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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Aug 19. 2024

통행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어젯밤 폐쇄된 육교를 걸었습니다. 도로 옆엔 보기 좋게 죽어가는 나무판자들이 발길을 막아섰습니다. 나선형 계단을 한참을 내려가다가, 머리를 쿵 찧은 비둘기를 보았습니다. 마치 벽이 없는 듯 날아오르다 그대로 바닥에 내리 꽂힌 모습이었습니다. 승강기 레일에 끼여 죽은 구구씨는 퍼뜩 눈을 뜨지 못합니다. 푸드덕 날아오르지도 못합니다. 다만 하얗게 질린 눈동자로 허공을 응시해 봅니다.


지난 1월부터 계단 1층에 죽어있는 비둘기. 살을 다 파 먹혀버리고요. 얼굴을 찌푸리자 움직이지 않던 위험제일 표지판이 떠오릅니다. 끼여 있던 걸 바깥에 던져버렸는데 거기 놓인 거 아닐까. 같이 걷던 친구가 말했습니다. 조금도 조심성이 없는 당신들이, 그저 죽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답했습니다.


새벽에는 세면대 앞에 섰습니다. 거울을 바라보며 주방 가위로 머리카락을 듬성듬성 잘랐습니다. 역시나 기운이 납니다. 불균형하고 단정치 못한 머리카락이 오히려 편안합니다. 삐죽삐죽 선 머리카락처럼, 아무렇게나 흩어진 마음이요.


산 채로 레일 위에 깔려 몸이 나뒹구는 꿈을 꾸었습니다. 어디론가 도망가려 했지만, 도망가지 못한 채, 휘어진 길에 끝없이 몸을 맡겼습니다. 멀찍이 눈이 휘게 웃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건 단지 웃음이 아니랍니다.


흔적 없이 흩어지는 그림자들. 우리는 서로 닮아 있습니다. 날아갈 수 없고, 닿지 못할 것들을 향해 부딪히고 맙니다. 그저 이리저리 흩어지길 바라며. 쿵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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