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500년 제 13 권

by 이병철


신봉승의 조선왕조 500년

제 13 권 [문정황후]


중종의 재위 기간 38년 동안 조정은 끊임없는 모함과 고변 그리고 정적 제거를 위한 암투로 점철된 시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산군을 폐위시킨 반정 세력에 의해 19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중종은 심지도 약하거니와 귀도 얇아 집정 기간 내내 권세를 잡은 대신들의 상소와 고언에 휘둘리는 삶을 살았다.

조광조를 죽음으로 내몬 기묘사화이후, 공신파의 사주를 받은 경빈 박씨는 중종에게 베갯머리 송사를 통하여 김안로를 유배 보낸 바 있다. 하지만 김안로는 유배지에서도 끊임없이 모략을 짜내는데, 공신파에 의하여 위축된 사림 세력들을 아들 김희(세자의 누나 효혜공주의 남편)를 통하여 교섭해간다. 세자와 같은 모후(첫째 중전 윤씨)의 자식인 효혜공주는 은밀히 동궁을 찾아 들어가 세자를 저주하는 작서(灼鼠: 불에 태운 쥐)와 악담을 적은 글귀를 동궁 뒷동산에 매달아 놓는다. 즉 교묘하게 짠 자작극인 것이다.

세자를 저주할 세력은 세자파가 아닌 공신파가 아니겠는가? 김안로는 이를 노린 것이다.

남곤이 죽고 난 후, 공신파의 주축이 된 심정은 자신에게로 향하는 의혹의 화살을 피하고자 이를 경빈 박씨에게로 돌린다. 자신이 누명을 쓸까 두려워 동지를 파는 꼴이다. 경빈 박씨는 왕실의 첫 왕자인 복성군을 낳았고, 그렇기에 복성군의 즉위를 위해 세자를 저주했다는 누명을 고스란히 뒤집어쓰게 된다. 당시의 의금부는 비록 무고한 사람일지라도 조금의 의혹이 있다고 보이면 무자비한 고문으로 거짓 자백이라도 받아내어 정해진 답을 얻어내는 곳이었다. 경빈 박씨의 시녀들을 무차별적으로 고문하여 거짓 자백을 얻어내고, 이에 경빈 박씨와 복성군은 유배를 가게 된다. 이를 작서(灼鼠)의 변이라고 한다.


6년간의 유배 생활을 마치고 돌아 온 김안로는 다음 제거 대상으로 심정을 지목한다.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소위 3사에 막대한 뇌물 공세를 펴고 심정의 탄핵을 획책한다. 3사는 심정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리는데, 그 내용은 “경빈 박씨가 동궁을 저주하여 방애(妨碍)한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으면서도, 오히려 모든 죄를 경빈 박씨에게만 뒤집어씌웠으니 이것이 어찌 대신의 도리라 할 수 있겠사옵니까?”라는 것이었다.

결국 심정은 강서 땅으로 귀양을 갔고 그곳에서 사약을 받아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로써 공신파는 완전히 제거되고, 김안로(중종의 사돈)와 윤임(중종의 외숙)이 주축이 된 세자파가 조정을 장악하게 된다.

조정의 실권을 장악한 김안로는 이에 그치지 않고 세자의 위협 세력을 완전히 제거하고자 작서의 변과 비슷한 자작극을 벌이는데, 동궁 마당에 잇는 비자나무에 사람의 머리 모양을 한 가상(假像)과 세자와 중종, 그리고 중전 윤씨를 저주하는 목패를 걸도록 한다. 내용은 세자는 몸을 찢어서 죽일 것이며, 세자의 아비인 임금은 목을 졸라 죽일 것이며, 중전은 목을 쳐서 죽이겠다는 내용으로서, 이는 병조서리 한충보를 비롯한 15인이 밝혀둔다는 것이었다. 익명이 아닌 한충보의 이름이 버젓이 명시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에 한충보를 잡아 국문을 하는데, 한충보는 윤임에게 매여 있는 몸이었고, 그는 국문에서 자신에게서 돈을 빌려간 수견이란 자가 자신을 음해하고자 한 것이라고 진술한다. 수견이란 자를 고문하여 복성군과의 실낱같은 연계성을 따져 물어 경빈 박씨의 몸종을 고문함으로써, 그들이 세자를 험담했다는 자백을 받아낸다. 그리고 그들에게 사약이 내려진다. 복성군은 비록 후궁의 몸에서 태어났지만 중종의 자식이기에 이를 살려두고자 했으나 빗발치는 상소에 결국 중종은 복성군에게도 사약을 내리게 된다. 이를 가작인두(假作人頭)의 변이라고 하며, 김안로는 이로써 세자의 크고 작은 라이벌을 모두 제거하게 된다.


한편, 보우 스님의 불공 덕분인지 문정황후는 4명의 공주 출산 후에 마침내 득남을 하게 되는데, 이가 경원대군이고 후에 명종이 된다.

윤원형은 누님인 문정황후의 득남으로 인해 조정 내에서 조금씩 힘을 얻어 가는데, 이때 정난정의 정치적 기질이 발휘된다. 즉 정난정은 김안로를 위시한 세자파가 장악하고 있는 현 시국에서 몸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귀띔하고 문정왕후에게도 통고를 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 즈음 김안로의 사주를 받은 3사에서는 윤원로와 윤원형 형제에 대한 탄핵 상소가 올라간다. 문정왕후의 호소에 힘입어 중종은 문정왕후의 오라버니 윤원로와 동생 윤원형을 각각 경상도 사천현령과 전라도 광산의 판관으로 발령을 낸다. 정난정의 생각에는 경원대군이 자라는 동안 그들이 외방에 떨어져 지내며 세파의 휘둘림에서 피해 있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여기에서 정난정에 관한 대목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정난정은 보우 스님이 있는 봉은사에서 윤원형을 만나게 되고, 익히 소문을 통해 알고 있던 정난정을 대면하게 된 윤원형은 정난정의 재색에 매료되어 한 눈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후에 소실 자리를 제안하는데, 이에 정난정은 윤원형에게 당돌한 제안을 한다. 그것은 ‘자신이 윤원형의 후사를 이어준다면 정실로 맞아들이겠다’는 언약을 윤원형의 친필로 적어 남기라는 것이었다. 이에 윤원형은 서약서를 쓰고 두 사람은 백년해로의 가약을 맺는다. 이는 사르트르와 보봐르 부인의 계약 결혼을 연상하게 하는데, 물론 성격도 다르고 시대 차이도 400년의 격차가 있지만, 여성의 지위를 남성과 대등한 입장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는 측면에서 정난정의 기개를 볼 수 있는 점이다. 정난정이 윤원형의 소실 자리를 받아들인 것은 정실인 김씨가 출산을 하지 못하는 점과, 윤원형을 통한 중전 윤씨(문정왕후)와의 접촉을 염두에 둔 포석이었고, 상기한 바와 같이 보우 스님을 통한 불공과 문정왕후의 득남(경원대군)은 정난정으로 하여금 절대적 실력자를 배후에 두는 결과를 가져왔다.


외방에 은둔하며 지내던 윤원형은 도성의 움직임을 수시로 보고 받으며 세자를 비롯한 김안로와 윤임의 거동을 면밀히 주시하며 절호의 기회를 노리고자 한다.

그가 받은 정보로는 김안로의 독단적인 질주에 윤임이 소외되고 있으며, 윤임은 자신의 더딘 승진에 심히 불만을 갖고 있음을 간파한다.

이에 윤원형은 심복을 시켜 은밀히 공작을 시도하는데, 우선 김안로가 파당을 만들어 조정의 대소사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내용의 방을 만들어 6조 관아에 붙인다. 김안로의 행패가 도를 넘어서고 있었던 것이기에 그것은 솔직한 민심이기도 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방을 써서 윤임이 옥매향의 집을 방문하는 날을 잡아 화살로 쏘아 윤임에게 전달한다.

“김안로를 경계하시오, 탐욕에 눈이 어두워진 김안로는 대감의 제거를 기도하고 있소, 김안로는 경원대군을 살해하고 중전을 폐할 계책을 세우고 있소. 이 같은 일이 성사된다면 그 누명은 대감이 쓰게 될 것이오. 대감이 세자 저하의 외숙이기 때문이오. 이 일을 바로 잡지 아니하면 경빈 박씨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오.”

윤임의 소실로 들어앉은 옥매향은 옆에서 김안로의 독단과 민심이 어떠한지 윤임에게 전달하며 김안로에 대한 감정을 은근슬쩍 부추긴다.


여기서 옥매향에 관해 알아본다.

윤임은 애초 임백령의 정인이었던 옥매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는데, 관기로 등재되어 있는 옥매향을 윤임은 수시로 연회로 부르고, 급기야 기적(妓籍)에서 빼주는 조건으로 자신의 소실 자리를 제안한다. 하급 관리인 임백령 또한 속수무책으로 어찌할 도리 없이 당하고 마는데...

허나 정난정은 짬짬이 자신의 집에서 옥매향과 임백령의 밀회를 주선하고, 문정왕후를 통하여 임백령을 승정원에서 고속 승진하도록 한다. 이는 윤임의 내부 깊숙이 첩자를 심어둔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둔다.

자신의 지위가 김안로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 불만이 있던 윤임은 애첩인 옥매향의 비아냥을 듣고선 김안로와의 결별을 마음먹는다.

이 같은 윤임의 태도 변화에 관한 소식을 전해들은 정난정과 윤원형은 다음 작전을 개시하는데, 바로 문정왕후를 자극하여 중종에게 김안로를 위시한 세자파가 경원대군을 언젠가 해하고자 획책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물로 호소하도록 한다.

이에, 중종은 윤임을 불러 세자를 둘러싼 인물들이 경원대군에 대한 위해를 계획하는지 직접 호통을 치며 문책한다. 꼼짝없이 누명을 쓸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윤임은 위기를 모면하고자 김안로에 대한 세간의 소문을 전하며 김안로를 탄핵하기로 한다. 중종은 자신의 딸 효혜공주의 시아버지가 되는 김안로를 그간 감싸온 것이 사실이지만, 효혜공주가 연전에 세상을 떠났고 부마 김희도 공주의 뒤를 따라 세상을 버린 상황이라 김안로와의 인연을 끊는다 해도 그리 가슴 아픈 일은 아니었다.

이에, 중종은 윤임에게 밀지를 써주고 이를 바탕으로 대사헌 양연과 합작하여 김안로에 대한 탄핵 상소를 올리도록 한다. 중종은 이를 가납하여 김안로를 비롯한 그의 측근 허항, 채무택을 사사하고 효수하도록 한다. 사람들은 이들 세 사람을 일러 ‘정유년의 3흉(兇)’이라 부른다.

윤임이 김안로를 제거하는 과정은 마치 작서의 변이 있었을 때 심정이 같은 편이었던 경빈 박씨를 모함했던 경우와 비슷하다 하겠다.


김안로를 비롯한 3흉이 사사되자, 조정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김안로에 붙었던 자들이 다시금 윤임의 주위로 몰려들고 있었으며, 멀리 경상도와 전라도로 밀려 나가 있던 윤원로와 윤원형은 김안로가 사사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내직으로 돌아왔다.

이 때부터 윤임과 윤원형의 세력이 형성되기 시작하는데, 이 같은 파평 윤씨 간의 대립을 대윤과 소윤이라고 부른다.


어느 덧 세월이 흘러 경원대군의 나이가 여덟 살이 되었고, 정난정은 득남을 하여 효원 에미가 되었다. 어느 날 정난정은 문정왕후에게 경원대군의 혼사를 제안하고 문정왕후는 정난정이 배필을 물색하도록 주문한다.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경원대군의 배필을 정난정에게 부탁할 정도로 문정왕후는 그녀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고 있었다.

정난정은 역대로 영의정을 지속적으로 배출한 청송 심씨 집안의 규수를 물색하여 천거한다. 그리고 문정왕후의 인가를 받아 혼례를 성사시킴으로써 정난정의 세도는 하늘을 찌르게 된다.

경원대군의 혼례식 날 외숙인 윤원형의 집에서 축하 잔치를 성대하게 가지는데, 윤원형의 정실인 김씨가 갑자기 구토와 함께 혼절하여 숨을 거두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윤원형도 예상치 못한 일이라 당황하지만, 이는 정난정의 독살에 의한 것임을 막연히 추측하게 된다. 윤원형은 임백련과 함께 형조에 압력을 가하여 김씨의 독살 사건을 미궁에 빠지게 만들어 사건을 마무리한다.

비록 윤임이 동 사건으로 윤원형과 정난정을 비방하는 상소를 올리지만 승정원의 장이 되어 있는 임백련이 이를 교묘히 무마함으로서 유야무야된다. 그만큼 윤원형 형제의 세력은 이미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들에게는 옥매향이라는 기막힌 첩자가 있었다. 윤임의 일거수일투족은 옥매향을 통해 낱낱이 임백령에게 전해졌고, 임백령은 그때마다 윤원형, 정난정과 의논하여 윤임에 대항하는 방도를 강구하곤 했다.


중종에게 있어 윤임은 세자의 모후인 장경왕후의 오라비였으므로 처남이 되고, 윤원형은 경원대군의 모후인 문정왕후의 동생이므로 또한 처남이 된다. 그러니까 대윤과 소윤의 갈등은 자신의 처남들이 벌여놓은 갈등인 것이며, 양쪽 모두 윤문이었으므로 같은 문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주도권 싸움이었던 것이다.

날이 갈수록 중종은 자신의 세월을 지탱하지 못한 탓으로 지쳐가는 상황이었고, 문정왕후는 경원대군을 출산한 이후 자신의 소임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시작하고 있었다.


*P/S

참고로, 정난정이 윤원형과 맺은 약조 문서와 관련하여, 사르트르와 보봐르 부인의 계약 결혼의 내용을 참조로 덧붙인다.

“1929년 그들은 계약결혼을 시작하여 50년이 넘도록 그 관계를 유지한다.

바로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이다.

평생을 확실한 협력자와 비판자의 역할을 수행해온 두 사람의 계약 결혼 조건은 요즈음 이야

기되는 폴리아모리(polyamory)적 관계와 비슷한 구석이 많은 듯하다.

그들의 계약내용은 크게 3가지이다. 먼저 서로 사랑하고 서로의 관계를 지키는 동시에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서로 허락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어떤 것도 숨기지 않는다는 것이며, 세 번째는 경제적으로

서로 독립한다는 것이다.“

[출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결혼(변광배).


- 조선왕조 500년 제 13 권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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