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창문을 열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단층이 낮은 아파트 2층 창 아래로 보이는 건, 아래층 주차장 한가운데에서 누군가 빨래를 널고 있는 모습이었다.
처음엔 내가 잘못 본 줄 알았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진짜였다. 아파트 주차장의 노란 차선에 빨래 건조대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고, 거기엔 옷가지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흰 셔츠, 청바지, 줄무늬 양말, 그리고 몇 개의 빨간 속옷. 그 옆에는 작은 플라스틱 의자가 하나 있었고, 거기 앉아 빨랫감들을 들여다보고 있는 중년 여자가 있었다. 바람이 옷 사이를 지나갈 때마다 그녀는 늘어진 셔츠와 펄럭이는 빨간 천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얼떨결에 휴대폰을 들고 카메라를 켰다. 이런 걸 누군가에게 보여줘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초점이 잘 맞질 않아서 곧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저 여자는 왜 저기서 저러는 걸까. 관리실에서 알면 치우라고 할 텐데, 아무도 말리지 않는 것 같았다. 아직 나만 본 것 같았다. 여자는 온전히 자신의 공간에 있는 것처럼 편안한 얼굴이었다.
여자를 계속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이상하게도, 그 장면이 어딘가 익숙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파트 어귀에 걸린 풍경, 늘 어수선하게 지나쳤던 그 공간이 그녀의 손길로 잠시 바뀐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창문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내 눈과 그녀의 눈이 딱 마주쳤다.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뒤로 숨겼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는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그건 꼭 그래, 볼 거면 보라는 듯한 태도였다. 그녀는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마치 하나의 빨랫감 같았다.
그날 오후, 퇴근길에 주차장을 지나며 그 자리를 다시 봤다. 건조대는 그대로 있었다. 바람이 불면서 건조대에 남아 있던 빨래집게가 흔들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바닥에 빨랫줄이 풀려 있었다. 그 옆에는 흰 천 조각이 낡은 건조대 틈새에 걸려 있었다. 손끝으로 천을 만져 보니 젖어 있었다. 비눗물인지, 비에 젖은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미묘한 냄새가 났다.
나는 멈춰 서서 바라봤다. 여자가 의자에 앉아 있던 자리, 손이 닿던 빨래들의 흔적, 노란 차선 위로 느릿하게 스며드는 빛.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이상하게도 골목이 텅 빈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이 자리를 채우던 물건 하나를 조용히 치워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며칠 후, 창밖을 내다보던 어느 새벽이었다. 불 꺼진 주차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건조대도, 빨래도, 여자의 흔적도 사라진 자리에서 나는 낯선 기척을 느꼈다. 바닥에 비친 가로등 빛이 주차장의 물웅덩이에 반사되어 흐릿한 원을 그리고 있었다.
원 속에서 문득, 그녀가 앉아 있던 모습을 떠올렸다. 두 손으로 옷을 널다가 한 번씩 멈춰 바람을 보는 눈빛. 다녀는 무엇을 조용히 정리하고 있었을까.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말리고 싶었던 게 무얼까. 이따금, 나는 여전히 창밖을 본다. 까만 아스팔트 위에 하얀 선과 노란 선 그리고 각 맞춰 주차된 차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주차장 바닥은 마치 흩날리다 사라진 빨랫줄처럼 오래오래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