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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Oct 16. 2024

옳은 쪽 왼쪽


 

 그는 왼손이 더 익숙한 양손잡이라고 했다. 젓가락을 왼손으로 쥘 때면 어른들에게 혼이 났단다. 그때마다 숟가락의 볼록한 부분으로 정수리를 맞았고, 결국 정수리가 딱딱하게 부풀어 오른 후에도 젓가락질은 바꾸지 못했다고 한다. 오른손으로 글씨는 쓰게 되었는데 젓가락질만큼은 아무리 노력해도 불가능했던 것이다. 몇 초간 침묵이 흐르고 남자는 말했다. 저는 왼쪽 길에서 태어났어요. 오른쪽이 아니고요? 예, 옳은 쪽이 아니고요. 남자는 발음에 힘을 주어 마지막 말을 했다.

 길을 잃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오른손잡이가 되기 위해서 애를 쓰던 길 끝에서였나. 수염이 잘린 고양이가 균형 감각을 잃는 것처럼, 누군가 내 수염을 싹둑 잘라낸 것만 같다. 손끝의 감각은 어긋나 있었고, 그로 인해 점점 몸 전체가 기울어졌다. 그보다도 어느 순간 멀미가 심해지기 시작했다. 세상이 이상하게 빙빙 도는 것만 같았고, 옳은 길을 찾아야만 했다. 늘 앞서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방향을 찾으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점 왼쪽으로 이끌리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오른쪽은 당연하지만, 왼쪽은 그보다는 숨기기 바쁜 것이었고, 사람들이 그토록 감추는 데에는 숨겨진 무언가 존재할 것 같다는 불안한 호기심이 일었다. 맛있는 음식을 끝까지 남겨두는 것처럼 사실은 왼편에 아주 중요한 게 있는 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든다.

 그를 처음 본 건 창가 쪽 자리에서였다. 단추를 모두 채운 채로 앉아 있었다. 한여름의 후덥지근한 공기에도 겉옷까지 챙겨 입었으니, 더위에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그런데 넥타이는 매지 않은 모습. 규칙에서 살짝 벗어난 듯한 어긋남 속에서 완벽하게 단정했다. 그의 이상함은 묘하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세상과 다른 리듬을 타고 살아가는 사람처럼. 그래서 그의 엇박이 더 눈에 들어왔다.

 머릿속에 깊이 박혔다. 그가 의미하는 옳은 쪽, 옳다는 건 무얼까. 오른손으로 밥을 먹고, 오른손으로 문을 열고, 오른쪽으로 길을 걷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의문 자체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저 왼쪽은 교정되어야 하는 것이었고, 이상한 것이었다. 그가 왼손잡이였다는 것, 그가 왼쪽 길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어쩌면-.

 늘 창가 쪽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던 그의 모습이 생각난다. 아무런 감정도 없는 듯, 그저 담담히 하늘을 응시하던 모습. 마치 그가 사는 세계는 이곳과 조금 다른 곳에 있는 듯했다. 왼쪽 길에서 온 사람. 그의 세상은 오른손잡이의 세계와는 다른 법칙이 있는 곳이라도 되는 걸까. 만약 정말 그렇다면 산책로의 방향이 화살표로 표시되어 있음에도 거슬러서 걷거나 뛰는 사람들은 왼손잡이 세계에서의 규율을 아주 잘 지키고 있는 건가?

 퇴근길에 마주친 그에게 물었다. 어느 길로 오셨나요. 그는 천천히 대답했다. 왼쪽 길은 가파르고, 숲길 같았어요. 오른손잡이의 세상에서 왼손잡이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의 고집. 그 고집을 어렴풋하게 알 것도 같았다.

 우린 역 앞에서 헤어졌다. 그는 왼쪽으로, 나는 오른쪽으로 향했다. 발길을 떼면서 문득, 그가 걸어갈 길 끝에는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그 길로 한번 따라가 보고 싶다. 발끝에서 흙이 가볍게 들썩이는 감각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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