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은 우스갯소리도 문자로
가만 보면 사람들이 제일 재미있어 하는 것은 남 놀리는 일이다. 가장 먼저 떠오른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아카데미 수상을 오랜시간 하지 못한 데 대한 밈이다. 여러차례 노미네이트되었으나 결국에는 밀리고 말았언 오욕의 시간이여...결국 수상하긴 했으나 수상 역시도 놀리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다음으로 떠오른 것은 창씨개명을 하라는 일제의 억압 속에서 미나미 이치로라고 개명하여 당대 조선 총독이었던 미나미 지로를 놀린 일. 어떤 엄혹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남을 우습게 만드는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학원생들도 자기 지도교수를 성대모사하는 것을 보면 과연 그렇다.
과거시험을 앞두고 있던 금난수는 외사촌 동생 남치형과 함께 율사에 올라와 조용히 글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고요한 절간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무슨 일인가 하고 문을 열고 나가자 여기저기 부딪히면서 절에 올라온 듯한 몰골의 술 취한 사람이 널브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바로 금난수와 남치형의 매제인 배삼익이었다. 단계현에 가서 술을 마시다가 결국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취해버려서 절에 실려 올라온 것이었다.
배삼익은 술에 깬 뒤에도 그대로 절에 눌러앉아 며칠을 보냈다. 술이 깬 뒤에는 한가롭게 시를 지어서 단계현의 류씨 집에 보내기도 했다.
남극성 별빛 받는 노인 있으니 南極星輝有老人
젊은 얼굴 흰 머리가 어찌 까닭이 없으랴 童顔鶴髮豈無因
기녀 집 노랫가락에 만사가 한가로워 靑樓歌管渾閑事
흐드러진 붉은 꽃 꿈에 들어 새롭네 滿樹紅花入夢新
곧 음주가무를 하고 살아야 젊게 산다는 것.
금난수는 이 철없는 매제에게 한 소리를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배삼익이 류씨 집에 보낸 시에서 차운하여 시를 지어 그에게 보여주었다.
단계에 옛날 철인 있다하니 聞說丹溪古哲人
명승지로 이름난 까닭이 있었네 地名佳勝有攸因
평생의 부유와 장수는 비록 즐겁다 하나 生平富壽雖云樂
즐거운 때 날로 새롭도록 노력 하소 樂處要當勉自新
단계현이 명승지로 이름난 이유는 부유하게 오래 사는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라 바로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이 많아서이니, 너도 놀지만 말고 날마다 새로이 노력하라는 것. 그러나 아직 젊고 혈기 넘치는 배삼익에게는 잔소리로만 들렸을 것이다.
배삼익은 그대로 절에 눌러앉아 며칠 동안 내려가지 않았다. 덕분에 금난수의 공부는 난항이었다. 배삼익은 공부도 하지 않고 장난스러운 시만 지어대고 있었다.
어느 날 보니 배삼익이 꽃을 꺾어 손에 들고는 이제 봄철도 다 지났으니 꽃구경은 다 했겠다며 금난수를 놀렸다. 꽃구경 철은 지났는데 꽃가지를 꺾어봤자 그저 욕심이 아니겠냐며.
먼 남쪽 지방에서 멀리 이별하니 萬里南州遠別離
봄 석 달 행락철은 벌써 시기가 지났네 三春行樂已過時
다정하게 움켜쥐니 꽃 탐하는 마음이겠으나 多情可挹貪花意
때때로 꺾이는 가지가 한탄스러울 뿐이네 只恨時時忍折枝
금난수는 배삼익의 놀림에 발끈하여 화답했다.
어찌하여 남쪽 지방에서 먼 이별 하는가 何事南州遠別離
끼니때마다 어머니 뵙지 못한 지 오래네 萱堂久曠日三時
주위 사람 꽃 탐낸다고 말하지 마소 傍人莫道貪花者
가는 세월 아쉬워 지는 꽃가지 꺾어본다오 爲惜光陰取晩枝
딱히 어디에 놀러가고 싶어서 꽃을 꺾어든 것도 아니고, 어머니도 보지 못한지가 오래라 괜히 지나가는 시간이 아쉬워서 꽃을 좀 꺾어본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시에는 분명 고향에서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며 곧 돌아갈 것이라는 뜻을 담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귀향은 과거 급제 혹은 낙방해서 과거 보는 일을 포기함을 뜻했다. 금난수와 배삼익은 어떤 일로 귀향하게 될지.
시를 지으면서 티격태격하던 금난수와 배삼익은 남 놀리는 데에서는 손발이 척척 맞았다.
어느 날은 고을 수령이 사람을 보내 율사에 방문해도 괜찮겠냐고 물어왔다. 마침 책만 들여다보기에 지루했던 차에 방문객이 있으면 기분 전환도 되고 여러모로 좋은 일이었기 때문에 금난수가 이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놀고 싶었던 배삼익에게도 반가운 소리였다.
그리하여 수령은 4월 8일에 방문하기로 약조하였고, 금난수과 배삼익은 종일 그를 기다렸다. 하지만 오기로 한 수령은 오지를 않고, 시를 지어 사람 놀리기를 좋아하는 금난수와 배삼익이 이 기회를 놓칠 리는 없었다. 둘은 나란히 약속을 어긴 수령을 야유하는 장난스러운 시를 지어 보냈다.
문 밖으로 복사꽃 개울물 따라 떠가고 門外桃花從水流
신선 세계 소식 고깃배로 새어 나오네 仙區消息漏漁舟
옛 기억 더듬어 찾아와도 온통 흔적 없고 來尋舊記渾無跡
길 잃은 공산에서 멋진 구경 놓치고 말았네 迷路空山失勝遊
금난수는 여기가 신선세계라서 수령이 길을 잃어 못 오는 거냐고 이죽거렸고
이 시대 풍취와 정경이 최고라고 當代風情第一流
사람마다 다투어 말하나 곧 빈 배라네 人人爭道是虛舟
북산 신령에 어긴 약속 마음에 걸리기는 하나 北山負約非無意
이문 보내어 못 놀게 할까 걱정이라네 怕有移文不許遊
배삼익은 산신령이 방해해서 못 오는 거냐고 놀려댔다.
약속을 파투냈으니 이 정도 시를 받아도 별 수 없는가.
1561년(명종 16)-금난수 32세
3월 25일
권자인과 배여우는 진주로 촉석루를 구경하러 돌아가고 나는 남양중과 함께 율사栗寺에 올라왔다.
4월 1일
배여우가 단계에 와서 술을 마시고 고꾸라져서 실려 절에 올라왔다.
4월 4일
송중윤이 지나는 길에 찾아왔다가 바로 돌아갔다. 배여우가 “단계 류가 벽상에 차운하다.[次丹溪柳家壁上韻]”는 시를 류씨 집에 보냈다.
남극성 별빛 받는 노인 있으니 南極星輝有老人
젊은 얼굴 흰 머리가 어찌 까닭이 없으랴 童顔鶴髮豈無因
기녀 집 노랫가락에 만사가 한가로워 靑樓歌管渾閑事
흐드러진 붉은 꽃 꿈에 들어 새롭네 滿樹紅花入夢新
차운하여 배여우에게 보여주었다.
단계에 옛날 철인 있다하니 聞說丹溪古哲人
명승지로 이름난 까닭이 있었네 地名佳勝有攸因
평생의 부유와 장수는 비록 즐겁다 하나 生平富壽雖云樂
즐거운 때 날로 새롭도록 노력 하소 樂處要當勉自新
4월 6일
배여우가 꽃을 꺾어 장난삼아 놀렸다.
먼 남쪽 지방에서 멀리 이별하니 萬里南州遠別離
봄 석 달 행락철은 벌써 시기가 지났네 三春行樂已過時
다정하게 움켜쥐니 꽃 탐하는 마음이겠으나 多情可挹貪花意
때때로 꺾이는 가지가 한탄스러울 뿐이네 只恨時時忍折枝
차운하였다.
어찌하여 남쪽 지방에서 먼 이별 하는가 何事南州遠別離
끼니때마다 어머니 뵙지 못한 지 오래네 萱堂久曠日三時
주위 사람 꽃 탐낸다고 말하지 마소 傍人莫道貪花者
가는 세월 아쉬워 지는 꽃가지 꺾어본다오 爲惜光陰取晩枝
배여우가 또 읊었다.
향기로운 풀 그득하나 멀리 이별하니 芳草萋萋尙遠離
고향으로 돌아갈 맘 이미 오래 되었네 故園歸計已多時
언덕 머리엔 틀림없이 기다릴 사람 있을 테니 隴頭定有相思者
역 심부름꾼 꽃 한 가지 전함을 마다하랴 驛使何妨寄一枝
내가 또 차운하였다.
눈 덮일 적 고향에서 떠나왔으나 雪滿家山始別離
강성의 봄 다하도록 돌아가지 못하는 때 江城春盡未歸時
어스름 녘 홀로 산중의 절에서 黃昏獨立山中寺
얼마간의 서글픈 심사 꽃 한 가지에 부쳐보네 多少愁懷付一枝
4월 8일
고을 수령이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하였으나 오지 않았다. 장난삼아 시를 지어 보냈다.
문 밖으로 복사꽃 개울물 따라 떠가고 門外桃花從水流
신선 세계 소식 고깃배로 새어 나오네 仙區消息漏漁舟
옛 기억 더듬어 찾아와도 온통 흔적 없고 來尋舊記渾無跡
길 잃은 공산에서 멋진 구경 놓치고 말았네 迷路空山失勝遊
배여우가 읊었다.
이 시대 풍취와 정경이 최고라고 當代風情第一流
사람마다 다투어 말하나 곧 빈 배라네 人人爭道是虛舟
북산 신령에 어긴 약속 마음에 걸리기는 하나 北山負約非無意
이문 보내어 못 놀게 할까 걱정이라네 怕有移文不許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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