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에는 다양한 길이 놓여 있었다. 가까이에서 물고기 떼를 감상하며 바닷가를 걷기도 했고, 쌩쌩 달리는 차들과 함께 해안도로를 걷기도 했고, 이 길이 맞나 싶은 작은 오솔길을 조마조마하며 걷기도 했으며, 현지인들이 사는 마을의 골목을 지나기도 했다.
그러던 중 해안도로 곁 하늘과 바다, 초록이들과 조화를 이루며 잠시 앉았다 가라며 말을 걸어주는 듯한 어느 곳을 지나게 되었다.
'쉬엄쉬엄 가세요. 여기 앉아 잠시 바다와 하늘을 감상해 보세요.'
보드라운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이곳을 지나며, 쉬어가자는 내면의 목소리를 대부분 무시하며 지내왔던, 그 누구보다 나에게 포악스러웠던 나를 떠올렸다. 나는 나에게 가혹한 인내를 강요했고 어떤 경우에도 팔딱이며 살아있으라고 소리쳤다.
그런 내면의 나에게 걷는다는 건 그저 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만, 나의 시선은 늘 하늘을 향해 있어 바삐 걸어도 쉬는 듯 살아낼 수 있었다. 하늘 속 푸름과 다채로운 하얀 구름의 모양, 바람이 만드는 구름의 놀라운 향연들을 내가 바라보지 않았다면 나는 과연 지금의 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흠칫 궁금해졌다.
하늘만 보아도 쉼이 되는 나에게, 바다까지 함께 볼 수 있다는 건 대단한 기쁨이다. 하늘과 바다가 만드는 푸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밀한 감각들이 깨어나는 것 같다. 헤아릴 수 없는 무한과 무한이 서로 만나, 내 눈앞에서 수평선으로 펼쳐질 때극한의 만남을 목도하는 내가 얼마나 위엄 있는 존재인지 잠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착각이라도 괜찮다. 그것도 나를 위한 휴식이고, 귀한 선물이다. 오랜 시간을 머무르지 않아도 괜찮다. 하던 무엇인가를 멈추고 다른 행위로 굳이 전환하지 않아도 된다. 잠시 다른 생각, 다른 느낌을 충분히 향유할 때 나는 휴식하는 것이다.
"잠시 쉬어갈래요?"
길동무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걸으며 만난 어느 길에서의 단상으로 이미 나는 영적인 쉼을 느꼈다. 사진 한 장을 찍으며 깊은 호흡을 내쉬며, 쉼을 원했던 나를 알아봐 주는 것만으로 내 마음은 촉촉해지고 걸음은 가벼워져 있었다. 그러니 또 걸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