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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인 May 03. 2024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나를 사시는 분은 하나님, 나를 품으신 분은 예수님

"하나님! 오늘 밤에도 저를 깨우셨네요.
 주님! 저를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은 위대한 분이십니다.
 천지를 지으셨고 세상을 경영하시는 분이십니다.
 나의 생명도 지금 이 순간의 호흡도 다 당신께 속한 것입니다.
 당신은 나의 창조주이십니다."

곤히 자던 잠을 환하게 깨운 분이 하나님이라 믿고 나는 익숙한 기도를 드렸다.

"기도를 멈추고 내 얘기를 들어주렴."

그런데 갑자기 내 기도를 멈추게 하시고 당신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네! 말씀하십시오."

"내가 살리(리)라!"

잠이 덜 깨서인지, 살리라는 말씀이 뭔가 맥락에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나의 더 깊은 회복과 성장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하고 '살리리라'로 잘못 들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회답의 기도를 드렸다.

"그럼요! 하나님! 당신은 창조자이시니 회복도 당신의 손에 있지요!"

"아니, 내가 너를 살리라!"

"네? 주님? 살리는 것이 아니라 사시겠다고요?"

"그래. 내가 너를 살리라!"

.....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하나님과의 특별한 추억 이야기가 생기곤 한다. 사랑하는 두 연인에게 아름다운 기억이 오래도록 남듯, 신앙생활도 관계에 근간을 두고 있기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오래도록 기억할만한 사건들이 종종 있다. 위 이야기는 내가 둘째를 임신하고 있을 때 며칠간 밤잠을 자던 나를 깨우셔서 특별하게 만나주셨던 하나님과의 추억 중 한 토막을 복기한 것이다.


사실 아무리 은혜로운 경험이라도 나는 오래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신앙생활은 생동하는 것이기에 매일 부어주시는 오늘의 은혜에 감사하다 보면 과거의 경험은 속에 담아두고 가끔 꺼내어 혼자 숙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여 년 전의 이야기를 꺼내놓은 것은 최근의 경험과 맥이 닿아서다.


최근에 남편이 기도로 준비하던 중요한 인생계획이 있었는데,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았다. 최종적인 결과라고 보기 어렵지만 기도의 응답을 받고 한 걸음씩 나아갔다고 생각했기에 잘 될 것이라 확신했던 일이었는데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이다. 곁에서 지켜보는 나로서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다행히 당사자인 남편은 결과가 나오기 전에 예견했던 것처럼 아직 때가 이르지 않은 것일 뿐, 기도한 바는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여전히 확신하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마주 앉아 기도의 내용을 점검하고 다시금 당장 결정해야 할 바를 놓고 매우 주체적인 기도를 시작했다. 그런데 기도 중에 아주 거인이 된 예수님이 나타났고 그분의 오른팔로 우리 다섯 식구를 따뜻하게 품고 계셨다. 예수님의 오른팔이 자기네 세상인 마냥 주변을 살펴보는데, 하늘과 구름과 세상의 풍경은 예수님께서 걸으시는 걸음에 따라 변하고 있었다. 걸음을 옮기는 분은 예수님이셨고 우리 가족은 예수님의 품이 그저 온 세상이었다.


기도가 끝나고 나는 오래전 나를 찾아오셔서 "내가 너를 살리라!" 말씀하셨던 그 음성을 이번에는 환상으로 보여주신 것 같았다. 그리고 금세 왜 지금 내게 환상을 보여주셨는지 알 것 같았다. 나에게 하나님과의 동행은 나와 떨어져 한걸음 먼저 가시는 길을 순종하며 뒤따르는 삶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호흡도 온기도 느낄 수 없어서 때로는 투덜대며 나의 의지로 걸음을 떼느라 힘에 겨워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와 동행한다는 그분의 뜻은 나를 완전히 그분의 팔에 감싸 안으시고 그분이 걸으시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딸아! 내가 너를 살겠다는 것은 너의 열심과는 무관한 거란다. 걸음은 내가 옮기는 거야. 내 품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니? 그 품에서 평안하렴. 내가 너를 살리라!"


사실 많은 것을 망각하며 살아가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쉽게 잊고 사는 것이 내가 어떤 존재이며,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이다. 실상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가장 위대한 권세를 가진 자이며, 그에 합당하도록 복음의 향기를 뿜으며 사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실제로 세상은 아름다운 진흙탕 속과 다를 바 없어서, 말씀 앞에서 기도하면 거룩한 자아가 되었다가 일상 속에서는 온몸에 진흙을 덕지덕지 붙이고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품위를 잃어버리고 살 때가 더 많다. 그저, 피 흘린 전사(戰士) 정도로만 살아간다면 다행스럽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특히, 기도하며 계획한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순식간에 나의 정체성을 망각하고 다시금 하나님의 보좌에 버릇없이 내가 털썩 앉아버리는 죄를 짓곤 한다. 그런 답답한 상황이면 하나님은 내게 찾아와서 말씀해 주신다.


"내가 너를 살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9)


며칠이 지나 저녁 시간에 아이들에게도 엄마가 본 환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둘째 아들은 그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겠다고 했고, 막내는 형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자신이 예수님이 되고 레고 장난감을 우리 가족으로 삼아 모델이 되어주었다.


예수님이 된 막내와 작은 레고가 된 나를 보니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가 더 실감났다.


거인 예수님 품에 안긴 5명의 레고 가족



예수님의 품에서 행복한 우리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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