렁 드러누워 버둥대면서 절박하게 오줌까지 지렸다. … 제포스는 마치 “나는 당신의 개예요. 날 집으로 데려가면 충성스럽게 당신을 사랑할게요.”라는 말을 자신이 아는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건 상당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었기에 우리는 곧바로 제포스의 입양 서류에 서명했다.


책을 읽으면서, 사람이 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개가 사람을 선택한다는 것이 무척 신기했습니다. 호기심도 생겼고요. 남편은 곧바로 반박해 왔죠.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

“개도 풀 뜯어먹어. 솔이도 뜯어먹고. 내가 아는 개 중에는 녹지공원에 전용 텃밭을 둔 개도 있다. 웰시코기인데 산책할 때마다 거기서 풀 뜯어먹는대. 그러고, 개도 선택권이 있지. 사람만 선택하란 법 있어?” 

남편은 고개를 기우뚱한 채 가느다란 눈으로 저를 바라봤습니다. 

“뭐 그렇다 치고, 솔이는 어떻게 선택했어?”

“네 마리 중에서 암컷을 선택하고, 암컷 중에서 더 활달한 애를 선택했지. 나름 까다로운 심사를 거쳤거든. 잘 골랐지? 솔이가 개딸로서 개미 똥구멍만큼의 미흡함도 없잖아?”

이번에는 제가 고개를 기우뚱한 채 가느다란 눈으로 남편을 바라봤습니다. 그 자신만만한 말이 밉살스러워서 뭐라 반박하고 싶은데… 음, 그냥 눌러 참습니다.

강변 잔디밭에서 물으니 하나같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얘가 우리를 선택했어요.”

그들은 그날 일을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견사에 들어서는 순간 개가 그들을 향해 짓는 표정, 사랑스러운 애교 혹은 무덤덤의 몸짓, 간절한 바람을 담은 혹은 냉랭한 거절을 담은 눈동자까지, 세세히 다요. 인연이 빗나가고 명중하는 그 짧은 시간을 마치 빨간색 개 모양의 상자에 담아서 고이 저장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왜 빨간색이냐면요, 빨간색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색깔이니까요. 반려견과 반려인을 이어주는 심장의 색깔이니까요. 

오늘은 그 빨간색 개 모양의 상자를 열어볼까 해요.  



우주 이야기  

펫샵에 들어서자마자, 우리의 눈이 미리 점찍고 온 웰시코기에게로 향했죠. 웰시코기의 작고 귀여운 얼굴, 까만 눈이 너무너무 예뻤어요. 우리는 웰시코기의 환심을 사려고 손뼉 치기부터 “오르르 까꿍”까지 별짓을 다 했어요. 

어쩐지 웰시코기는 시큰둥했어요. 우리는 몹시 실망했지요. 말문을 닫고 무심한 웰시코기를 애타게 바라보고 있는데 누가 내 손을 핥는 거예요. 놀라서 내려다보니, 발치에 털이 하얀 몰티즈 한 마리가 올려다보고 있었어요. 순간 눈이 마주쳤지요. 몰티즈가 껑충껑충 뛰어올랐어요. 손을 내미니 발라당 드러누워 연약한 배를 드러내었어요. 그 배를 쓰다듬는데, 어찌나 보드랍고 말랑하던지! 

“어마나, 얘 좀 봐라.”

가족들의 눈이 몰티즈에게로 향했죠. 몰티즈가 발딱 일어나더니 꼬리를 세차게 흔들면서 가족들의 손을 차례차례 핥았어요. 그 뒤 갖은 애교를 부리는 거예요. 

딸이 말했죠.

“얘가 우리 식구가 되고 싶은가 봐?”

나는 웰시코기를 다시 바라봤어요. 제발 우리 가족이 돼달라는 간절한 바람을 담고서요. 그런데 웰시코기가 내 시선을 외면하는 거예요. 마음에 찬 서리가 내려앉는 기분이었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우리 가족이 되기 싫다는데. 

우리는 결국 우리가 선택한 웰시코기가 아니라 우리를 선택한 몰티즈를 가족으로 받아들였어요. 

불만요? 

지금은 없어요, 전혀. 

그날 우리는 몰티즈에게 ‘우주’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우주는 말 그대로 우리 가족의 우주가 되었으니까요.    


  

바로 이야기

두 딸이 열세 살, 열한 살 때부터 졸랐죠. 나는 눈 하나 까닥 안 했어요. 개가 싫었으니까요. 얼마나 싫었냐면, 동생이 키우는 개가 꼬리를 흔들면서 다가와 손을 핥으면 발로 차버릴 정도였어요. 손에 닿는 개의 혓바닥이 소름 돋고 끔찍했죠. 게다가 그놈이 자고 일어나면 내 옆에다 오줌을 싸놓은 거예요. 나는 비명을 지르고 개를 때렸어요. 미운 놈이 미운 짓만 한다면서요. 동생이 한 달에 40만 원짜리 심장약을 6년간이나 먹일 때는 동생을 “미친년”이라고 불렀어요. “개가 뭐라꼬 돈을 거기다 처쓰네!” 이러면서요.

이런데 개를 집에 들여요? 미치지 않고서야 어림도 없는 일이었죠. 그런데도 두 딸은 7년을 조르더라고요. 7년을 졸라도 내가 끄덕도 안 하니까 결국 작전을 바꾸었어요. 나한테 말을 안 하기로요. 하다 하다 안 되니까 침묵시위로 나온 거죠. 

“흥! 니들이 아무리 그래 봐라.”

나는 침묵시위가 몇 달 만에 끝날 줄 알았어요. 나보다 지들이 더 답답할 거라 여겼죠. 그런데 침묵시위가 3년 동안이나 이어지는 거예요. 내 고집도 보통이 넘는데 두 딸 고집도 보통이 넘더라고요. 

어느 날 이런 생각이 송곳처럼 들데요. 저것들이 시집가서도 저러면 어떡하지? 이대로 가다간 두 딸과 영원히 말을 끊고 지낼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어요. 최소한 말은 트고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려면 반려견 입양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죠. 고민 끝에 세 가지 조건을 내걸고 반려견 입양을 허락했어요. 

첫째, 유기견을 입양한다. 

둘째, 내 마음에 들어야 한다. 

셋째, 앞으로 개에 관한 일체의 책임을 둘이서 진다. 

각서를 작성했고 두 딸이 각각 서명했죠. 그렇게 10년간의 전쟁을 끝내고 온 가족이 반려견 입양을 위해 유기견 센터를 방문했어요. 유기견 센터로 가면서 사실 나는 둘째 조항 때문에 안심했어요. 둘째 조항으로 언제까지나 딸들의 발목을 붙잡진 못하겠지만 둘째 조항이 앞으로 몇 년간 개를 회피할 명분이 되어줄 테니까요. 마음에 안 든다, 이 한마디면 시간을 저절로 버니까요. 입양을 허락한다는 말에 서둘러 서명한 두 딸은 이 속셈까진 몰랐죠. 

유기견 센터에서 나는 멀찍이 서 있었어요. 허락은 허락이고 개가 싫은 건 싫은 거니까요. 그때 비숑 한 마리가 나한테로 쪼르르 달려오더니 풀쩍 뛰어서 내 손을 핥는 거예요.

“어머나!”

숨을 훅 들이마시며 손을 들어 올렸죠. 소름이 쫙 끼치며 끔찍해야 하는데, 느낌이 이상하게 너무 보드라운 거예요. 전혀 예상치 못한 감촉에 내가 내 손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니까요. 

다시 비숑을 보니 꼬리를 흔들며 애교를 피웠어요. 이상하게 그것도 싫지 않더라고요. 아니 너무 예쁜 거예요. 개가 이렇게 사랑스러웠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쪼그리고 앉아서 비숑을 쓰다듬었어요. 세상에 놀라워라! 내 손으로 개를 쓰다듬게 될 줄이야! 생각하면서 남편과 두 딸을 불렀죠. 

우리를 안내하던 센터 직원도 같이 왔는데, 그 직원이 깜짝 놀라는 거예요.

“어마나, 얘가 이러는 애가 아닌데?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어요. 사람들이 와도 가만히 앉아서 쳐다만 보고 있었거든요.”

그 사이 비숑은 가족 모두의 손을 핥고 나서 등을 낮추고 몸을 흔들었어요. 짧은 꼬리가 등 끝에서 파닥파닥 춤을 췄죠. 그것조차 너무 귀여운 거 있죠. 

“이 애야. 이 애가 아니면 나는 싫다.”

두 딸이 입을 모아 외치더라고요.

“아빠, 바로 데려가요! 엄마 맘 변하기 전에 바로요!”

센터 직원이 서두르는 두 딸을 말리면서 말했어요.

“이 애는 알비노예요. 색소가 안 만들어지는 유전자를 갖고 있어서 눈 색깔이 검지 않고 밝아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여느 비숑처럼 눈동자가 까만 콩 같지 않고 쪽빛을 띠고 있었죠. 테두리는 황금색이고요.

“상관없어요. 얘라면 같이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해서 바로가 우리 가족이 되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운명의 끈이 10년을 버티다가 바로에게 가 닿은 것 같아요. 나는 바로가 너무 사랑스러워요. 바로를 볼 때마다 봄 햇살에 새잎이 돋아나듯이 새 기쁨이 돋아나요. 이런 나를 이제 동생이 놀려요. “언니야,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르겠다아~” 이러면서요.     



새롬 이야기

2년 반 전 한겨울이었어. 텔레비전 뉴스에서 한파라고 떠들어대던 때였으니까. 우리가 부산에 살 땐데, 그때 우리 집 건너편 옥상에서 개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보았어. 자세히 보니 그레이하운드더라고. 그레이하운드는 털이 매우 짧고 피부가 얇아서 추위를 많이 타. 그래서인지 뱀 똬리 틀듯이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는 거야. 

다음 날도 그레이하운드는 그렇게 있었어. 그다음 날도. 주인이 보살피러 올라오는 것 같지도 않았어. 추위야 그렇다 치고 물이 얼어버렸을 텐데. 

근처 슈퍼마켓에 가서 그레이하운드 보호자에 관해 물어봤지. 보호자가 사진작가더라고. 직업상 국내외 출장이 잦아서, 출장 갈 때면 사료와 물을 올려두고는 지인에게 한 번씩 올라가 보라고 부탁해 둔대. 그런데 며칠간 살펴본 바로는 아무도 개를 살피러 오는 것 같지 않았거든.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나 살펴보니, 문이 모두 잠겨 있는 거야. 

집으로 돌아와 사료와 물을 비닐봉지에 담아서 돌팔매질하듯이 건너편 옥상으로 비닐봉지를 던졌어. 비닐봉지는 옥상에 잘 당도했지. 근데 그레이하운드가 꼼짝을 안 하는 거야. 내내 웅크리고만 있어. 시간이 지나도 사료도 물도 먹는 것 같지 않고. 

이틀 뒤 사진작가가 돌아왔다는 말을 슈퍼마켓에서 들었지. 곧바로 사진작가를 만나러 갔어. 

“이보쇼!”

나도 모르게 말이 퉁명스럽게 나와 버렸어. 초면에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데, 며칠간 옥상의 개를 걱정하다 보니까 저절로 그렇게 돼버렸지. 

“이 추운 날에 개를 옥상에 올려두는 것은 동물 학댑니다. 그것도 그레이하운드를! 이렇게 키우려면 차라리 파양 해서 다른 좋은 곳으로 보내쇼!”

사진작가가 대뜸 하는 말이.

“그렇게 걱정되면 데려가세요.”

“뭐라고요?”

“데려가지 않으려면 신경 끄시고요.” 

속으로 ‘아니 뭐 이런 게 다 있어?’ 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개를 입양했으면 제대로 돌보아야지 이 한파에 옥상에다 버려놓고서 되려 큰 소리니까.

“좋습니다. 내가 데려갑니다. 두말하기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데려갈 거면 얼른 데려가세요.”

그 길로 옥상으로 갔지. 그레이하운드 앞에 앉아서 말했어.

“춥지? 그동안 고생 많았다. 이제부터는 나하고 살자. 여기보다는 나을 거다. 자, 가자.”

그레이하운드가 고개를 들어 까맣고 큰 눈으로 나를 바라보데. 그 눈을 마주 보며 고개를 크게 끄덕여 줬지. 그러고 목줄을 잡으니까 순순히 일어나 따라오더라고. 

옥상을 내려와 슈퍼마켓을 지나는데, 슈퍼마켓 주인이 그러는 거야. 

“그 개요, 순순히 따라 내려옵디까?”

“가자니까, 따라 내려오던데요.”

“그 참 희한하네! 며칠 동안 한파였잖아요. 사진작가 친구가 집에 데려가려고 아무리 내려가자고 해도 꼼짝을 안 하더래. 사진작가가 돌아와서 내려가자고 해도 안 내려가고. 사실 이번 출장 전에 사진작가가 남의 집에 보내려고 했거든. 얘가 그걸 아나 보더라고. 그때부터 옥상에서 꼼짝을 안 했으니까.”

그 말을 들으니 녀석이 신통하고 다시 쳐다 뵈는 거야.

“댁이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아무나 따라나설 녀석이 아닌데. 그나저나 주인은 압니까? 요 녀석 데려가는걸.”

“데리고 가랍디다.”

“하긴 진즉부터 다른 데로 보내고 싶어 했지. 그 사람 일이 그렇잖아요.”

이야기를 끝내고 집으로 가는데, 집이 가까워질수록 걱정이 커지는 거야. 홧김에 데려오긴 했으나, 갑자기 개를 데려가면 집사람과 딸이 깜짝 놀랄 테니까. 

다행히 딸은 금방 좋다고 하더라고. 새로운 견생을 맞이했다며 새롬이라는 이름도 지어주고. 그런데 집사람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어. 내가 애원했지. 내가 다 보살필 테니 키우게만 해 달라고. 그래도 마음을 안 돌려. 그래서 마지막 카드를 쓰기로 했지.

“좋다! 2주! 그때까지 돌볼 사람을 찾을게. 그때까지만 데리고 있자.”

굳은 표정을 풀고 집사람이 말하데. 

“약속했다?”

“당연하지.”

2주면 내가 원하는 대로 될 거라 짐작했지. 짐작대로 집사람은 새롬이에게 푹 빠져버렸어. 2주가 지나서 내가 죄지은 표정으로 말했지.

“아무리 전화를 돌려봐도~, 휴, 아무도 돌볼 사람이 없네~.”

사실은 아무에게도 전화를 안 했어. 새롬이와 아침저녁으로 산책하면서 태평으로 2주를 보냈지. 그 속을 모르는 집사람은 오히려 기쁜 표정으로 말하더라고.

“할 수 없네~. 그냥 우리가 키우자~.”

요새는 나보다 집사람이 새롬이를 더 사랑해. 아침, 점심, 저녁, 밤, 정해진 시간에 꼭꼭 산책을 시키고 옷도 직접 만들어 입혀. 간식도 만들어서 먹이고. 새롬이에게 좋지 않은 음식은 절대로 못 먹게 하지. 내가 몰래 사람용 육포를 떼서 먹이다가 들키는 날에는 한바탕 난리가 나. 그 지극정성이 이제는 오히려 걱정돼. 그래서 종종 집사람에게 말하지.

“당신, 새롬이 없으면 어떻게 살려고 그래? 너무 깊이 빠지지 마라~.”      


    

봄이 이야기

나는 어떤 개를 입양할 것인지 이미 세 가지 조건을 만들어두었어요. 

첫째, 수컷일 것. 

둘째, 푸들일 것. 

셋째, 생후 3개월일 것. 

이 세 가지 조건에 딱 들어맞는 강아지가 한 펫샵에 있음을 알고, 딸과 함께 그 펫샵으로 갔어요. 

직원이 강아지들을 철장에서 풀어주었죠. 그런데 세 가지 조건에 딱 맞는 강아지가 철장 안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는 거예요. 아무리 직원이 꺼내려고 해도 몸에 힘을 주고 딱 버티는 거 있죠. 

우리가 그러고 있을 때 하얀 비숑이 와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나 봐요. 처음에 나는 걔가 그러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죠. 철장에서 안 나오려고 버티는 푸들 때문에 난감해서 눈길을 돌리다가 발견했으니까요. 

“어머나!”

이럴 때는 눈을 마주치면 안 되거든요. 눈이 마주치면 마음이 약해지니까. 

그런데 너무 놀라서 눈을 크게 뜨다가 눈이 딱 마주쳐 버렸지 뭐예요. 아, 안 되는데! 하고 눈을 바로 돌렸는데, 어떡해요? 이미 눈을 봐버렸잖아요. 그 눈이 이렇게 말하고 있었어요.

저를 데려가세요, 네? 

그 모습이 너무 애처로워서 심장 아래 가시가 박힌 것처럼 찡하니 아픈 거예요. 하지만 걔는 내가 세워둔 세 가지 조건에 하나도 맞지 않았어요. 푸들도 아니고, 수컷도 아니고, 생후 3개월도 아니고. 갑자기 내 마음에 훅 쳐들어오긴 했지만, 걔와의 삶을 상상하는 일은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예뻐해 줄 수가 없었죠. 

“미안해. 난 아니야. 기다리면 너를 사랑해 주는 보호자를 만날 거야.”

마침내 직원이 푸들을 철장에서 끄집어냈어요. 나하고 딸이 손을 내밀었죠. 

“이리 와~.”

그런데 푸들이 우리 손을 거절하고 어슬렁어슬렁 저쪽으로 걸어가버리는 거예요. 내가 불렀어요. 딸이 불렀어요. 직원도 불렀죠. 그래도 오지 않는 거예요. 들은 척도 않고요. 

푸들을 기다리다 지친 내 눈길이 비숑에게로 향했죠. 비숑이 가만히 앉아 내가 자기를 쳐다봐 주길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내가 바라보자 마치 인해전술을 펼치는 것처럼 눈빛으로 날 마구 공격하는 것 있죠.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면서요. 

나예요. 나라니까요. 나, 나, 나, 나, 나.

나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어요. 

“아냐. 아냐. 난 푸들이 좋단 말이야. 푸들이 아니면 안 돼.”

직원이 푸들을 강제로 안고 왔어요. 푸들을 받아 안았죠. 눈을 맞추려는데 푸들이 자꾸 내 눈을 피하는 거예요. 혀를 날름거리면서요. 푸들을 안은 채로 비숑을 내려다봤죠. 비숑이 애처롭게 나를 올려다보며 호소하는 거예요. 

푸들 말고요. 나라니까요. 나, 나, 나.

순간 머릿속에 ‘운명’이란 말이 떠오르데요. 한숨이 푹 나왔어요. 푸들을 바닥에 내려놓고 비숑 앞에 앉았죠. 비숑이 내 손을 핥데요. 그런 뒤 자기 발을 내 발 위에 척 올리는 거예요. 마치 나를 데려가지 않으면 이 발을 움직일 수 없어요, 라고 말하는 것처럼요. 

딸이 그러더라고요.

“엄마, 얘로 하자. 얘가 우리 가족이 되고 싶다잖아. 쟤는 싫다잖아.”

그래도 푸들에 미련이 남더라고요. 푸들을 보니 저 멀리서 다른 개들하고 어슬렁거리고 있데요. 푸들을 부르면서 기다렸죠. 푸들은 우리를 쳐다보지도 않아요. 그렇게 오래 계획을 세우고 그렇게 오래 기다려서 조건에 딱 맞는 강아지를 찾았는데, 차갑게 거부를 당하니…. 선택은 사람의 몫이 아닌 것 같아요. 

아니, 아니, 지금은 안 섭섭해요. 

얘를 데리고 차에 탄 순간부터 그 마음을 다 잊었어요. 어찌나 애교를 부리던지. 그 애교에 내 마음의 꽃눈이 툭 터져버렸어요. 

참 신기해요. 얘는 우리가 제 가족인 걸 어떻게 알아봤을까요?    

 

저도 매우 궁금해요. 개들은 자신의 가족을 어떻게 아는 걸까요? 어떻게 알아서 온갖 애교로 우리를 설득하는 걸까요? 우리한테서 우리가 맡을 수 없는 어떤 냄새가 나는 걸까요? 우리에게서 풍기는 독특한 분위기로 점찍는 걸까요? 우리 몸에서 전해지는 어떤 주파수를 읽고서 간택하는 걸까요? 

살다 보면 이런 순간들이 있잖아요.

비가 시작될 때 동그란 빗방울이 하필이면 내 이마에 떨어지는 순간.

나풀나풀 내리던 하얀 눈송이가 하필이면 내 속눈썹에 달라붙는 순간.

바람에 날리던 단풍잎이 하필이면 내 가슴에 안겨 오는 순간.

헛디딘 발이 옴팡한 구덩이에 빠질 때 하필이면 그 앞에서 예쁜 꽃 한 송이를 발견하는 순간. 

직선을 그리려다 곡선을 그렸는데 하필이면 그 곡선이 처음부터 내가 그리려던 것이더라는 걸 깨닫는 순간. 

“지나고 보니 얘를 만난 순간이 바로 그런 순간이었어요.”

“입양이란 내가 바란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비한 우주의 섭리가 작용하는 것 같아요.” 

“개는 사랑이야. 하늘처럼 넓고, 바다처럼 깊고, 바위처럼 듬직한. 우리가 저를 버려도 개는 우리를 절대 버리지 않아.”

“얘가 우리 가족한테 힘을 주고 위로를 주고 사랑을 주더라고요. 마치 천 개의 꽃잎을 나누어주는 벚나무처럼요.” 

개의 홀림이 치명적이죠. 저처럼, 평소 개를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조차 핑글핑글 홀려버리니까요. 한 번 홀리면 바닥이 없는 저 깊은 수렁에 빠진 것처럼 헤어 나올 수도 없어요. 어쩌면 반려인들은 개에게 홀려서 행복한 잠에 빠진 숲 속의 공주들일지도 몰라요. 당신도 개에게 한번 홀려보실래요? 

*주의사항: 개에게 홀리기 싫으면 절대로 개와 눈을 마주치지 말 것!!!    

                     

이전 06화 6화  아름답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