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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Aug 27. 2024

침전하는 언어



연은 앓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계절이 떠나갈 때마다 건너뛰지 않고 늘 아픈 연이. 어릴 때부터 자주 아픈 탓에 주사 자국으로 팔이 얼룩진 연이. 늘 끝자락에 발을 걸친 채 말도 제대로 못 하면서 미세하게 속삭였지요. 저는 그 소리를 들었답니다. 누구도 깨우지 않는 말들로 다만 어둠에 스며들 뿐입니다. 덜 괴롭게 다음 계절에서 깨어나고 싶어. 어느 날엔 맑은 두 눈으로 저를 쳐다보며 연은 말했습니다. 거리의 불빛이 조용히 숨죽일 때 바람이 지나가며 연의 목소리를 흩뿌렸지요. 낮과 밤이 흔들리면 열꽃이 피어나버려서 저는 젖은 수건으로 그 애 몸을 닦아주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만 챙긴 건 아니랍니다. 높은 온도를 자주 품어본 연이는 저의 다혈질도 잘 뭉개어줬으니까요. 어두운 골목에서 몸을 말고 달력을 노려보는 연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 둥글고 노랗게 빛나는 눈동자에 작은 소리가 비치는데, 그 모습은 참 예민하고 아름답습니다. 여리고 순한 연이가 조심스레 감추던 모습이요. 고요함 속에서 번지던 숨결이 빛에 물들어 점차 희미해지면, 뭉근하게 달아올라 있는 몸을 뒤척이는 모습을 으스러지지 않을 정도로, 안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감기는 옮기면 낫는다던데 말이죠. 뻗으면 닿을지도 모르겠는데 잡으면 놓치고 말겁니다. 연은 계절마다 바쁜 탓이죠. 사계가 언제 퍼져나갈지 모르는 새벽 속에서 희미해져 가는 소리가 겹칩니다. 어제와 같은 아침이 다가오고 연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돕니다. 저는 눈만 껌벅이다가 벌떡 일어서 팔을 모았지요. 이마에 부드러운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 부름은 아릿하면서도 아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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