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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Oct 03. 2024

돌입


 적당한 우울감에 글을 적는다. 힘든데, 참. 그게 힘든데. 글은 써진다. ‘적당한’ 우울이 뭐길래. 우울이 나를 잡아먹지는 않을 정도? 요즘도 하루가 짧다. 어느새 추워지기 시작했다. 어제는 반팔을 입었는데 나 혼자만 그 차림새였다. 그래서 금방 집에 들어왔지. 확실히 가을이다.


 올해는 이상하다. 여름이 정말 더웠는데 여름이 가고 나니까 조금은 아쉬운 것 같다. 오늘도 물길을 걷는다. 적당히 다리가 아프기 직전까지 아주 오래 걸었다. 사람들이 참 예쁘다. 어둠에서도 빛나는 눈동자며, 소음을 뚫고 서로 목소리를 듣기 위해 기울이는 고개며. 그래도 역시 혼자 있는 사람들에게 더 눈길이 갔다.


 걷던 와중에 무식하게 높이 쌓은 탑을 봤다. 빛은 빛인데 사람 눈과는 다르다. 갈수록 자연스러운 게 더 좋다. 어제 먹은 보리밥과 나물, 청국장도 그랬지.


 결국에는 내가 지우지 못한 순간들이 나를 만드는 것 같다. 지울 수 없는 순간들은 돌연한 지점을 기어이 가지고 있다. 어딘가 평범하다기보다는 어긋나 있거나 뒤틀려있고, 마침내 그 순간이 남아있는 건 그러한 지점들 때문이지 않을까.


 오늘날은 언젠가 어떤 순간으로 남게 될까. 글을 쓰기까지 오래 걸렸다. 세 시간 정도 걸으며 떠오른 문장들. 생각보다 건진 건 없나. 더 덧붙이고 정돈하는 방법도 있는데, 내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므로 오늘은 조금 쉬어가고 싶다. 자정까지 맥반석 구이오징어와 맥주 한 캔 먹으며 영화 한 편을 봐야겠다. 요즘 맥주랑 친해졌다.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오롯이 견뎌내기. 외로움을 비롯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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