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 묘역에 심어 놓은 나무를 관리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묘지기와 산지기는 묘역에 있는 나무들이 나무꾼들에 의해 벌목되지 않도록 감시하는 역할이었다. 만일 묘 근처에 나무가 없다면 비가 왔을 때 흙이 흐르면서 묘를 덮어버릴 수 있었다. 개인 집안에서는 묘지기와 산지기를 고용하기도 했고, 집안 후손 중 묘역에 가까이 사는 사람이 그 역할을 맡기도 했다.
왕가의 묘역을 관리하는 사람은 참봉이었다. 국가와 왕가가 구분되지 않는 지점에 능참봉이 있었다. 능참봉은 능 근처에 살면서 능묘를 돌보고 때마다 왕 대신 제사를 지냈다. 만일 왕이 모든 제사를 다 지내야 했다면 몸이 열 개라도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므로 제사는 외주를 준 것이다. 제릉 참봉을 지내고 있는 금난수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능참봉의 생활은 한가로운 듯하면서도 은근히 신경쓸 일이 많았던 듯하다. 시시때때로 감시하는 사람도 없고, 하기 나름 아니었을까.
얼마 전 거센 바람이 불어서 제릉 근처의 나무 몇 그루가 쓰러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금난수는 몸소 제릉 근처의 산을 돌면서 바람에 쓰러진 나무들을 살펴보았다. 산에 올라가는데 술 좋아하는 금난수가 빈손으로 갈리는 없었다. 금난수는 산행에 동행한 이반룡(李攀龍), 민린(閔嶙)과 함께 북쪽 봉우리 꼭대기에 앉아서 어느덧 시원해진 가을바람을 쏘이며 술 몇 잔을 마셨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렇게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8월은 추석(음력 8월 15일)을 전후로 하여 벌초를 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금난수도 곧 제릉에 벌초를 하고 떼를 갈아입히는 일을 해야 했다. 번잡스럽게 여러 사람이 왔다 갔다 하고, 릉 봉분 위의 풀을 베느라 소란스러울 것이기 때문에 일단 신주를 다른 곳에 모셔 놓고 작업을 해야 했다.
신주는 사사로이 옮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먼저 옮기기 전에 신주를 옮길 것이라 고하는 이안제(移安祭)를 지내야 했다. 이안제를 지내기 이틀 전인 8월 13일에는 서울에서 예조가 보낸 향과 축문이 도착했고, 제관으로 장단 부사(長湍府使)와 김포 현령(金浦縣令) 노극신(盧克愼), 양천 현령(楊川縣令) 이대춘(李大春)이 제사 하루 전에 도착하였다.
8월 15일 새벽에 이안제를 무사히 마친 뒤, 바로 다음날부터 일꾼을 모아 벌초를 하였다. 선공감에서는 감역관 송훤(宋暄)을 보냈고, 도감 예조 좌랑 송수(宋璹)도 함께 와서 일을 관리하였다. 모든 작업이 마무리 될 때까지 이들은 제릉의 원찰인 연경사에 임시로 거처하게 되었다. 금난수는 매일같이 감역관, 도감과 함께 능 위에 올라가 살피고 일을 논의하였다.
일이 대강 마무리 된 것은 그로부터 보름도 더 지난 8월 27일이었다. 다른 곳에 모셔놓았던 신주를 다시 돌려놓는 환안제(還安祭)를 지내기 위해 파주 교수 김현도(金玄度)와 교동 현감 박안민(朴安民)이 환안제의 전사관(奠祀官)으로 왔다. 또한 좌의정 강사상(姜士尙), 우참찬 성세장(成世章), 병조 판서 정종영(鄭宗榮), 예조 판서 류전(柳琠), 남응운(南應雲) 등 고관들이 모두 제릉에 도착하여 금난수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하여 8월 29일에는 작업의 마지막으로 봉분에 떼를 갈아입히는 개사토(改莎土)를 한 뒤, 환안제를 지내는 것으로 모든 절차를 마쳤다. 이제 곧 날씨가 차가워지게 되므로, 이 시기에 벌초 및 벌목을 잘 끝내 놓으면 다음 해 까지는 잡초가 잘 나지 않게 된다. 능참봉으로서 한 해의 큰 업무 중 하나를 끝낸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579년(선조 12)- 금난수 50세
8월 8일
산을 돌면서 바람에 넘어진 나무를 살펴보았다. 이반룡李攀龍, 민린閔嶙과 함께 북쪽 봉우리 꼭대기에 앉아서 술 몇 잔을 마시고 돌아왔다.
8월 13일
서울에서 이안제移安祭에 쓸 향香과 축문祝文이 왔다.
8월 14일
향사香使로 장단 부사長湍府使와 집사로 김포 현령金浦縣令 노극신盧克愼과 양천 현령楊川縣令 이대춘李大春이 왔다.
8월 15일
새벽에 제사를 지내고 한낮에 윤기백尹起伯 집에 갔다. 허효종許孝宗 행원行源과 이기李璣 국형國衡이 와서 모였다.
8월 16일
일꾼을 모아 벌초를 하였다. 선공감 감역관 송훤宋暄과 도감 예조 좌랑 송수宋璹가 왔다.【모두 연경사에 임시로 거처하였다.】
8월 20일
감역관과 부장과 함께 능 위에 올라가 살펴보았다.
8월 27일
전사관奠祀官 김현도金玄度와 집사 교동 현감이 왔다.
8월 28일
좌의정 강사상姜士尙, 우참찬 성세장成世章, 병조 판서 정종영鄭宗榮, 예조 판서 류전柳琠, 남응운南應雲이 들어와 서로 인사를 하였다.
8월 29일
개사토改莎土를 하고 벌목을 하여 환안제還安祭를 지냈다.
8월 30일
여러 행차가 모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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