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미진 골목에 들어서자
눈은 하얗게 세상을 덮고,
온 세상이 하나의 색이라면
하얀색이면 좋겠다
다리 위 퍼런 멍도 전부 지워질 수 있는
가장 새하얀 색으로
거꾸로 든 유리병에 맞은 다리를 이끌고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도어록이 울리지 않도록
구겨 신은 운동화와 검정 슬리퍼를 신고
왜 그 골목으로 향했을까
저 멀리 보이는 파란 벽
다리와 닮은 색
홀린 듯 달려갔다
눈이 하얗게 내렸는데
왜 저곳만 파랄까
하나뿐인 발자국을 밟는다
하나일까, 여러 명일까
누군가 오래 걷고 또 걸었을 발자국
떨리는 다리로 꾹꾹 발자국을 눌러본다
이어폰을 꺼내 엉킨 줄을 푼다
풀리지 않지만, 반대로 꽂아 넣는다
똑바른 것은 늘 불안하다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믿으면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 시끄러운 락밴드를
최대 볼륨으로 틀어야만 한다
쇳소리가 걸음을 재촉한다
눈발이 거세지기 전, 서두른다
새벽 사이 내린 눈은 옅은 빛에도 녹아버리고
홈이 파인 곳엔 눈이 고였다
익숙한 것들은 늘 비린 맛이 나서
수학여행 때 부모님이 보고 싶다는 애들 틈에서
나는 다른 이유로 울었다
돌아가야 할 곳을 생각하며 흘린 눈물
사람들은 그 눈물에 박수를 보냈다
여름에도 긴팔 긴바지를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햇빛 알레르기라며 거짓말을 했다
유독 많이 맞은 다음날 아침이면
어젯밤은 언제나 꿈처럼 느껴졌다
냉장고를 자꾸 여닫는 것처럼
그 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소음으로 가득한 집을 떠올렸다
하얀 눈 아래 깨진 병이 있으면 어떡하지
하얀 눈 아래 죽은 고양이가 있으면 어떡하지
조심스레 발을 뻗어보려 하지만
그 결심은 번번이 실패했다
누군가 남긴 발자국을 따라
혼자 남은 길을 지우고,
다른 발자국을 새기며
파란 벽 앞에 서있다
다리 위로 눈꽃이 내리고
누군가 내 발자국을 지워간다
온 세상이 새하얗게 덮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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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 써둔 단편 소설을 시의 형식으로 새롭게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