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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 Apr 03. 2024

8화  강변의 금쪽이들

처음에 저는 강변 잔디밭이 아름다운 이유가 사랑 때문인 줄 알았습니다. 개를 향한 반려인들의 사랑. 이 사랑이 기쁨을 낳고 웃음을 낳고 친절을 낳아서 강변 잔디밭이 귀한 금빛으로,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철철이 색깔을 입는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강변 잔디밭이 아름다운 이유는 사랑 뒤에 단호함이, 꿋꿋함이, 끈질김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은 그 자체만으론 너무 물렁물렁합니다. 살짝만 힘을 줘도 부스러져 버리는 묵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런 묵 같은 사랑 뒤에는 늘 금쪽이가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만난 금쪽이는 크림색 푸들이었습니다. 크림색 푸들이 강변 산책길 맞은편에서 줄을 바짝 당기며 걸어왔습니다. 보호자는 40대 여자였고 반짝이는 강물에 한눈팔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크림색 푸들의 자동 리더줄이 주르르 풀렸습니다. 화들짝 놀란 보호자가 허겁지겁 줄을 잡으려 했지만 이미 풀린 리더줄은 낚싯줄처럼 줄줄 빠져나왔습니다. 크림색 푸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왔습니다. 

저는 뒤로 물러났습니다. 그러나 솔이는 오뚝 서 있었습니다. 리더줄을 끌어당겨도, 달각달각 버튼의 경고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모든 감각이 맞은편 개를 향해 열린 듯했습니다. 한 가닥의 숨도, 한 올의 털도 들먹이지 않았고 아래로 처졌다가 위로 치솟은 꼬리의 위태로운 곡선도 한 치의 미동이 없었습니다. 

이제 둘 사이의 거리는 1m 남짓. 

이때 1m란 숨 한 번 들이킬 사이로 환산되는 거리. 솔이를 보호할 시간이 고작 그 시간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다급한 숨을 훅 들이마셨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후룩 흘러가버렸습니다. 잇따라 닥쳐올 끔찍한 사태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손가락에 힘을 꽉 주었습니다. 

순간 주르르 풀리던 리더줄이 딱 멈췄습니다. 크림색 푸들의 앞발이 공중으로 피용 치솟았습니다. 공중을 바득바득 긁었습니다. 

그 틈에 저는 솔이에게 한 발짝 다가갔습니다. 또 한 발짝 옮기려는데, 크림색 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보다 열 배는 무거워 보이는 보호자를 끌고서. 둥근 꼬리에 보호자의 다급한 외침을 달고서.

“어머나! 어머나!” 

스탠더드 푸들도 아니고, 미디엄 푸들도 아니고, 미니어처 푸들도 아니고, 겨우 토이 푸들한테 보호자는 허리와 무릎을 굽힌 채 질질 끌려왔습니다. 보호자에 대한 불신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습니다. 저는 성큼 뛰어서 솔이 옆에 섰습니다. 여차하면 솔이를 달랑 들어 제 다리 뒤로 숨길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습니다. 리더줄을 짧게 고정하고, 손잡이를 바짝 틀어쥔 뒤 강한 힘을 대기시켰습니다. 

서로의 숨소리가 들리는 거리. 

갑자기 크림색 푸들이 유순해졌습니다. 울퉁불퉁했던 등허리의 곡선이 얌전한 곡선으로, 거칠게 땅을 차던 발이 순한 이끼처럼 변했습니다. 살며시 솔이 엉덩이에 코를 가져다 댔습니다. 솔이도 털끝마다 맺힌 긴장을 풀고 크림색 푸들의 엉덩이 냄새를 맡았습니다. 

저도 바짝 조였던 켕김을 놓았습니다. 손아귀에 넣었던 억센 켕김이, 눈에 넣었던 뾰족한 켕김이, 다리에 넣었던 빳빳한 켕김이, 실타래 풀리듯이 스르르 풀리는 순간… 크림색 푸들이 돌변했습니다. 

“컹! 컹!”

허연 송곳니를 드러내고 솔이를 향해 돌진했습니다. 솔이의 목덜미는 무방비. 꼼짝없이 물렸구나! 생각하던 그때 솔이가 목을 살짝 옆으로 비틀었습니다. 허연 송곳니가 헛입질을 했습니다. 솔이가 마주 짖었습니다. 

“왕! 왕!”

저는 솔이 앞을 막아섰습니다. 크림색 푸들을 매섭게 노려보았습니다. 크림색 푸들의 짖음이 점차 약해졌습니다. 크림색 푸들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났습니다. 앙앙거리며 고개를 돌려 보호자를 올려다보았습니다. 보호자가 크림색 푸들을 안았습니다.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호주머니에서 간식을 꺼내 주었습니다. 크림색 푸들의 눈이 자랑스럽게 빛났습니다. 

제 머리에 화가 무소의 뿔처럼 솟았습니다.

“얘가 지금 우리 개 목을 물려고 달려들었잖아요? 그런데 지금 잘했다고 칭찬해 주는 거예요?”

“아, 미안해요.”

보호자의 말은 퉁명스러웠고 말끝엔 벽이 있었습니다. 아무 말도 듣기 싫다고, 내 개는 내가 알아서 키우니 간섭하지 말라고, 그 벽에 그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에겐 백 말이 무효. 후미진 배 안에서 곁가지처럼 뻗어 올라오는 말을 숨결에 섞어 하 내몬 뒤, 저는 그들을 비켜서 산책을 이어갔습니다. 신경을 누그러뜨리려고 아까 그 강물을 바라보았습니다. 햇살은 물속으로 들어가려고 하고, 물 등은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저 단단한 물 등을 보면서 저는, 저것이 사랑일까? 생각했습니다. 자기 개를 훈육하지 않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일까….  


초코는 강변 잔디밭에서 늘 만나는 사이예요. 진갈색 푸들이고 여섯 살 수컷인데 초코 엄마 말이 개보다 사람을 더 좋아한다네요. 

초코가 뚠이 아빠에게로 다가가고 있었어요. 뚠이 아빠는 엉덩이에 잔디밭을 깔고 앉아 있었지요. 뚠이 아빠의 다리 사이에는 뚠이와 솔이가 나란히 앉아 있었고요. 순간 초코가 뚠이 아빠 다리를 훌쩍 뛰어넘었어요. 솔이 목을 물었어요. 

깽! 비명과 함께 후다닥 거친 싸움이 일어났어요. 뚠이 아빠가 초코와 솔이를 갈라놓았어요. 저는 솔이를 안아 들고 흥분해서 몸부림치는 솔이를 달랬고요. 잠시 후 솔이가 조용해져서 목털을 헤집어보니 연분홍색 피부에 빨간 이빨 모양이 그려져 있었어요. 저는 솔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초코를 가리켰어요.

“얘가, 우리 애 목을 물었어요!”

초코 엄마가 소리쳤어요. 

“아니에요! 우리 애가 진짜로 물진 않았을 거예요!”

“무는 걸 내 눈으로 봤고요. 여기 이빨 자국이 선명한데 안 물었다고요?”

“어머나, 그런 일이 잘 없는데 별일이네. 우리 애가 입질은 좀 해도 진짜로 물지는 않거든요.”

저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초코 엄마를 보았어요. 초코 엄마가 살짝 웃었어요. 

“우리 애가 질투가 나서 그런 거예요. 원체 뚠이 아빠를 좋아해서요. 우리 초코가 뚠이와 한창 놀 때 뚠이 아빠와 사돈 맺자는 말까지 했었거든요. 솔이가 뚠이 아빠 앞에 앉아 있으니까 우리 초코 눈에 뵈는 게 없었던 거예요.”

“이건 아니지 않아요? 이렇게 변명할 게 아니라 훈육을 해야죠.”

“저도 놀랐을 거예요. 이제는 안 그럴 거예요.”

초코를 쓰다듬으며 뚠이 아빠가 끼어들었어요.

“초코가 날 좋아해서 그런 거니까, 솔이 엄마가 좀 이해해 줘라.”

이 말도 어이없었어요. 이건 이해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잖아요. 이해는 사상(死傷)의 위험이 없는 일에 하는 것이고, 사상(死傷)의 위험이 있는 일엔 이해도 양해도 오해도 곡해도 있어서는 안 되는 일 아닌가요. 그러나 그 말을 눌렀어요. 날마다 잔디밭에서 얼굴 보는 처지에 두 사람이나 척지고 지낼 순 없겠다, 싶어서요. 

다음 날 초코가 왔을 때 저는 솔이를 안았어요. 초코가 점퍼를 해서 솔이를 공격했어요. 커다랗게 벌린 초코의 입속에서는 예리한 이빨이 번뜩였고요. 한 번 헛입질을 할 때마다 이빨 부딪히는 소리가 딱딱 들렸어요. 저는 솔이를 최대한 위로 들어 올리며 소리쳤어요.

“야! 저리 가!”

다행히 초코 엄마가 달려와서 초코를 끌고 갔어요. 옆에서 지켜보던 보더콜리 엄마가 말했어요. 

“앞으로 또 그러면 발로 차버리세요. 다른 개가 내 개를 공격하면 내 개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죠. 아는 보호자라고 눈치 볼 필요 없어요.”

그다음 날 초코가 또 점퍼를 해서 솔이에게 달려들었어요. 저는 솔이를 뒤쪽에 내려놓고 초코 앞을 가로막았어요. 험악한 눈길로 초코를 노려보았어요. 초코는 짖어대다가 마침내 짖음을 멈추었죠. 저는 따끔한 충고를 내렸어요.

“안 돼! 앞으로 솔이 절대로 괴롭히지 마!”

말을 알아들은 걸까요? 다음 날 초코는 솔이를 공격하지 않았어요. 대신 저에게 갖은 애교를 부리면서 예뻐해 달라고 요구했어요. 저는 침묵으로 그 요구를 거절했어요. 그 거절을 초코 엄마가 보았어요. 

“가자! 너 싫단다. 솔이 엄마한테 넌 찬밥 신세다.”

다음날부터 초코 엄마가 저를 피하기 시작했어요. 저 때문에 속상하다는 하소연을 다른 보호자들에게 하면서요. 뚠이 아빠가 말했어요.

“초코 좀 봐줘라. 너무 미워하지 말고.”

“미워 안 해요. 개를 상대로 미워하는 건 감정 낭비니까.”

“그럼 초코 좀 예뻐해 줘라. 섭섭하단다, 초코 엄마가.” 

“싫어요. 내 개를 물려고 한 개를 예뻐할 순 없어요.”

“날마다 보는 사이에 얼굴 붉힐 필요 없잖아. 척이라도 해줘라.”

“비위 맞출 생각 없어요. 난 솔이 엄마예요.”

“고집도 참!”

“나한테 이럴 게 아니라 초코 엄마한테 초코 통제 좀 하라고 하세요. 저러다 초코, 강변의 금쪽이 돼요.”

“뭐 그럴까이~. 우리 뚠이가 강변의 일진이라도 별 탈 없잖아.”

“말이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뚠이도 지나가는 사람하고 개한테 짖지 못하게 통제 좀 하세요. 자꾸 민원이 들어가잖아요.”

“개잖아. 개가 그만큼을 안 짖어?”

“개니까 그러면 안 되죠.”

뚠이 아빠가 고개를 비뚜로 하고 시선을 돌렸어요. 저는 더 말하지 않았어요. 

이후로도 뚠이는 강변의 일진 노릇을 계속했고요. 저는 초코 엄마와 계속 데면데면 지냈고요. 초코는 다른 개를 물었어요. 이번에는 미니 푸들이었지요. 미니 푸들을 문 이유도 솔이를 문 이유처럼 단순했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뚠이 엄마에게 미니 푸들이 간식을 받아먹었다는 게 이유였죠. 한 주 뒤엔 몰티즈를 물어버렸는데, 몰티즈가 시추 아빠에게 자기 대신 예쁨을 받았다는 게 이유였고요. 

이런저런 이유로 초코에게 물린 개의 숫자가 한 달 사이에 다섯 손가락을 넘겼을 때, 초코 엄마는 잔디밭에 더는 오지 못하고 잔디밭을 빙 돌아서 지나갔어요. 어떤 날엔 가까이에서 바라만 보다가 되돌아갔지요. 

이제 초코 엄마는 깨달았을까요? 자신의 물렁물렁한 사랑이 초코를 흉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맥스는 대형견입니다. 맥스가 처음 잔디밭에 나타난 날, 우르르 몰려가는 개무리에 끼어 솔이도 맥스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솔이가 후다닥 되돌아왔습니다. 밭은기침처럼 입속으로 캉캉거렸습니다. 제가 그만! 하자 솔이는 캉캉거림을 꿀꺽 삼켰습니다. 

맥스의 냄새를 맡던 개들이 모두 떠났습니다. 맥스가 잔디밭에 납작 엎드렸습니다. 그러고 솔이를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왜 그러는 거예요?”

“놀자고 그러는 거예요.”

맥스 엄마의 대답에 미안해진 저는 솔이에게 말했습니다. 

“야, 너 왜 그래? 새 친구가 놀자는데.”

그러고 솔이를 억지로 내려놓으니 솔이는 다른 보호자에게로 도망쳐버렸습니다. 저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솔이가 놀기 싫다네요.”

“아니에요. 가자, 맥스.”

맥스 엄마가 엎드린 맥스를 두 팔로 안아 일으켰습니다. 자리를 뜨면서도 맥스는 솔이를 바라보았습니다.

다음날엔 맥스가 내내 솔이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다음 날에도. 

나흘째가 되자 맥스의 행동이 달라졌습니다. 납작 엎드린 채로 기기 시작했습니다. 두 눈은 여전히 솔이를 바라보면서. 슬금슬금 다가오는 그 눈빛이 어쩐지 상냥하지 않았습니다. 

“저거, 사냥 자세 아니에요?”

“아니에요. 우리 애가 솔이와 많이 놀고 싶어서 그러는 거예요.”

저는 맥스 엄마의 말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맥스에게 다가가 가슴에 솔방울처럼 매달리는 솔이를 내밀면서 말했습니다. 

“맥스야, 솔이야. 친하게 지내자~.”

그 순간 맥스가 입을 벌리고 풀쩍 뛰어올랐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 수그렸던 윗몸을 용수철처럼 발딱 세웠습니다. 뾰족한 송곳니가 솔이 목털을 스치고 제 손등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손등에서 서늘한 바람이 느껴졌습니다. 발끝에서부터 소름이 쫙 돋아 올라왔습니다. 

맥스가 다시 엎드렸습니다. 또 솔이를 바라보았습니다. 가만히, 미동도 없이, 온 우주에 너만이 존재한다는 듯이. 그 섬뜩한 눈길을 등으로 막으며 저는 속삭였습니다.

“솔이야, 미안해. 엄마가 정말 정말 미안해.”

다음날엔 맥스가 오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맥스의 과거를 듣게 되었지요. 알고 보니, 맥스를 입양한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딸이었어요. 서울에서 원룸을 얻어 사는 딸이 너무 외로워서 맥스를 입양했답니다. 

딸은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 늦게 퇴근했어요. 맥스는 원룸에서 닥치는 대로 물어뜯고 똥오줌으로 분탕질해 놓았지요. 지쳐버린 딸은 궁리 끝에 맥스를 반려견 유치원에 보냈죠. 그러자 유치원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맥스가 물고 뜯고 싸운다는 전화가 걸려왔어요. 

딸이 울면서 말했어요.

“엄마, 맥스를 키우지 못하겠어. 버리지도 못하겠고. 흑흑… 어떡해?”

엄마가 부랴부랴 딸의 원룸에 갔지요. 거기서 세 번 놀랐어요. 한 번은 작은 원룸에 커다란 개가 있어서. 또 한 번은 원룸이 통째로 물어 뜯겨 있어서, 마지막은 코를 찌르는 지독한 냄새가 나서. 그래도 엄마니까 침통한 마음을 감추고 딸을 달랬어요. 

“내가 데려가서 어떻게든 살아볼 테니까, 너는 네 일에 충실해라.”

맥스를 데리고 온 엄마는 그동안 잔뜩 쌓였을 맥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려고 아침저녁으로 세 시간씩 꼬박꼬박 산책했어요. 반려견 유치원에서 들은 대로 큰 개를 만나면 피했지요. 사회성을 키우기 위해 작은 개는 만나게 해 주었고요. 작은 개를 만날 때마다 맥스는 땅에 엎드렸는데, 엄마는 그 행동을 친해지려는 노력으로 이해했고 그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맥스의 사정이 어느 정도 이해되었습니다. 그래도 맥스를 가까이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습니다. 솔이가 가까이 가지도 않을 테고요. 자기를 사냥하려는 개와 하하 호호 놀 순 없잖아요?

그러던 며칠 뒤 맥스가 작은 개를 물었습니다. 바로 여기 강변 잔디밭에서, 그것도 솔이와 닮은 개를. 솔이가 오기 바로 직전에. 그 작은 개가 날쌔게 피해서 다행히 목 피부만 살짝 긁혔다고 했습니다. 며칠 뒤엔 맥스가 녹지공원에서 개를 물었다는 소식이 총알배송되어 왔습니다. 이번에는 말리는 엄마까지 함께 물어버렸습니다. 

그 후로 맥스를 볼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맥스가 딸에게로 되돌아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의심스럽습니다. 정말로 맥스가 딸에게로 되돌아갔을까요?     

 

이런 갖가지 일을 겪으면서도, 솔이가 금쪽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어요. 도베르만을 만나기 전까지는요. 

그날 만난 도베르만은 윤이 나는 털에 순한 눈빛을 하고 있었죠. 늘씬한 몸매는 참으로 멋졌습니다. 솔이도 호기심이 이는지 줄을 끌어당겼지요. 

“얘가 인사하고 싶어 하네요.”

도베르만 보호자는 젊은 남자였어요. 

“괜찮겠어요?”

“물어요?”

“안 물긴 하는데, 작은 개들이 다가오는 일이 없어서요.”

“그럼, 잠깐 인사해 볼게요.”

줄을 늦추어주자, 솔이가 도베르만에게 다가갔어요. 엉덩이 냄새를 맡았어요. 도베르만은 가만히 서서 제 냄새를 나누어주었죠. 그 모습이 어찌나 의젓하고 품위 있던지! 마치 유서 깊은 가문의 귀족 같았어요. 

속으로 경탄하는데 갑자기 솔이가 짖어댔어요. 왕! 왕! 왕! 왕! 저는 깜짝 놀라서 줄을 잡아당겼습니다. 목소리를 낮게 깔았습니다.

“조용히 해!”

도베르만과 젊은 보호자는 가만히 서서 기다렸습니다. 잠시 후 솔이가 조용해졌고, 저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젊은 보호자는 가던 길을 이어갔습니다. 도베르만은 보호자 옆에 서서 사뿐사뿐 걸어갔고요. 너무 빠르지도 않고 너무 느리지도 않은 둘의 발걸음이 딱딱 맞았습니다. 산들바람에 왈츠를 추는 버들가지처럼 가볍고 경쾌했죠. 

저런 멋진 개한테! 솔이 요 녀석! 몸을 돌려서 솔이를 엄한 눈으로 내려보았어요. 솔이는 꼬리를 뒷다리 사이에 끼운 채 몸을 덜덜 떨고 있었어요. 순간 저는 저도 모르게 솔이를 안아 들었어요. 또닥또닥 등을 도닥였어요.

“괜찮아~. 괜찮아~.”     


그런데 잘한 걸까요? 

그렇게 다독이는 것이 아니라 혼내야 했던 것은 아닐까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혼내야 할 때 바로바로 혼내지 않으면 금쪽이가 된다고 알고 있기에 무척 혼란스럽습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끔찍한 소식이 두 개나 들려왔습니다. 하나는 이제 막 3개월이 된 강아지가 대형견에게 처참하게 물어 뜯겨서 대수술 했다는 소식이고, 다른 하나는 미니 푸들이 중형견에게 뒷다리를 물려 다섯 바늘 기웠다는 소식입니다. 대형견 말고는 모두 제가 아는 개들이고 솔이와 인사를 나누는 개들입니다. 

우리 솔이도 저런 금쪽이가 될 수 있기에, 저는 깊이 소망합니다. 

솔이를 향한 제 사랑이 단호함과 꿋꿋함과 끈질김이 스민 사랑이길. 묵같이 물렁물렁한 사랑이 아니라 너럭바위같이 단단한 사랑이길. 

그래서 사랑 뒤에 훈육과 훈련을 줄 세우는 일을 곰곰이 곱씹습니다. 이 사랑이 솔이 뒤에 우뚝 설 때, 솔이도 저 예의 개쩌는(?) 도베르만같이 강변 잔디밭을 아름답게 만드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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