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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매부가 되살아나다

좀비 아님

by 소주인

좀비물의 유행은 역시 이해할 수 없다. 보기에 징그럽기도 하고 인류의 멸망 과정 속에 내가 살아남아 있다는 끔찍한 상황도 상상하기 싫다. 역시 전 세계에 좀비가 되는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하면 바로 물려서 좀비가 되고 말테다.


그래도 어릴 때에는 같은 언데드라고 해도 흡혈귀에 대한 나름의 로망이 있었다. <꼬마 흡혈귀> 시리즈로부터 시작된 이 로망은 감수성 촉촉한 청소년기에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를 접하면서 폭발했다. 창백한 피부, 영생의 허무, 사랑하는 이를 인간으로서 죽게 둘 것인지 함께 영생을 누릴 괴물로 만들 것인지에 대한 고뇌...

다들 이 고뇌 부분에 매력을 많이 느끼지 않았을까? 어릴 때에는 같이 영생을 누리면 되잖아! 힘도 짱쎄고! 하면서 단순하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망설이게 된다.


선택권이 나에게 있는게 아니라 죽은 가족이 살아돌아왔다면 어떨까? 기쁘기만 할까? 아니면 소름끼칠까? 나도 가끔 꿈에서 돌아가신 할머니나 아버지를 보곤 하는데, 꿈이라 그런지 죽은 사람을 보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다. 그래서 더 애틋하고 반가운 것이 아니라 생전 대하던 대로 똑같이 대하게 된다.



어쩐지 서두가 관련없이 길어졌는데, 김광계가 살던 조선시대에는 삶의 주위에 정말 많은 죽음이 있었다. 당대의 의료기술과 위생관념으로는 전염병의 창궐을 막을수 없었다.(이렇게 근대주의자적인 문장을 쓰게 될 줄이야!) 양반이라 할지라도 일단 전염병에 걸리면 일가족이 몰살당하다시피 했다. 병마는 누구에게나 평등했다. 홍수와 흉년이 한 번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전염병이 더욱 쉽게 자리잡았다. 물이 오염되기도 쉬웠고, 영양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1644년에는 예안 및 인근 지역에 전염병이 여러 차례 돌았다. 김광계는 전염병을 피하기 위해 강재(江齋)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매부 이시명이 전염병으로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물론 김광계의 누이는 이미 몇년 전 세상을 떠났고, 이시명이 재취를 한 지도 오래였다. 하지만 한 번 맺은 인연은 쉬이 끊을 수 없는 법, 이시명과 김광계는 지금까지도 가족으로서, 벗으로서 자주 왕래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이시명의 부고에 김광계가 받은 충격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김광계는 목을 놓아 통곡하였다.


부고가 전해지고 나흘 뒤, 김광계의 막내동생 김광악이 찾아왔다. 그러고 말하기를, "회숙(이시명)이 전염병에 걸린 것이 몹시 중하여 기절한 지가 여러 날인데 한참만에야 다시 깨어났습니다." 라는 것이다. 알고 보니 '이시명이 죽은듯 기절해 있었다' 라는 말이 사람의 입을 타고 전해져 결국 '이시명이 죽(은듯 기절해 있)었다' 라고 소문이 퍼진 것이었다. 목을 놓아 통곡했던 김광계는 맥이 탁 풀렸다. 하지만 전염병에 걸려 죽은 줄 알았던 매부가 살아 있다는 것은 역시 기쁜 소식 아니겠는가.




<매원일기>


갑신년(1644, 인조22)-김광계 64세


5월 17일 갑진

강재江齋로 가서 머물고 있다. 들으니 회숙晦叔이 전염병에 걸려 마침내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한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목을 놓아 통곡하였으니, 놀랍고 참담함을 스스로 차마 견딜 수가 없다. 이날 비가 조금 내리다가 곧바로 그쳤다. 하지夏至 오월중五月中이다.

十七日 甲辰 往棲江齋. 聞晦叔以染患, 遂不起疾, 不覺失聲慟哭, 驚愕慘怛, 不自堪忍. 是日少雨卽止. 夏至五月中.


5월 21일 무신

또 가랑비가 내렸다. 이직이 재산에서 와 말하기를, “회숙이 전염병에 걸린 것이 몹시 중하여 기절한 지가 여러 날인데 한참만에야 다시 깨어났다.”고 하니, 기쁨을 말할 수가 없다. 요즈음 날마다 비가 조금 내려 적시긴 했으나 크게 쏟아진 경우는 없었으니, 농가의 목마름과 근심을 알만하다.

二十一日 戊申 又細雨. 以直自才山來云, 晦叔得染疾甚重, 氣絶數日, 久乃復甦云, 喜不可言. 邇來連日小雨沾灑, 而未見大注, 農家之竭悶可知.





같은 시기 조정에서는...


1644년(인조 22) 5월

왕실 및 종실의 폐단 논박

심기원 옥사와 관련한 녹훈

봉림대군 심양에서 귀환

전국에 눈 또는 우박



http://story.ugyo.net/front/sub01/sub0103.do?chkId=S_KYH_7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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