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혼자 낳는 게 아니니까
지금은 어느 덧 세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 좌충우돌 살아가고 있다. 신혼초를 생각하면 그때 머릿속에 그려졌던 출산과 양육은 한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있는 총체를 넘어서는 것이다. 아이를 낳아키운다는 건 상상 밖의 경험이고 이제와 되돌아 보면 솔직히, 정말 솔직히 세 명도 아쉬울 때가 있다. 물론 기억은 걸핏하면 망각 기차를 타고 떠나버리는데 가장 많이 실려 가는 것이 힘들고 어려웠던 기억들이다. 그러니 나의 아쉬움은 현실감이 떨어지는 정서상태인 것은 맞다.
인로씨와 나는 아이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 그 고민부터 시작했다. 이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아 '낳으려는 시도는 해보자' 정도로 결론이 났고, 그 때가 언제가 될 지는 서로의 주어진 상황과 컨디션을 살펴보자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 소결을 내린 데는 이유가 있었다.
우선은 결혼 당시 내가 급성 A형 간염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고 체력이 바닥나 있어서 바깥을 나갔다가도 10분도 지나지 않아 어지러워서 되돌아 와야 하는 컨디션 난조기를 보냈던 터라 생명 잉태엥 용기를 내기가 어려웠다.
두 번째 이유는 남편에게 있었다. 토목공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대학 다닐 때도 '무식한 공돌이'라는 말이 따라 다니더니 일을 해도 정말 무식하게 했다. 몸을 살피지 않고 그냥 정해진 목표를 향해 직진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순수하게 일만으로 날밤을 새우고 서울에 집이 있어도 급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사무실 근처에 오피스텔을 잡아두고 일을 했다. 이런 고난도의 업무가 신혼초부터 계속되면서 인로씨는 현재 상태의 컨디션에서는 건강하고 질좋은 정자를 만들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남편의 가설에 대한 의과학적인 사실검증이 없더라도 매우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나의 신체 컨디션도 좋아지고 임신 준비에 좋다는 영양제를 챙겨 먹으며 준비하기 시작했다. 남편도 바쁜 프로젝트가 끝나자 남편은 좋아하는 운동을 하며 몸에 활기를 더하기 시작했다. 수개월이 지난 어느 날에서야 남편이 진지한 한마디를 건네왔다.
"현정씨,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내가 건강한 아이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로씨는 결단에 찬 중요한 생각을 말할 때는 이렇게 상사에게 보고하는 군인의 언어를 쓰곤 한다.
"그래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무래도 병원부터 갑시다. 아이를 출산하는 곳이 산부인과니까 산부인과부터 가봅시다."
일정을 살펴보고 우리 두 사람은 시간을 맞춰 병원 예약을 잡아두었다.
나는 처음 산부인과 검진을 받는 터라 일단 저녁 금식을 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 남자는 자신도 같이 해야겠다며 산부인과에 가기 전날 고픈 배를 잡고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에 산부인과로 가서 검진을 받았다.
피검사 같은 건 없었다. 자궁초음파 검사를 해서 나의 자궁 상태를 살펴보는 검사를 받았다.
검사 후에 인로씨와 나는 의사 앞에 앉아서 검사결과를 들었다.
의사의 말이
"다낭성난포를 이루고 있어서 당장 임신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약을 처방해 드릴 테니 복용을 하시고 생리주기에 맞춰서 임신 가능한 날짜를 추청해서 시도해 보시죠. 물론 1년 정도 이렇게 해보면서 기다려 보기로 하죠. 1년이 지나도 임신이 되지 않으면 그때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수 있으니 느긋하게 마음을 먹으세요."
'이 의사가 지금 뭐라셔? 임신이 어렵다고라?'
순간 믿기 어려운 말을 들었지만 약까지 처방해 준다니 일단 약발이 잘 듣기를 고대하며 나에 대한 의사의 의견을 다 들었다.
잠시 후, 남편이 하는 말
"그런데 아이는 아내와 남편이 함께 가지는 건데 왜 아내만 검사를 하나요? 저에 대해서는 검사할 게 없나요?"
의사 선생님이 이런 남자 처음 봤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품고 설명을 덧붙이셨다.
"임신 관련 해서는 여성의 몸을 먼저 살피고 통상 1년 정도의 시도를 해본 후에 다음 단계로 난임의 원인을 찾을 때 남성을 검진하고 해결방법을 찾게 됩니다. 그러니 느긋하게 생각하시고 남편 분은 오늘은 받지 않으셔도 됩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지만 남편은 진심으로 세상 처음 이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처럼 진지한 표정을 듣고 있었다. 뭔가 안타까운 소식이긴 했지만 처방 받은 약이 있으니 그래도 안심이 됐다. 그리고 옆에 있는 인로씨를 보니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산부인과는 여자들이 가는 곳인데 거기가서 임신과 관련한 검사를 예비 아빠인 자기도 받아야 한다는 발상이 예쁘지만 폭소를 자아냈다. 실컷 웃고 나서 남편을 바라보니 참 사랑스러워 보였다. 임신을 엄마가 될 나 혼자의 몫으로 남겨두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참여할 여지를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 듬직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다낭성난포증후군의 비보을 뚫고, 의사가 예측해 준 가임날에 바로 첫째를 임신하게 되었다. 나의 임신에 '굉장히 잘 된 케이스'라는 의사의 말에 감사한 마음이 터져나온 건 너무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임신이라는 여성의 몫으로 여겨지는 일에도 그 첫걸음을 정성껏 함께 하겠다는 인로씨의 마음은 세월이 지나도 예쁘고 사랑스럽다. 그 발상은 여전히 웃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