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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 Mar 20. 2024

6화  아름답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다

순리대로 봄이 왔어요. 지난가을의 낙엽은 썩어서 거름이 되었고, 민들레가 꽃을 피웠어요. 민들레꽃 향기를 맡는 솔이의 까만 코가 벌렁벌렁했어요. 노란 민들레꽃에서는 노란 향기가 날까요? 민들레꽃 향기를 요리 맡아보고 조리 맡아보던 솔이가 꽃잎을 이로 깨물어보았어요. 좋은 향기가 나니 좋은 맛이 날 거라고 짐작한 걸까요? 이마를 찌푸린 솔이가 혀를 날름거렸어요. 민들레꽃 맛이 별로인 듯. 철쭉꽃 맛도 별로인 듯. 이제 꽃잎 속에 작은 분화구가 있는 수선화꽃 맛을 보러 갔어요. 

자식 자랑을 하면 팔푼이라는데, 저도 남편 따라 팔푼이가 되어가나 봅니다. 남편에게 꽃향기 맡는 솔이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했어요. 

“봐라, 솔이는 여느 개가 아니야. 꽃향기를 맡는 개야.”

“에이~. 다른 개 오줌 냄새를 맡는 거야.”

“아니야. 진짜로 꽃향기를 맡았다니까.”

“얘가 꽃향기가 뭔지나 알겠어? 똥개인데.”

“똥개가 뭐? 따지고 보면 대부분이 똥개고 잡종이야.”

“그렇긴 하지.”

그러나 이미 늦었습니다. 저는 입을 삐죽거리며 남편을 째려보았습니다. 사실 저는 솔이가 꽃향기를 들이마실 때 깊이 감동했거든요. 꽃향기를 음미하는 개라니, 낭만적이고 환상적이잖아요? 


어쨌든 봄이 왔습니다. 약속한 3개월이 다 되었고요. 이제 솔이와 함께하는 시한부 동거가 막을 내릴 시점이 됐습니다. 그런데 솔이는 아직도 우리 집에 있습니다. 밤이 되면 춥다는 이유로 남편이 비닐하우스로 데리고 갈 날을 미루고 있었거든요. 저도 남편에게 약속 이행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으로는 생각을 층층 쌓여가면서요. 

보내고 싶나, 보내고 싶지 않나? 

솔이는 가고 싶을까, 가고 싶지 않을까? 

남편은 데려가고 싶은 걸까, 데려가고 싶지 않은 걸까?

또각또각, 이별의 시간이 발소리를 내며 다가올수록 마음이 짠했습니다. 걱정도 됐고요. 솔이가 죽은 제 언니처럼 들판에서 아무거나 주워 먹을까 봐요. 죽은 오빠의 미스터리도 떠올랐어요. 무척이나 강변 잔디밭을 좋아하는 솔이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함께 뛰놀던 개 친구들과 이별해야 하는 솔이의 슬픔도 곱씹었지요. 

그중에서도 솔이가 밤에 혼자 자야 한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습니다. 잘 때 “잉잉” 울기도 하는데 그때 누가 등을 쓸어주지요? 낯선 소리에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잠을 못 이룰 때는 누가 토닥토닥 재워주지요? 추워서 몸을 동그랗게 말면 누가 이불을 끌어 덮어주지요?  


그러나 역시 문제는 개털이었습니다. 봄이 되니 개털이 무지무지 빠졌습니다. 빗으로 빗겨도 빗겨도 끝이 없었습니다. 손으로 등을 살짝 쓸기만 해도 털이 우르르 빠져나왔어요. 배냇털갈이를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무슨 털갈이를 또 하는 걸까요? 집 안에서 사는 개들은 일 년 열두 달을 털갈이한다더니, 솔이도 그런 걸까요? 제 하소연을 비숑 프리제나 푸들 보호자들은 그냥 웃어넘겼습니다. 그들에겐 털 빠짐보다 털 엉킴이 문제이니까요. 

하지만 포메라니안, 보더콜리, 레트리버, 스피츠, 진돗개, 시고르자브종(시골 잡종)의 보호자들은 할 말이 많았습니다. 그들의 말을 듣다 보니 우리 집 개털은 개털도 아니더군요. 목욕을 한 번 했다 하면 욕실 배수구가 기본 두세 번은 막힌다네요. 그 털을 뭉치면 주먹만 한 털 뭉치를 네댓 개 만들 수 있고요. 그래야 개털이 좀 빠졌다 할 수 있더라고요. 

보더콜리 엄마가 말했어요.

“많이 빠질 때는 털끼리 뭉쳐서 굴러다녀요. 그런데 그게 얘 잘못은 아니잖아요. 그러려니 하는 거죠. ”

포메라니안 오빠가 말했어요.

“하루 네 번 빗겨줍니다. 안 그러면 털이 엉켜서요. 빗길 때마다 털 뭉치가 하나씩은 나와요. 마룻바닥에 굴러다니는 털 뭉치도 있고요. 얘를 입양하는 순간 털이 많이 달라붙는 검은 옷은 다 정리했어요. 티셔츠는 무조건 흰색으로 사요. 검은색 옷은 털이 묻어도 털면 털리는 비닐같이 매끈한 재질의 옷만 삽니다.”

스피츠 엄마가 말했어요.

“하도 욕실 배수구를 막아서 아예 셀프로 목욕할 수 있는 데로 데리고 가서 목욕해요. 또 집에서 드라이기로 털을 말리면 온 집 안에 털이 날리는데, 셀프샵에서 하면 내가 안 치워도 되니까요. 바닥에 털이 뭉쳐서 굴러다니는 건 어쩔 수 없고요. 옷에도 붙고 이불에도 붙는데 그건 돌돌이로 해결해요. 우리 집에 돌돌이가 엄청 많아요. 긴 것, 짧은 것, 중간 것, 하얀 것, 똥색인 것, 방마다 있어요. 돌돌이가 없으면 안 돼요. 못 살아요.”

솔이와 종이 같은 시고르자브종 엄마가 말했어요. 

“공원 같은 데 앉아서 빗질하고 들어가요. 그럼 털이 덜 날려서 훨씬 낫더라고요. 개랑 같이 살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문제니까 신경 안 쓰려고 해요. 내가 신경 쓴다고 해서 빠지는 털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니까.”

다들 개털에 초연했습니다. 저처럼 예민하지 않았습니다. 털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제가 잘못된 사람같이 느껴졌습니다. 혼란스러웠습니다. 

제가 워낙 털에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한 반려인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내가 아는 집은 개를 키운 지 4년 차거든요. 남편이 개를 무척 좋아해서 집으로 데리고 왔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 집에선 개들이 오래 살지 못하더라고요. 맨 처음 개는 6개월 살다 죽었고요, 그다음에 개는 2개월 살다 죽고, 세 번째 개는 7개월 만에 세상을 떴어요, 지금 같이 사는 개는 8개월이 되었는데, 이 개 역시 시들시들해요. 

하루는 친구가 묻는 거예요. 

“왜 우리 집에서는 개가 자꾸 죽지? 병원에서도 별 이상 없다고 했거든. 그런데 일 년을 넘기기가 힘드네. 내가 챙길 건 다 챙기거든. 병원 가는 날도 딱딱 맞춰서 가고 예방주사도 빼놓지 않고 딱딱 맞히고 하는데, 참 희한하지?”

“너 진짜로 이유가 알고 싶나?”

친구가 말해 보라는 거예요. 

“개도 있잖아, 사랑이 있어야 산다.”

친구가 고개를 갸우뚱해요. 그래서 그냥 탁 터놓고 다 말해버렸어요. 

“너처럼 차가운 사람한테서는 어떤 생명체도 붙어살 수가 없다. 너는 개 키우지 마라. 개한테 못 할 짓이다. 개털 날리는 게 싫다고 개를 베란다에 가둬놓고 키우는 사람이 어딨니?”

그 집 개는 35도가 넘는 한여름에는 탈수증이 오기도 했고, 영하로 내려가는 한겨울에는 물이 얼어서 먹지 못하는 날도 있었어요. 개가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퇴근해서 돌아온 남편이 산책시킬 때뿐이었지요. 

다음 날, 친구한테 전화가 왔어요. 

“네 말을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나는 도저히 개와 같은 공간에서 살 수가 없다.”

지금도 개는 베란다에 갇혀 살고 있어요. 천벌을 받을 거예요, 그 친구는.  

    

마지막 말이 마치 저에게 하는 경고처럼 들렸습니다. 저는 속으로 뜨끔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반려인이 그 비슷한 이야기를 또 해주는 거예요.      


지인이 몰티즈를 키우거든요. 그 집 몰티즈는 지인이 일어날 시간이 되면 방문 앞에 오줌을 싸놓는 버릇이 있었어요. 그러면 지인은 몰티즈를 때린 뒤 베란다에 가둬버리죠. 몰티즈가 나오고 싶어서 유리문을 발로 긁어대면 커튼을 쳐버렸어요. 털도 참을 수 없어서 하루에 열 번 이상 청소기를 돌렸어요. 그때마다 몰티즈를 데려온 남편 욕을 쏟아내며 몰티즈에게 화풀이했고요. 

어제 그 집에 갔더니 몰티즈가 베란다에서 낑낑대고 있는 거예요. 

“너, 이거 동물 학대다.” 하고는 몰티즈를 베란다에서 거실로 들였죠. 그러자 지인은 몰티즈를 노려보았고 몰티즈는 다리 사이에 꼬리를 집어넣고 발발 떨더라고요. 보다 못한 내가 몰티즈를 안으니까, 몰티즈가 발발 떨면서도 옆에 앉으려는 지인을 보고 짖는 거예요. 지인이 주먹을 휘둘렀어요. 내가 있으니 진짜로는 못 때리고 공중에다.

“이놈의 개새끼가! 아유, 꼴 뵈기 싫어. 미워죽겠어.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어.”

내가 말했죠.

“얘도 너 싫단다. 스트레스받아서 죽겠단다. 제발 다른 집으로 보내주란다.”

주인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개들도 스트레스를 받아요. 스트레스는 전염되니까. 다행히 지인은 지금 몰티즈를 받아줄 다른 집을 물색하고 있어요.      


꽃봉오리 부푸는 봄밤이 얕은 잠을 부실 때, 저는 두 반려인의 이야기를 곰곰이 되새김질해 봅니다. 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개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두 반려인의 이야기가 얼마나 무서운 경고인지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살랑한 한숨을 날리면서, 솔이를 계속 집에 두는 이유도 따져봅니다. 아직 밤이 추워서 남편이 데려가지 않으니까? 물론 그것도 한 이유죠. 비닐하우스에서 혼자 잘 솔이가 안쓰러운 마음도, 무서운 꿈을 꾸면서 “잉잉” 울 솔이가 애처로운 마음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 말고도 이유가 있었어요. 가끔 친정에 데리고 가서 아버지에게 웃음을 선물하고 싶은 욕심이, 새로 사귄 반려인들과 즐거운 시간을 이어가고 싶은 욕심이, 마음의 동굴 깊은 곳에 그림자처럼 형체를 감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이유를 다 합쳐도 솔이를 계속 집에 둬야 하는 이유가 되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솔이를 계속 집에 둔다면, 이런저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야 지금만이 아니라 나중과 아주 나중까지도 개와 행복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두 반려인이 주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저는 자격 미달입니다. 

개털에 이토록 예민한 저는. 

가끔 하는 배변 실수를 대범히 웃어넘기지 못하는 저는. 

겸허하게, 두 반려인의 경고를 받아들입니다. 이제는 솔이를 보내야 할 때이므로 깨끗이 욕심을 지우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러고 며칠 뒤, 제사를 지내는데 솔이 꼬리가 불빛에 언뜻 비췄죠. 뭔가 이상했어요. 솔이를 붙잡고 꼬리털을 헤쳐보았어요. 연한 분홍색이어야 할 피부색이 시뻘겋고 시꺼멨어요. 그동안 털이 엄청나게 빠지더니 꼬리털도 엉성하고 볼품없었고요. 돌이켜 보니 자신 있게 쳐들고 다니던 꼬리를 며칠째 축 늘어뜨리고도 있었네요. 

개털로 인한 제 스트레스가 솔이에게 전염된 걸까요?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하면서 남편에게 꼬리를 보였습니다. 의외로 남편은 담담하게 말했어요.

“놔두면 저절로 나을 거다. 개잖아.”

“개라고 저절로 낫는 법이 어딨어? 동물병원에 가야지.”

“그걸로 무슨 동물병원까지?”

“꼬리가 썩어가고 있는지도 모르잖아.”

“설마 그럴라고.”

“그런 어정쩡한 소리 좀 하지 마. 스트레스받으니까. 내가 스트레스받으면 솔이한테 스트레스가 전염돼. 꼬리가 더 나빠질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왜 말이 안 돼?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인데!”

“밥 잘 먹고, 똥 잘 싸고, 잠 잘 자면 됐지. 개가 무슨 스트레스?”

“개도 스트레스받는대. 스트레스가 전염되기도 하고.”

“니가 스트레스 주는 것 아냐?”

“아니야! 내가 스트레스받을 뿐이지. 무슨 개털이 봄철 황사 같냐?”

“그러니까 니 탓이네.”

“아니지, 니 탓이지. 약속대로 데려갔어 봐. 이런 일도 없지.”

“이 추운 밤에 얘가 얼어 죽음 좋겠어?”

“누가 좋대? 내 스트레스의 원인이 약속을 안 지킨 너라는 걸 명확하게 짚어주는 거지.”

이렇게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티격태격 싸웠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저는 솔이를 진찰하는 수의사에게 성마르게 물었어요.

“꼬리가 괴사 해서 똑 부러지는 건 아니죠?”

진찰을 마친 수의사가 말했어요. 

“그렇진 않아요. 두드러기니까. 꼬리만 그런 건 아니고, 몸에도 두드러기가 났어요.”

저는 솔이 몸에 눈을 바짝 갖다 댔습니다. 그러자 수의사가 손끝으로 한 곳을 짚어주었어요.

“여기 털이 살짝 솟구친 것 보이죠? 만져 보세요, 오돌토돌한 게 느껴질 거예요.”

“아.”

손가락 끝에서 들깨 같은 것을 느낀 저는 눈을 깜짝거렸습니다. 수의사가 말했습니다.

“솔이는 예민한 아이예요. 간식부터 끊으세요. 약 잘 먹이시고 가려워하면 이 약을 뿌려주세요. 원래는 바르는 약을 주는데, 솔이는 환부가 넓어서 뿌리는 약으로 드릴게요.”

일단 저는 안심했습니다. 스트레스 전염이 아니라 간식이 문제라니까요. 집에는 남편이 날마다 사다 나른 간식이 작은 산처럼 쌓여 있었지요.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 간식을 몽땅 내다 버렸습니다. 저녁에 남편이 간식을 찾으며 물었습니다. 

“간식이 다 어디로 갔어?”

“버렸어.”

“버려? 왜 버려? 너 미쳤어?”

“솔이 피부병이 간식 때문이라잖아!”

“설~마~. 그럼 세상 개가 모두 다 피부병을 앓게! 그 수의사, 돌팔이네!”

“강변 잔디밭에서 보니 알레르기 있는 개들이 많더라. 얘 하고 잘 노는 비숑도 알레르기 때문에 고생하고 있고. 솔이도 고생 안 시키려면 간식을 끊어야 해.”

“간식 주는 재미가 있는데 어떻게 끊어? 봐라, 저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어쩔 거야?”

“거기 첨가물이 얼마나 많이 들었는데?”

“무슨 첨가물?”

“봉지 뒷면을 읽어 봐. 색소를 비롯해 엄청나게 많은 첨가물이 조목조목 적혀 있어. 적혀 있지 않은 첨가물도 많을 거야. 사람이 먹는 가공식품도 그러니까.”

“얘는 개잖아.”

“개는 안 아파? 개는 알레르기 없어? 개는 아무거나 먹어도 돼? 그러고도 솔이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

“사랑하니까 간식을 주는 거지.”

“사랑하니까 좋은 것을 먹여야지!”

이러는 우리를 솔이가 겁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봐라, 우리가 싸우니까 솔이가 어쩔 줄을 모른다. 스트레스받겠다.”

남편이 솔이에게 말했습니다. 

“야, 너는 아빠 편을 들어야지.”

“강요하지 마라. 스트레스받을라.”

“솔이, 아빠가 같이 놀아주고 같이 자는 거 알지?”

“솔이, 내가 밥 주고 산책시켜 준다~.”

“네가 애한테 강요하건만.”

“강요가 아니라 선택권을 주잖아.”

티키타카 말을 치고받는 우리를 보느라 솔이의 눈이 오른쪽으로 왔다가 왼쪽으로 갔다가 했어요. 그 모습에 제가 먼저 웃음을 터트렸지요. 남편이 따라 웃었어요. 우리가 웃자, 솔이가 신났어요. 겅중겅중 달려가더니 장난감을 물고 깡충깡충 뛰어왔어요. 그 모습을 보고 우리는 더욱 크게 웃었죠. 

며칠 뒤, 저는 버린 간식 대신에 첨가물 없는 건강 간식으로 간식 통을 채웠어요. 그러자 남편이 드디어 퉁퉁거림을 멈췄지요. 

솔이의 꼬리 피부색도 차츰 돌아왔어요. 시뻘겋고 시꺼먼 색에서 다시 예쁜 연분홍색으로요. 몸에 나 있던 오돌토돌한 두드러기도 사라졌어요. 털도 새로 났고요. 솔이는 다시 풍성해진 꼬리를 한껏 치켜들고 다녔죠. 그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그렇게 빠져대던 털이 점점 줄기 시작한 거예요. 절반의 절반으로 뚝. 

남편이 말했어요. 

“요새 털이 덜 빠지는 것 같다.”

“그러니까. 간식 때문이 맞았어. 강아지풀같이 탐스러운 요 꼬리 좀 봐. 내가 간식 잘 버렸지?”

남편은 아무 말 안 했어요. 그래도 저는 기뻤어요. 솔이가 건강을 되찾고 활기차져서. 떠나보낼 때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보낼 수 있게 돼서.     


솔이를 떠나보내기 전 마지막 일요일.

마지막 인사를 하러 솔이를 데리고 친정에 갔습니다. 솔이는 달려가 아버지의 손을 핥았고, 아버지는 환한 웃음을 지으셨지요. 곧 점심때여서 저는 식사 준비로 바빴습니다. 그런데 식사 준비가 끝나고 나서 보니, 솔이가 없었어요. 

우리는 흩어져서 솔이를 찾으러 나갔습니다. 저는 솔이가 갈만한 데는 다 가보았습니다. 

솔이와 인사를 나누던 말라뮤트 견사에도….

솔이가 뛰노는 아버지의 텃밭에도…. 

우리가 자주 산책하던 과수원길에도….

동네 골목길에도….

솔이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남편도 솔이를 찾지 못한 채 돌아왔지요. 

“아까 내가 차를 타고 나갈 때 솔이가 마당에 있었거든. 집에 있으라고 말했는데, 차를 따라갔는지도 모르겠어.”

우리는 차를 타고 동네 밖으로 나갔습니다. 

차창을 열고 들판을 향해 솔이 이름을 외쳤습니다. 솔이 이름은 외로운 외침이 되어 들판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솔이야~~~!”

순간 하얀 꼬리를 세우고 힘차게 달려오는 솔이의 모습이 보였어요. 반가움에 두 눈이 번쩍 뜨였어요. 그러나 그것은 신기루였어요. 솔이가 아니었어요. 눈을 깜빡이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어요. 

머릿속이 어찔했어요. <개를 찾습니다> 벽보가 떠올랐어요. 안타깝게 바라봤던 벽보 속의 개들은 다 찾았을까요? 떠돌이 개가 된 솔이가 쓰레기봉투를 뒤지는 모습이 떠올랐어요. 무서운 개장수에게 잡혀가는 모습도요. 

번개 같은 아픔이 심장을 관통했습니다.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습니다. 좁은 들판이 망망대해처럼 보였습니다. 

‘우리 솔이를 어디서 찾지?’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고, 두 입술이 태풍 만난 이파리처럼 파들파들 떨렸습니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습니다.

“솔이 찾았다. 지가 알아서 찾아왔네.”

눈물이 쑥 들어갔습니다. 쓰디쓴 침이 달콤해졌고, 안도의 웃음이 피어났습니다. 막막했던 들판이 아늑한 품같이 느껴졌습니다. 

아!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솔이를 사랑함을! 

솔이가 저에게도 개딸임을! 

그동안 솔이를 향한 사랑이 마음 가를 서성이다가 마음의 뿌리에 가닿은 줄 미처 모르고 있었습니다. 솔이 없는 삶이 멍멍한 북소리 울림을 내고서야, 헛헛한 슬픔에 젖어든 마음의 모서리에 부딪히고서야, 심장이 움찔 깨달았습니다.

차를 유턴하는 남편에게 말했어요.

“솔이, 못 보내겠다. 한집에서 살아야겠다.”

남편이 눈가에 봄 아지랑이를 퍼뜨리며 웃었어요.     


이로써 솔이는 온전히 우리 식솔이 되었어요. 저는 요즘 생각을 전환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개는 개털로 말할 수 없고 존재로 말할 수 있다, 고요. 솔이가 존재해서 행복해요. 떨어진 개털이 아름답진 않아도 개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더 늦지 않게 깨달아서 다행이에요. 

“솔이야, 사랑해! 네 몸에 개털이 한 터럭도 남지 않을 때까지 사랑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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