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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의 교육적 의미

화장실 청소법도 가르치는 학교

by 자유인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는 첫째 딸아이는 3-4주에 한 번 집으로 와서 주말을 보낼 때면 학교생활 중 일어난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쏟아내곤 한다. 얼마 전에는 청소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었다. 기숙사에서는 자기가 가장 어리기 때문에 청소하는 조가 바뀌면 언제든 선배 언니들의 청소 방법을 배워야 한단다. 세제를 사용하는 방법도 다른가 본데, 어떤 이는 뿌려서 쓰고 어떤 이는 물에 풀어서 거품을 내어 청소를 한단다. 딸아이가 선호하는 세제사용법이 따로 있었지만 선배 언니가 막내 동생인 자신에게 가르쳐 주는 방법에 대해서는 일단은 듣고 따랐다고 한다. 비록 몸소 그 방법의 단점을 체험하게 되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선배 언니에 대한 존중이라는 것이 딸아이의 설명이었다.


사실 집집마다 정리 정돈하는 방법은 다 다르다. 유독 손끝이 깔끔하여 칼각으로 깔끔하게 정돈을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좀 너저분해도 시선이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나의 청소는 80프로 정도 만족할 수준이라 생각하기에 나머지 20프로는 물욕을 부리지 않는 것으로 보완하며 살아가고 있다.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모델하우스 같은 곳에 산다는 평을 듣고 있으니 늘 깔끔하게 정리해 놓는다. 교수라는 나의 직업이 '9 to 6'의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아서 탄력적인 시간 활용이 가능한 장점이 있지만, 밤낮없이 일을 해야 하는 시기도 빈번한 탓에 미니멀라이프는 청소를 쉽게 하는 데 아주 좋은 생활양식이다.


더욱이 아이 셋을 키우면서 일하는 엄마로 산다는 것은 나 이외의 다른 손길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나는 아이들의 절대적 의존시기는 아이가 화장실에 혼자 가서 뒤처리를 할 수 있는 시기까지라고 생각한다. 이 시기까지는 '응가 다~ 했어요!'라는 말에 기쁨으로 반응하며 뒤처리를 해주어야 한다. 세 아이 모두 6세 정도에 끝이 났다.


6세 이후부터 일하는 엄마로서 자녀 교육에서 가장 신경 쓸 필요가 있는 영역이 청소라고 생각한다. 일하는 엄마이자 깔끔한 걸 좋아하는 성격인 나는 식사 후에 설거지를 제쳐 두고 아이와 놀이를 한다거나, 주말 늦잠에 평소와 달리 늦게 일어나 늦은 식사를 하고 늑장을 부리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을 휴식이나 놀이로 느끼지도 않고 그다지 교육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엄마의 손이 덜 가도록 독립적이고 책임감 키워 주는 것이 자녀들에게도 부모에게도 안정적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오전 출근을 하면서도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생각하며 최소한 이부자리 정리, 물건들을 제자리에 위치시기는 정리정돈은 하고 나간다. 5-10분만 더 빠르게 움직이면 청소기를 밀고 아침을 시작할 수 있어서 퇴근 후의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물이 되기도 한다. 이런 성격의 엄마를 둔 탓에 아이들은 6세 이후가 되면서부터 분리수거, 장난감 정리, 책장정리, 신발장 정리, 식사 후 자기 그릇 옮기기, 선반 닦기 등으로 '돕는 청소'를 놀이처럼 하기 시작했다. 대청소가 따로 필요하지 않다. 우리 집 청소는 늘 10분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구석구석은 늘 정돈되어 있다. 아이들 모두는 각 물건들의 제 위치가 어디인지 알고 다년간의 청소 경험이 익혀져 있었다.


딸아이가 작년 초 입학 후 첫 번째로 귀가해서는 숙제가 있다고 했는데, 다름 아닌 '화장실 청소하기'였다. 화장실 청소라?! 이건 꽤나 난도가 높은 청소영역이다. 변기 닦기, 하수구 거름망에 걸려있는 찌꺼기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일까지 생각하면 청소 중에서도 하기 싫은 영역이다. 그런데 딸아이는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이 모든 일들을 어떻게 하는지 안다고 했고, 청소기 찌꺼기 치우는 법, 건조기 먼지 치우는 방법까지 모두 배웠노라며 호기롭게 모든 일들을 척척해냈다. 섬세한 청소 영역은 못 미더워 맡기지 않았던 것을 학교의 기숙사 생활에서 배워 온 것이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날, 아이는 기숙사 생활에서 통용되는 양말과 속옷 개는 방법, 수건 접는 방법까지 새롭게 배워서 정리를 했다. 물론 기숙사에 들어가기 전에 필요한 물품들에 대해서 엄마인 내가 대신 정리해 주는 법도 없다. 자신의 필요는 스스로 결정하고 오류에 대해서는 스스로 감수하는 것은 기본이다.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다. 매일 9시까지 야간 학습을 해야 하고, 수업은 모두 영어로 진행되므로 작문, 발표 준비에 팀워크 활동의 부담도 만만치 않나 보다. 그런데, 나는 유독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청소를 잘하는 것이 더 자랑스럽다. 청소는 질서 있는 활동이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해나가는 과정을 포함한다. 청소는 나는 물론 남을 배려하는 행위로 진심을 담은 청소는 나와 남에게 기쁨이 되고 안정감과 성취감을 주기도 한다. 청소는 때로는 경계에 대한 인식과 변화하는 행동을 요구하는데, 장소에 따라 각기 다른 도구와 방법, 힘주는 방법도 모두 달라서 그 다름에 적절한 경계를 오가며 행동을 선택하고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청소를 잘하는 방법과 공부를 잘하는 방법이 별로 다르지 않다. 심지어 청소는 한 사람이 일상을 어떤 태도로, 어떤 방법으로 살 것인가를 드러내기도 하므로 이왕이면 청소를 잘하는 것은 자신의 삶의 영역을 규모 있게 잘 꾸려 나갈 가능성을 높인다.


며칠 전이다. 평소에 정리 정돈을 잘해 둔다지만 팬트리 공간은 가끔 대대적인 정리가 필요하다. 우리 집에서 청소를 칼각으로 하는 아이는 둘째다. 야간 강의가 있거나 내가 늦은 귀가를 할 때면 아이는 깔끔하게 집안을 정리해 두어서 귀가하는 내게 기쁨을 선물한다. 스스로 원한 적이 없지만 어느새 청소에 진심이 된 첫째와 둘째가 며칠 전에 우리 집 팬트리를 정리했다. 막내 동생이 좋아하는 놀잇감은 막내의 키높이에 맞게, 약품박스도 한눈에 보이도록, 급하게 사용될 것들은 팬트리 문을 열면 바로 찾을 수 있도록 우리 집 생활양식에 맞게 말끔하게 정리해 놓았다. 며칠 째, 팬트리를 열면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말쑥하게 자라고 있나 싶어서 안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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