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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서 작성이 서툴러 곤욕을 치른 종손

by 소주인


어딘가에 서류를 제출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공문서 만들기는 정말 빡친다. 그렇다고 일을 시작했을 때 누가 공문서 작성에 대해서 친절히 알려주는 것도 아니다. 예전에 누군가 만들어놓은 문서를 보고 열심히 따라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열심히 썼는데 결재를 받으려고 올렸다가 중간검토자에게 회송되는 수모를 겪었던 일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문서를 다시 쓰고 있자면 스스로가 바보인 것처럼 느껴진다.


김광계의 직업은 평생 종손이었다. 명색이 그래도 양반집안 종손인데 과거를 안 본 건 아니었다. 다 떨어졌을 뿐이지...그래서 그런지 그도 공문서 처리에 그리 빠릿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도산서원 원장 자리를 맡은 이상 관에서 문서를 꾸며서 올리라는 명을 받으면, 할 수 있건 못 하건 어쨌든 문서를 만들어야 했다. 샘플이나 있었나 몰라...


1635년 6월 2일에 김광계는 도산서원에 사무를 보러 갔다. 마침 서원에서 김광계를 기다리고 있던 공문서가 있었다. 관아에서 보내온 것인데, 사헌부에서 주상에게 보고할 각 처 서원의 서원노비와 원속을 하나하나 조사하라는 명이 내려왔다고 한다. 김광계가 이러한 명을 받고 바로 움직인 것은 아니다. 며칠간 별다른 일을 하지 않던 김광계는 닷새 후인 6월 7일이 되어서야 예안 현감 남연(南碝)을 만나러 간다. 아마도 문서 작성 요령을 물으러 간 것 같다. 하지만 문서 작성에 대해 별로 도움을 받지 못했는지, 6월 24일에 다시 그를 만나야 했다.


그 후 한 달이 넘게 지난 8월 2일에는 겨우 서원에 속해 있던 김광철(金光鐵), 이명철(李命哲) 등과 함께 관아에 바칠 서원노비와 원속에 관한 문서를 작성하였다. 바쁜 날에 또 손님은 왜 그리 많은지, 그 날 문서 작성을 다 끝내지 못하고 손님을 접대하였다. 다음날인 8월 3일에는 손님을 전별하고 있는데 예안 현감 남연이 들이닥쳤다. 공부 하다가 잠깐 만화책 보면 엄마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 같다.


남연은 김광계에게 노비와 원속을 기록한 문서를 빨리 바치라며 닦달을 했다. 김광계는 급히 이명철과 유사를 불러 현감에게 문서를 바치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덜 된 문서를 다 되게 할 만한 뾰족한 수는 없었다. 문서를 살펴본 현감은 문서가 잘못되었다며 결국 퇴짜를 놓고 가 버렸다. 결국 날이 저물 때 까지 김광계와 서원 사람들은 문서를 고쳐야 했고, 너무 늦지 않은 저녁시간에 두 유사에게 들려 보내 관아에 바칠 수 있었다. 관아 업무시간이 9 to 6가 아니라서 그나마 다행이었을 것이다.






<매원일기>


을해년(1635, 인조13) -김광계 55세



6월 2일 경진

도산서원에 왔다. 지나온 밭두둑이 폭우 때문에 무너진 곳이 많았다. 관아에서 보낸 공문을 보니, 사헌부에서 주상께 보고하여 각 처 서원의 서원노비[院奴婢]와 원속院屬들을 하나하나 조사하여 보고하라고 하였다.

○ 초복이다.

二日. 庚辰. 來山院. 所經田疇, 爲暴雨所傷者多矣. 見官帖, 憲府啓達, 各處書院院奴婢院屬, 一一査出, 抄報云矣. ○ 初伏.


6월 7일 을유

서원의 노비와 원속들을 보고하는 일로 어쩔 수 없이 들어가 예안 현감을 만나보고 그길로 임시 거처로 갔다. 권인보權仁甫가 오천에 왔다는 것을 듣고 가서 만나보고 밤에 함께 자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회경도 함께 잤다.

七日. 乙酉. 以院中屬人抄報事, 不得已入見土主, 因往寓所. 聞權仁甫來烏川, 往見之, 同宿夜話, 晦卿亦同枕


6월 24일 임인

상서를 읽었다. 밥을 먹은 뒤에 돌아왔다. 지나는 길에 예안 현감에게 들러서 만나보고 임시 거처로 왔다. 저녁에 침락정에 와서 잤다.

二十四日. 壬寅. 讀書. 食後還. 歷見土主, 來寓所. 夕來宿枕洛.



8월 2일 기묘

김광철金光鐵과 이명철 등 여러 사람과 함께 서원노비와 원속의 문서를 써서 장차 관아에 바칠 것이다. 영주[榮川] 이참李嵾이 찾아왔다. 좌수 허용과 별감 금시무琴是武가 계상溪上에서 와 머물러 잤다.

二日. 己卯. 與金光鐵李命哲諸人, 書書院屬人文案, 將納于官也. 榮川李嵾來過. 許座首蓉琴別監是武, 自溪上來止宿.


8월 3일 경진

모든 사람들이 다 떠나갔다. 저물어서 예안 현감이 영천永川에서 와 서원노비와 원속을 기록한 문서를 들이라고 독촉하기에 급히 이명철과 유사 등에게 가져와 바치라고 하였는데, 퇴짜를 맞았다. 날이 저물 때 다시 작성하여 두 유사에게 가져가도록 시켰다.

○ 사숙과 이참이 보러왔다.

三日. 庚辰. 諸人皆去. 晩間, 土主自永川來, 催納屬案, 急使李命哲及有司等, 持納而見退. 日暮更書, 使兩有司持往. ○ 士夙李嵾來見.






같은 시기 조정에서는?


1635년(인조 13) 6~8월

역적 인성군 이공의 집안을 사면하는 문제

이이, 성혼을 문묘에 배향하는 문제

동지사가 북경에 다녀와 산서지방의 도적떼에 대해 보고/역관이 에도에 다녀와 관백의 교린외교에 대한 태도 보고

황해도와 전라도에 풍재/영남의 양전을 각박하게 한 것으로 백성들의 원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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