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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유 Dec 16. 2024

냉장금고



 그는 냉장고에서 3만 원을 꺼냈다.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먹다 남은 음식조차 없었다. 대신 투명한 비닐봉지 속에 가지런히 접힌 지폐 한 장과 동전 몇 개가 있었다. 합해서 3만 원.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냉장고 속에 돈이라니. 그는 잠시 손에 든 돈을 내려다보았다.


냉장고 안에 다른 흔적은 없었다. 곰팡이가 피거나, 부패한 음식이 흘러내리는 냉장고와는 달랐다. 차갑고 깨끗한 빈 공간에 고요함이 감돌았다. 그것은 냉장고라기보다는 하나의 작은 금고 같았다. 단 하나, 3만 원을 보관하기 위해 존재하는 듯한 공간.


왜 3만 원일까?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고독사 현장에서 마주하는 냉장고는 보통 정돈되지 않은 일상의 파편들로 가득했다.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들, 끝내 손대지 못한 반찬, 바닥에 쏟아져 굳어버린 소스. 하지만 이 냉장고는 다르다. 무엇을 넣고 꺼내 먹었다는 흔적조차 없다. 그저 3만 원만 남아 있다. 그는 돈을 손에 쥐고 생각했다. 이 돈은 어떤 의미였을까? 마지막 순간, 이 돈을 냉장고 안에 넣은 사람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는 몇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이 3만 원은 어쩌면 누군가를 위해 남겨둔 돈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찾아올 사람에게, 그저 작게나마 남길 수 있는 마지막 흔적. 혹은 죽음을 준비하며 남은 전 재산을 이런 식으로 정리했던 걸지도. 그것이 허무하고도 기괴하게 느껴졌다. 냉장고에 넣어둔 3만 원이야말로 그의 생의 마침표 같았다.


다른 가능성도 있었다. 그 돈은 자신을 위한 것이었을까? 막연히 ‘다음에 쓸’ 계획으로 남겨둔 것이라면, 그것은 끝내 오지 않은 내일을 위한 준비였다. 하지만 3만 원이라는 금액은 너무 애매했다. 이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작 끼니 몇 끼를 해결하거나 작은 생필품을 살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사소한 계획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누군가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냉장고의 문을 닫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이 빈 냉장고는 그 사람의 삶을 닮았다. 단순하고 소박한 흔적. 그러나 그 안에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질문들이 남아 있었다.


작업을 마친 뒤 그는 조심스럽게 3만 원을 작업복 주머니에 넣었다. 청소업체 규정상, 현장에서 나온 물건은 모두 폐기하거나 적절히 처리해야 했다. 돈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 돈을 쉽게 처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주머니 속의 3만 원을 손으로 느끼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그가 이 돈을 기억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것은 죽은 사람이 남긴 마지막 흔적이었다. 3만 원이라는 금액은 보잘것없지만, 그 돈이 놓인 자리에는 그 사람의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애써 말로 표현하지 않은 이야기, 누군가에게 건네지 못한 마지막 메시지.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끝내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잠시 멈춰 섰다. 그의 손끝에는 여전히 냉기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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